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집 소음 때문에 돈 주고 '가구 재배치'를 했다
최근 사람을 불러서 방 안의 가구들을 재배치했다. 단순히 기분 전환을 위해 벌린 일은 아니었다. 요즘 아랫집 소음과 옆 집 생활 소음 때문에 신경이 한껏 곤두 선 나는 일명 '이사병'에 걸렸다.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나 이사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실제로 주말마다 직방과 다방을 열심히 보며 주변 매물들을 부지런히 보러 다녔지만 지금 집과 비슷한 예산에 더 나은 조건의 집이 없어 반쯤 포기했다.
전세 만기도 꽤 남았는데 갑자기 무슨 연유인가 하면 사실 요즘 나는 '타인은 지옥인 상태'이기 때문이다. 현재 살고 있는 곳은 복도형 오피스텔로 똑같이 생긴 구조의 집들을 차곡차곡 쌓여 꽤 규모가 있는 미니 아파트 같은 형태다. 물론 지금의 거주지가 처음부터 '타인은 지옥인 상태'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처음 이 집으로 이사했을 때, 정말이지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내가 가진 예산 범위를 초과해 재정적으로 제법 무리가 됐지만 은행의 도움과 영혼까지 탈탈 턴 자금 융통으로 간신히 전세금을 해결했다. 그 과정에서 혹시나 뭐하나 잘못되까, 만약 '대출 심사가 통과 안 되면 어쩌지?' 같은 걱정을 하며 이 집을 잃을까봐 전전긍긍했다. 우여곡절 끝에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다가 마침내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이 집에 입성했을 때 느꼈던 성취감과 안도감이 아직 선하다.
반전세 원룸을 탈출하고 투룸 전세로의 이사는 꿈만 같았다. 기분이 매우 좋아서 아직 휑한 빈 집 마룻바닥에 스노우 천사처럼 누워 두 팔과 다리를 휘적거리며 미친 듯이 웃었다.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말고 가구 옵션이 없는 집이라 동생이 꼭 '도박하다 도망 다니는 놀음꾼' 같다고 놀렸던 침낭 같은 이부자리 하나 깔고 생활해도 마냥 좋았다. 변변한 앉은뱅이 밥상도 없어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끼니를 해결 했어도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그만큼 이 집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이곳은 실평수 5평 남짓한 반전세 원룸 생활을 4년 만에 청산하고 이사한 나의 두 번째 자취집이다. 그전에 살던 원룸은 지하철역과 도보 5분 거리의 소위 '초초초 역세권'에 가구들도 풀옵션으로 갖춰져 있었지만 채광이 영 엉망이었다. 당시 독립 새내기였던 나는 집을 선택하는 요령이 전혀 없었다. 그 집을 택했던 이유도 하루 종일 그저 그런 집들과 낚시성 매물들에 지쳐가던 중 해가 완전히 져 어둑어둑 해질 무렵 중개인이 마지막으로 '정식 매물로 나오진 않았지만, 본인이 집주인과 친해서 특별히 보여준다'고 선심 쓰듯 보여준 방이여서 '그저 이만하면 됐다' 싶어 계약했다.
내가 수중의 예산에도 적합했고 건물 상태도 깨끗했다. 방 내부를 최근에 리모델링해서 도배장판도 새것이고 가구를 포함 실내도 깨끗했다. 창문이 딱 하나 있었는데 소위 '앞집 벽만 바라보는 벽(wall) 뷰'였다. 바깥 풍경의 정취라고는 전혀 없었는데 나는 오히려 창문을 통해 이웃과 시선이 마주칠 민망한 일이 없고 혹시나 누군가 실내를 훔쳐보는 일 따위는 아예 불가능하겠다 싶어 철딱서니 없이 좋아라 했었다. 그러나 자연광이 들어노는 집과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거주하는 삶의 질 차이는 실로 엄청났다. 자연 채광이 한 점도 없어 불을 켜지 않으면 칠흑 같았던 원룸에서 나는 주말마다 우울감과 무기력증에 빠졌고 도저히 답답하여 안 되겠다 싶어 결국 그 집을 나왔다.
반면 지금 집은 제법 높은 층에 위치해 창 밖으로 탁 트인 전망을 자랑한다. 외벽 하나가 거의 통창 수준이라 빛도 잘 들고 주변에 시야를 가리는 건물이 없어 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가슴이 탁 트인다. 그것이 무리해서 이 집을 얻은 결정적인 이유였다. 지은 지 3년도 안된 신축이라 시설은 당연히 깨끗했고 살아보니 관리 실장님과 경비 아저씨가 아주 꼼꼼히 관리해서 이곳에서의 거주가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이곳이야말로 서울에서 내가 그토록 찾아 해매던 '마이 스윗 홈'이라고 생각하며 기뻐하길 고작 2년. 그동안 쾌적하고 조용한 환경에 만족하며 살아왔는데 근래 진원지가 모호한 층간 소움에 골머리를 썩었다. 소음의 진원지를 찾아 관리실에 문의하니 최근 나를 둘러 싼 윗집, 옆집, 아랫집 모두 세입자가 바뀌어 잘 모르겠다고 하셨다.
나는 전세 계약기한 2년이 만료되고 재계약을 했지만 신혼부부와 1인 가구가 많이 사는 이곳은 그새 빠르게 입주자들이 바뀌는 것 같았다. 그러한 변화가 바로 '마이 스윗 홈'이 '타인은 지옥인 헬'로 바뀐 이유였다.
취업해 독립을 처음 한다는 아랫집 청년은 주말마다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파티를 했고, 그들의 고성방가에 밤늦도록 잠을 설치거나 새벽녘에 깨는 경우도 잦았다. 관리실을 통해 컴플레인해도 그때 뿐이었다. 심지어 적반하장으로 연세가 지긋한 경비 아저씨께 "사회생활하려면 처신 잘 하시라"고 훈계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이건 말로 타일러서는 안 되는 슈퍼 빌런급'임을 감지해 대화로 원만히 해결하길 포기했다.
새로운 윗집과 옆집 세입자들은 특별히 민폐성 소음을 유발하지 않았지만 과거에 느끼지 못했던 생활 소음들을 고스란히 전달했다. 이전 세입자들에게는 거슬리지 않았던 '발 망치' 소리들이 유난히 크게 들렸고 무엇보다 나와 한쪽 벽을 공유하는 옆 집의 생활 소음은 참기 힘들 정도였다. 집 안에서 쉬는 게 도저히 쉬는 게 아닌 것 같아 탈출을 계획했건만, 몇 년 만에 알아본 주변 전셋값은 나를 몹시도 당혹스럽게 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과 비슷한 수준의 집들은 현재 내 수중의 예산 범위를 훌쩍 뛰어넘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가구 재배치'였다.
옆 집 생활 소음이 유난히 거슬리는 이유가 하필이면 옆 집과 맞닿아 있는 벽에 내 침대가 붙어있어 생활 소음이 더 생생하게 전달되는 것 같았다. 다행히 내가 건물 복도 끝에 위치한 집이라 옆집과 반대 벽은 다른 어떤 집과 닿아 있지 않았다. 침대 위치를 반대 벽 쪽으로 옮기고 옆집과 맞닿은 벽에는 옷장과 서랍장으로 일종의 소음 방어벽을 구축하면 조금 나아질것 같았다.
'이 큰 가구들을 어떻게 혼자 이동시키지?'
커다란 침대와 엄청난 크기의 옷장, 서랍장, 책장까지 혼자서는 도저히 옮길 여력이 되지 않는다. 지인들에게도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포털을 검색해 제법 후기가 좋고 전문적으로 가구만 재배치하는 업체에 의뢰했다. 예상보다 비용이 커서 고민하다가 나의 원대한 계획을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뭘 그렇게까지 하냐고, 그냥 좀 참고 살라고' 반대하셨다. 그러나 나는 일분일초라도 빨리 지금 이 소음 지옥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옆집에서 재체기하고 코 풀고 화장실 변기 커버 여닿는 소리까지 다 들린다 말씀드리자 혼자 사는 여성의 집에 낯선 사람을 함부로 들이는 건 위험하다며 잘 알아보라 하시고는 더 이상 반대하지 않으셨다.
결국 알아보았던 가구 재배치 전문 업체를 불렀고 워낙 작은 집이라 순식간에 가구 재배치가 끝났다. 예상대로 옆 집과 공유하는 벽 옷장과 책장로 차단벽을 구축하니 집 안에서 체감하는 소음 수준이 한결 나아졌다. 물론 모든 소음들은 이 건물 자체의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완전히 해결 할 수 없었지만 가구 재배치는 '정말 잘했다' 싶은 한 수 였다. 아직 눈과 손에 익지 않은 가구 재배치 덕에 귀가하면 마치 다른 집에 온 것 같은 색다른 느낌도 든다.
하지만 이 역시 임시방편일 뿐.
과연 서울 하늘 아래 '마이 스윗 홈'은 어디란 말인가.
<독립하면 저절로 되는 줄 알았어>
제 1장. 아무것도 쉽지 않았어 - 8번째 글
도서 출간: 2021년 1월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