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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언니 Dec 21. 2022

퇴사하는 동료들을 바라보며

 회사에서 마음을 터놓고 의지하던 동료 중 한 명이 다음 달이면 퇴사한다. 동료들의 퇴사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아프지만 예전만큼 감정적으로 큰 파문이 일진 않는다. 그저 '아, 이제 때가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들 뿐.


 사회 초년생 때 마주했던 첫 퇴사들은 동기들의 퇴사였다. 입사 후 하루 온종일 붙어 다니며 동고동락하든 친구 같은 존재들이 하나 둘 퇴사 소식을 전할 때, 나는 그 자리에서 입술을 꽉 앙다물고 미간에 힘을 빡 주었다. 그렇지 않으면 사리분별 못하는 반푼이처럼 여기가 직장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그 자리에서 왈칵 눈물을 쏟아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몇 번은 그 자리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려 주변 사람들을 당황시킨 적도 많았다.


 얼마나 힘들게 들어온 회사고 서로 얼마나 치열하게 버텼는지 잘 알기 때문에 동기들의 퇴사 소식은 늘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슬펐고 그저 또 슬펐다. 그리고 미안했다. 그간 나도 먹고 사느라 바빠 의리없이 차마 전우의 상태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서 떠난다는 그들에게 서운한 마음보다 미안한 마음이 더 앞서 그렇게 눈물이 났다. 그리고 언젠가 나만 혼자 남겨질 것 같아 불안했다.




 3~4년 차일 때 마주한 선후배들의 퇴사는 조금 달랐다. 척박한 환경에서 의지하고 본받아 성장하고 싶었던 선배들의 퇴사 소식은 내게 엄청난 좌절감과 조직에 대한 배신감, 분노를 안겨줬다. 마치 회사가 그들을 사지로 몰아낸 양 나는 거세게 반발했고 때론 보이지 않는 존재인 조직과 시스템에 심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설상가상으로 후배들이 퇴사할 때면 분노는 더욱 불같이 일렁였고 크게 상처받았다. 후임을 잃는다는 것은 전우와 리더를 잃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내 책임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은 죄책감과 선배로서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상황을 그냥 방관했다는 부끄러움이 일었다. 더 잘 가르치고, 더 잘 신경 써줬어야 했는데 내가 나하나 살겠다고 발버둥 치느라 몰랐구나. 혹은 나는 좀 괜찮다고 그냥 유야무야 지나갔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 낯 부끄러웠다.




 시간이 흘러 5년 차가 넘어가며 주변 동료들의 퇴사는 내게 큰 불안감을 안겨줬다. 이직 혹은 전혀 새로운 분야로 떠나는 자들의 뒷모습을 보며 나만 이대로 도태되는 것이 아닐지 불안했다. 정말 지금 이대로 괜찮은 것이 맞는지, 나름대로 잘 버텼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무사 안일함에 젖어 세상물정 모르게 퇴화한 것은 아닐지, 우물 안 개구리가 된 건 아닐지, 이러다 뒷방 퇴물이 되는 건 아닐지 그런 불안한 마음이 일어 밤잠을 설쳤다.


 10년 차가 넘어가며 더욱 빈번한 주변의 퇴사를 겪으며 나는 조금 초연해졌다. 예전처럼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슬프지도 않았고, 죄책감이 일거나 혹은 마음 한 구석이 공허하거나 불안해지지도 않는다. 나의 다양한 느낌들과는 별개로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길을 걸어가는 것뿐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인생의 무수히 많은 갈랫길과 교차로에서 일정 부분이라도 그들과 함께 걸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생각할수록 보통 인연이 아닌 것 같아 신기할 따름이다. 또 퇴사는 영원한 이별이 아니다.




 비록 퇴사를 한 동료라도 마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인연을 이어갈 수 있다. 실제로 첫 직장의 동기들이 퇴사했을 때, 마치 다시는 못 볼 것처럼 대성통곡한 사실이 무색하게 우리는 반기에 한 번은 꼭 만난다. 서로의 파릇했던 청춘과 패기 어린 추억들을 안주삼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기 바쁘다. 본받고 싶었던 선배들과의 인연도 계속된다. 조언을 구하고 혜안을 얻고 싶을 때 연락을 드리고 뜻깊은 시간을 보낸다. 또 물가에 내놓은 아기 같았던 후배들도 어느덧 리더급이 되어 어엿히 성장한 모습을 보면 또 다른 자극과 배움이 된다.


그러니 이번 동료의 퇴사도 너무 크게 상심할 필요가 없다. 너무 슬퍼하고 아쉬워하지 말자.  


 사람 인연에 반드시 만남과 헤어짐이 있으니 우리는 헤어질 때가 된 것뿐임을 되뇐다. 영원한 헤어짐이 아니다. 그저 같은 공간에서 늘 마주하던 일상의 친근함에서의 헤어짐일 뿐이다. 다른 공간에서, 서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만나 계속될 인연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다시 한번 너무 아쉬워하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괜찮다. 정말 괜찮다. 그러니 웃으면서 보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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