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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언니 Jun 28. 2020

경력 개발서를 냈다가 팀장님께 소환당했다(1)

남의 집 귀한 자식입니다.

 신입 사원 시절, 회사에서 경력 개발서를 작성해 인사 시스템이 입력하라는 공지가 내려왔다. 당시 나는 입사 한 지 반년이 훌쩍 넘었지만, 길고 긴 교육 기간을 거치느라 부서 발령을 받은 지 겨우 3개월도 채 안된 그야말로 '햇병아리 신입사원'이었다. 시스템에 접속해 작성 양식을 살펴보니 앞으로 조직 내에서 어떻게 성장하고 싶은지 본인의 장래 커리어 패스를 연차별로, 희망 직무를 선택하며 팀이름도 예시로 기입하게 되어있는, 매우 구체적으로 작성해야 되는 서류였다.


 한동안 퇴근하고 집에 와서도 몇 날 며칠을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서류를 작성하고 저장, 최종 제출 버튼을 눌렀다. 그게 앞으로 그렇게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줄 전혀 몰랐다. 이후로 선배들을 종종종 쫓아다니며 일을 배우는 병아리 사원의 일상을 계속하고 있는데 별안간, 난데없이 팀장님이 나를 잠시 따로 보자고 하신다.


 주간 업무를 마치고 잠시 나만 따로 남으라는 말에 선배들도 호기심 어린, 의아한 눈빛을 보냈지만 이내 빠르게 회의실을 나갔다. '왜 그러시지?' 싶어 딱히 잘못 한 일도 없는데도 괜시리 마음이 떨렸다. 가까이 와서 앉으라는 말씀에 신입사원으로 회의실 구석에 쭈그러져 있던 나는 팀장님 곁으로 다가가 어정쩡하게 의자에 걸터앉았다.



  혹시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서 꾸중이라도 들을까 머릿속으로 그간의 내 행적들을 빠르게 복기해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전혀 짚이는 내용이 없었다. 팀장님과 배치 면담 이후로 이렇게 가까이에서 단 둘만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는데 나도 모르는 뭔가 큰 실수를 했나 싶어 콩알만 한 병아리 심장이 빠르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빠르게 치솟는 심장 박동수와 다르게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한 눈에도 잔뜩 긴장하고 있는 병아리 사원을 보시던 팀장님은 말없이 본인의 업무 수첩에서 종이 한 장을 쓱 꺼내 건네주셨다.


 A4 용지를 반으로 접은 종이를 펼치니 바로 내 경력기술서였다. 별안간 '이게 왜?'라는 눈빛을 보내자 팀장님은 그제야 말문을 여셨다. "OO님, 이것 때문에 나 어제 인사팀에 불려 갔다 왔어요." "네? 왜?......" 전혀 영문을 모르겠다는 내게 팀장님은 다시 차분히 말씀하셨다. "혹시 왜 이렇게 썼는지 이야기해 줄 수 있어요?"라고 하시길래 여전히 전혀 사태 파악이 안 되던 나는 "이게 뭐 잘못 되었나요?"라고 다시 여쭤봤다. 정말 몰라서 물었다. 회사에서 작성해서 내라길래 기한 내 작성해서 제출했는데 대체 뭐가 잘못되었던 말인가.


 " 이렇게 여러 팀을 썼어요? 혹시 우리 팀에 있는  싫어요?"라는 팀장님에 질문에도 나는 내게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사태(?) 원인은 내가 작성한 경력 개발서의 "내용" 때문이었다. 당시 직군으로 분류하면 영업직이었던 나는 앞으로도 계속 회사에 영업직으로 근무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내가 원해서 지원한 직무였지만 나는 보다 다양한 직무 경험을 원했다. 신입 사원 교육 때 들었던 사내의 다양한 직무들과 업무들은 내가 취준생 때 장님 코끼리 다리 짚듯 유추했던 것들과 사뭇 달랐다. 훨씬 방대했고 스펙트럼도 넓었으며, 실제로 그 일을 하는 선배들의 인터뷰 중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일들도 많았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크게 2-3년 텀으로 '영업(당시 팀) - 영업(내가 속하지 않았던 다른 채널 영업) - 마케팅 - 전략기획 - 글로벌' 업무를 하겠다고 작성해서 제출했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병아리 신입사원 주제에 원대한 커리어 패스를 꿈꾸던 나의 경력 개발서를 보고 인사팀에서 우리 팀장님을 호출했다는 것이다. 인사팀의 요지는 '리더로서 직무 지도를 잘못 한 것이 아니냐. 교육생 시절부터 개성이 강한 편인데 팀이나 주어진 업무에 적응 못하고 이런 식으로 항의하는 거 아니냐, 그리고 뜬금없이 영업직이 무슨 전략기획이냐, 라며 뭘 제대로 알고 하는 소리냐. 신입 사원 지도를 어떻게 하는 것이냐'며 다시 제출하게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사내에서 타고난 리더로 각종 멘토링의 선도자로 손 뽑히던 우리 팀장님은 인사팀에게 감히 리더 역량에 대해 훈계를 받아 자존심에 큰 스크래치가 났지만 일단 당사자인 나와 이야기해 보시겠다고 하고 돌아오셨단다. 인사팀에서 들은 이야기를 전해 주시는데 당황하여 얼굴이 홍시감처럼 빨개졌다. 나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 작성해서 낸 것에는 분명히 나름의 명확한 이유가 다 있었다.



-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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