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버릴 수 없는 청약 통장

내 집 마련. 나는 포기하지 않아!

by 도시 언니

청약 통장


입사 하고 얼마 후, 한창 재형 저축 바람이 불었다. 이자율이 높다고 입소문이 나 주변에서 동기들이 너도나도 가입하자 나도 덩달아 별 생각없이 가입했다. 친절한 은행 언니가 통장을 개설해주면서 내게 '재형 저축도 좋지만 청약통장이 없다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빨리 들어 놓는게 좋다'고 같이 가입하길 권했다.


재태크에 무지했지만 어릴 때부터 주변에서 귀동냥으로 청약 저축에 대해서는 몇 번 들어보기도 했고 월에 최소 2만 원만 납입하면 된다는 말에 함께 그 자리에서 냉큼 가입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지만 고작 월에 2만 원씩 납입했다고 통장에 엄청난 목돈이 모이진 않았다.


1년이라 해봤자 24만 원, 3년을 모아봤지만 고작 100만 원도 안되는 돈이다. 청약 통장은 내가 해지하거나 청약에 당첨되지 않는 이상 인출할 수 없는 돈이기 때문에 그렇게 내 뇌리에서 통장의 존재는 희미해져 갔다. 월급날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각종 카드 대금들과 공과금, 보험금 틈에서 2만원은 매우 미미한 존재였다.


그런데 길어봤자 3~4년이면 끝날 것 같았던 나의 1인 가구 생활이 생각보다 몹시 길어졌다. 그 사이 무섭게 치솟은 서울 집값에 전월세 값도 덩달아 폭발적으로 상승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20대 때 부모님께서 '수도권에 작은 평수의 아파트라도 하나 사놔야 하지 않냐'고 권하셨지만 그때는 "내가 무슨 집을 사!"라며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부모님의 혜안은 실로 엄청난 것이였다.



역시, 부모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그 때까지만 해도 대출 규제가 빡세지 않을 때라 중도금 대출이 최대 80%까지 가능했다. 비록 회사를 다닌 지 몇 년 되지 않은 사원 나부랭이로서 모아놓은 목돈이 많지 않았어도 대출을 최대로 받으면 수도권도 아닌 서울 끄트머리에 있는 회사 근처에, 무려 '인 서울'에 2~3억대 소형 아파트 한 채는 넘볼 만 했다.


그러나 그때는 내 자취 생활이 이렇게 장기전이 될 줄 몰랐고 어린 나이에 내 명의로 억대 빚을 지는 것도 무서웠다. 지금이야 '빚도 자산'이라며 친구들과 자조 섞인 농담을 하고, '진정한 성인이라면 빚 1억 정도는 뭐 다 기본이지!' 라며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웃어 넘기지만 사회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20대 사회 초년생에게는 내 집마련보다 관심있는 것들이 세상에 넘쳤다.


30대가 되어 뒤늦게 아차 싶어 주변을 기웃거려 봤지만 이게 정말 가당키나 한 값이 맞나 싶을 정도로 서울 하늘 아래 집 값은 엄청났다. 성실한 월급 개미로 어떻게 비벼볼만한 금액들이 아니지 아니었다. 서울 중심부야 두 말하면 입아프고 동서남북 서울 변두리까지 최소 5억은 기본이었다.


갑자기 서울 하늘 아래 내 한 몸 편히 누윌 곳을 영영 못 찾을 것 같아 두렵고 절망스러웠다. 어릴 때 나처럼 어리바리했던 친구들도 2~3년 전에 결혼하며 부부의 신용을 영혼까지 끌어모아 어찌저찌 집을 마련했거나, 운 좋게 신혼부부 특공으로 청약에 당첨되며 하나 둘, 내 집 마련들을 이뤘다. 남들은 시집 장가가서 집도 사고 차도 사는데 대체 나는 그동안 뭐했나 싶은 생각에 우울해졌다.


바보. 무지랭이. 멍청이

바보. 무지랭이. 멍청이

바보. 무지랭이. 멍청이


세상 똑쟁인 척은 다했지만 결국 바보 멍청이 무지랭이 헛똑똑이라고 자책했다.


뒤늦게 확인한 청약통장의 존재도, 산출해보니 고작 10점대인 갸륵한 내 청약 점수도 다 짜증나고 속상했다. 가점제 위주로 바뀐 청약제도와 중도금 대출 비율이 40%로 반 토막난 정책에 더해 그와중에도 계속 치솟는 서울 집값이 더욱더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이렇게 나 혼자 서울 하늘 아래 발 편히 누일 곳 하나 갖지 못하고 생을 마감해야 하는가! 성실한 개미이자 선량한 시민으로서 억울하고 원통해서 도저히 이대로는 눈을 못 감지 싶다.



그래도 믿을 건 너하나


분통터지지만 그래도 기댈 건 청약 통장 하나다. 85제곱미터를 기준으로 인 서울은 최소 300만 원, 수도권은 200만 원의 납입금이 필요하다. 청약 통장을 개설하고 2년이 넘으면 해당 금액을 한꺼번에 납입해도 된단다. 그래서 일단 청약에 300만 원을 일시 납입했다.


그런데 문제는 가점제. 청약 점수가 높은 사람 위주로 주택을 배정한다는 이야기인데 앞서 말했듯 내 청약 점수는 고작 20점이 안되는 갸륵한 점수라 당첨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수준이다. 여기저기 조사해보니 60점은 되어야 하는 것 같던데. 또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렇다면 눈을 돌려 추첨제에 응모해야 할까? 조사해보니 추첨제는 대부분 85제곱미터 이상, 즉 대형 평수 대상이라 나같이 청약 점수가 낮은 사람도 기대해 봄직했지만 서울 지역 기준 최소 납입금이 600만 원으로 커진다. 600만 원을 언제 될지도 모르는 당첨 확률에 기대하며 묶어둘 생각을 하니 또 고민이 됐다.


그렇지만 별 수 없지 않은가. 평생 쫄쫄 굶고 걸어다녀도 피같이 소중한 월급만 모아서는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은 꿈도 못꾼다. 백 번 양보해서 안먹고 안사고 무소유의 삶을 산다고 해도 해도 그 사이 또 집값은 껑충 뛰어 있을 테니 도저히 전투력이 상승하지 않는다. 그냥 내 집 마련을 포기하고 싶어졌다.


그러자 모태 문과생으로서 대입 준비 때 '수포자(수학 포기자)'의 길을 걸었던 것이 떠오른다. 요즘 내 주변에 심심치 않게 '집포자(집 소유를 포기하는 자)' 들이 그때와 비슷한 심정인 것 같다. 지방은 상황이 조금 다르겠지만 문제는 밥벌이다. 연고지가 아닌 곳에서 혼자 생계 활동을 할 자신이 없고 특출한 기술도 없는 사무직 월급쟁이는 그저 고개를 숙인다. 친구들과 술자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밤하늘을 반짝반짝 수놓은 수많은 고층 아파트들을 바라보며,


"나는 포기하지 않아! 그래도 할 수 있어! 가질 꺼야! 내 집!"


알코올의 힘을 빌어 소리 질렀다. 안쓰러웠던 건지, 친구들은 내 두 손을 꼭 잡고 "그래 너라면 할 수 있겠다"라고 토탁이며 택시 태워 보내줬다. 찌잉 눈물이 고인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아. 로또도 다 되는 사람들 있잖아악!!!"


Cheer up Baby.


<독립하면 저절로 되는 줄 알았어>
제 2장.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 5번째 글
도서 출간: 2021년 1월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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