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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지 Jul 17. 2021

정말 ‘버티면’ 일류일까?

  아빠의 퇴원에 맞춰 제천에 갔던  벌써   전이다. 수면마취로 진행하는 작은 수술이었지만 아빠의 생애  수술이었다. 수술  조직을 떼어내어 조직검사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라 가족 모두  긴장한 채로 보냈다. 어버이날에도 12시가  돼서야 전화를 걸었던 무뚝뚝한 오빠도 아빠의 수술 전후로 전화를 종종 걸었다고 한다. 머릿속에 '건강'이라는 키워드가 들어온 가족 모두가 조금씩 초조한 시간을 보냈다. 매일 걷던 일상 길에서 잠시 샛길로 빠져나와 평소 하지 않았던 생각들을 떠올렸다. 각자의 남은 시간을 가늠해 보기도 하고, 운이 좋은 경우와 좋지 않은 경우를 따져보며 겁에 질리기도 했다. 기도하고, 기도를 부탁하며 아빠의 퇴원만을 기다렸다. 코로나 19 보호자의 출입이 불가하다는 병원의 방침 때문에 수술대에 혼자 오른 아빠였다. 미안한 마음을 안고 비장하게 운전대를 잡았다.


    , 마트에서 여러 건강식과 미니 오븐까지 사서 가는데도  챙겨갈  없음에 비통했다. 이래서 정기적으로 돈을 벌어야 사람 구실을 하는구나 싶었다.  것을  때는  생각도 없었던 아끼는 습관이 아빠의 식재료를 구입할  비겁해 보였고, 화가 났다. 돈돈 거리는  정말 싫은데 사는 일은 정말 돈돈 아니면 건강건강이구나.


  진통제를 먹으면 좀 낫고, 약발이 떨어질 때쯤 힘들어하는 아빠의 곁에서 채식 위주의 요리 레시피를 알려주고, 2박 3일 내내 건강 잔소리꾼으로 변해 아빠를 호되게 혼냈다. 힘 없이 경청하는 아빠의 태도에 속으로 놀랐다. 같은 말을 열 번 반복해도 '알았어, 알았다고.'라고 온화하게 답했다. 한 번 아프고 난 아빠는 두려움의 무게를 안 덕분인지 나의 모든 가르침을 흡수하고 소화하였으며, 현재까지 채식 지향 식습관을 4주째 유지 중이다.


  퇴원하고  집으로 도착했을 때의 일이었다.  먹고 이제  쉬려고 하는데 갑자기 아빠의  문이 ! 하고 열렸다. 문을 마주 보고 있던 것은 아빠였기에 자연스럽게 나는  뒤의 문이 아닌 아빠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리송한 표정의 아빠를 보고는 나도 고개를  돌려 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중년의 여성  분과 남성  분이  계셨다. 인사도 없이 멀뚱히 서서는 자기를   번에  알아보냐며, 지나가다 들렸다며 기분 나쁜 너스레를 떨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번의 오고 가는 대화 끝에 아빠는 사촌들임을 인지했다. 평소에 왕래가 없었던 분들 같았다. 아빠는 몸에 힘이 없어 일어설  없으니, 내가 대신 일어나 엉거주춤  있었다. 퇴원한  얼마 되지 않아 힘들다는 아빠의 말을 들은 척도  하고 차를 내오라 하시기에 나는 참지 않았다. 예의 없는 사람들에게 참지 못하는 속이 좁은 나는, 아빠를 대신에 그들을 내쫓으리라 마음먹고 손으로  잔을 가리켰다. 저쪽에 컵이 있으니 목이 그렇게 마르면 알아서 드시라는 제스처였다. 당황한 듯하더니  잔이 있는 곳으로 저벅저벅 걸어 차를 들이켰다. 당황한 아빠와 나는 눈이 마주쳤다. 딸의 불같은 성격을 알기에 큰일이 나기 전에 아빠는 일어나 그들을  앞까지 마중하였다. 그때  중년의 여성 분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몇 살이니?"

"스물아홉이요."

"결혼은?"

"예?!"

어이가 없었지만 참고 이어갔다.

아니다 안 참았다. '흥'하며 웃었다. 아빠가 대신 대답했다.

"결혼은 무슨 결혼이야."


"아이고 볼장 다 봤네? 끝났네 인생?"

내 귀를 의심했다. 아빠보다도 어린것 같은 여성 분의 입에서 나온 말이 맞는지 눈을 들어 그분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꽤나 온화한 인상에 누군가의 엄마이자 아내, 근로자가 될법한 분이셨다. 내 말은, 외계인은 아니었다. 상식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니 화가 나진 않았다. 모든 순간에 감사하고, 말을 조심하기로 다짐한 한 해였으니 웃으며 그들에게 물었다.


"운전해서 올라오셨어요? 힘드셨을 텐데."

나를 위한 선의였다.

물론  마저도 짓밟.


"왜? 네가 데려다주게?"

"..."

"데려다 줄 거냐고?!"

(참으며) "제 차가 여기 없잖아요."


간혹 설교 시간에 목사님이 백화점에서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면  이러냐는 식으로 힐끗 보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며 감사는 감사로 받으라는 식의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설마 그런 사람이 있을까 싶었는데  여기 있었다. 그들이 가고 아빠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짧은 시간에 잊혀진  보니 오래 생각하기엔 내가 부끄러울만한 내용이었나 보다. 반성한다.


 날은 감사할  너무나 많은 하루였다.  째는 아빠의 무사 회복,  째는 누구 눈엔 볼장   나의 인생이  눈엔  기대된다는 것.  째는 버티는 것이 일류가 아니라,  까먹는 것이 일류임을 배운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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