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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언니 Jul 03. 2020

부서 배치 경쟁. 그리고 상처(2)

남의 집 귀한 자식입니다.

 맹수의 새끼들처럼 참 맹렬히 싸웠다. 다들 원하는 바가 확실했고 아무도 망해가는 전통 채널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 눈치 싸움과 경쟁은 시간이 갈수록 치열해졌고 분위기는 점점 더 싸늘해졌다.


 서로의 과제를 숨기는 것은 기본이요, 교대로 돌아가며 2주간 순환 근무하는 팀에서도 그 팀의 팀장님과, 선배들에게 서로 잘 보이려고 발버둥 쳤다. 나는 특히 나와 동일하게 메인 채널에, 패션 카테고리를 1순위로 희망하는 동기와 많이 다퉜다. 다 큰 어른들이 유치하게 서로를 뒤에서 비방하기도 했고 비록 나이가 제일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연상인 동기들과 물불 안 가리고 언쟁했다. 여차하면 멱살까지 잡을 기세였다. 인사 담당자들은 그런 우리를 중재하긴 커녕 경쟁을 더욱 부추겼다.


 지금도 화가 나고 참 괘씸한 사실은 부서 배치는 애초에 이미 대부분 정해져 있었다는 점이다. 신입사원 채용을 하기 전에 각 부서별로 TO를 사전 취합해 처음부터 해당 부서의 업무 특성에 부합하는 역량을 가진 우리를 뽑은 것이다. 그들은 다 계획이 있었다.



 가령 패션 부서에는 패션 전공자를 원했고 생활 부서는 글로벌 진출 시 가장 선봉을 서는 카테고리 특성상 현지어에 능하고 여차하면 해외 파견 근무가 가능한 글로벌 인재가 필요했다. 상대적으로 영업이 터프한 전자나 가전 부서에서는 술도 잘 먹고 체력도 좋은 걸출한 남사원을 원했고 뷰티는 여차하면 본인 얼굴도 미디어에 홍보용으로 노출시킬 수 있는 인플루언서 타입의 신입을 원했다.


 현업의 니즈에 맞게 이미 입사 때부터 쓸모가 90% 이상 정해져 있었지만 순진한 우리는 그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훗날 부서가 배치되고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됐을 때 허탈감이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그럼 그동안 우리의 치열한 전쟁은 다 뭐였단 말인가.


 대체 ? 인사팀에서는 우리를 경쟁시켜 교육 성과물과 본인들의 퍼포먼스가 극대화되길 바랬다. 그래서 뻔히 서로 피를 철철 흘리고 싸우고 있는데도 가만히 불구경하듯이 바라보거나 우리를 벼랑 끝까지 내몰았다. 몸만 큰 어린이였던 우리는 그 판에 놀아나며 소위 박 터지게 싸웠다.


 전장에서 믿을 것이라곤 내 옆에 전우 밖에 없는데. 앞으로 회사에서 얼마나 험한 가시 받길을 가야 하는데. 전우애는커녕 결과가 정해진 판에 꼭두각시처럼 이용당하며 분열하다 감정만 상한 채 애초에 반고정적으로 정해져 있던 자리로 6개월 만에 흩어졌다.


 똑같은 직무에, 동일한 채널과 카테고리를 지원했다는 것은 팽팽하게 경쟁해야 할 라이벌을 의미하는 것이 다가 아니다. 사실 누구보다 비슷한 성향과 관심사를 가진 사람, 그래서 서로 마음 터놓고 의지할 소울메이트가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든든한 전우이자 친구가 될 수 있었던 우리였는데 조직의 농간에 서로의 관계는 싸늘했다. 그렇게 경쟁 했는데 결국 본인이 원했던 채널과 카테고리 모두를 얻은 사람은 없었다.


 나는 1등을 하지 못했다. 원하던 패션 카테고리로 배정받았지만 메인 채널에 가지 못하고 신생 채널로 밀려났다. 그곳이 원래 내가 내정된 자리였다는 것도 모르고 경쟁에서 졌다고 생각해 마냥 억울하고 분했다. 속상한 마음에 한동안 최종 배치된 팀에서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방황했다.

  

 다른 동기들은 어땠을까? 1등을 거머쥔 동기는 그럴 계획이 없었는데 1등 하면 원하는 곳으로 보내준다고 낚시질한 인사팀에서 공수표를 수습하느라 그 친구가 지목한 팀은 정작 신입 TO가 없었는데도 강제로 배치해 졸지에 팀에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남의 자리인 줄도 모르고 희망하던 팀에 가고 싶어 낮이고 밤이고 그 팀 선배들을 따라다니고 각종 회식 자리에도 참석하며 광대 역할을 자처했던 또다른 동기는 누구도 원치 않았던 전통 채널에 배치받아 한동안 멘탈이 나갔다.



 누구 하나 승리했다고 할 수 없었지만 이미 금이 가버린 우리 사이는 서로 이것저것 챙겨주며 여기저기 신나게 놀러 다니던 예전 같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각자 팀 막내로 눈칫밥을 먹으며 팀 선배들에게 억울하게 혼나도, 말도 안되는 갑질을 당해도 찍소리도 못하고 설움을 삼키는 서로의 모습을 몰래 힐긋거리만 할 뿐 제대로 된 위로조차 건네지 못했다.


  그러다 6명 중 한 명이 퇴사하게 됐다. 도저히 선배들 갈굼을 더이상 견디기 힘들고 일도 적성에도 안 맞는 것 같다며, 이 길은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며 끝내 퇴사를 선택한 동기의 마지막 환송회 자리에서 참 오랜만에 전부 모여 그제까지 각자 남몰래 마음에 담아 놓았던 설움과 후회를 털어놨다. 서로에게 미안했던 마음과 끝내 혼자 퇴사를 결정했던 친구에게 진작에 힘이 되어주지 못했던 안타까운 마음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금새 눈물바다가 됐다. 그 때 우리는 진급을 앞 둔 사원 말년차였다. 그동안 벙어리 냉가슴 앓듯 혼자 버텼던 동기가 떠난다고 하자 그제야 우리의 못난 시간들을 후회하며 다시 모였지만 이미 늦었다.


 싸움의 불씨를 제공한 사람들에게 원망스러운 마음이 아직 마음 한 구석에 남아 그 때 인사 담당자들을 다시 만나면 꼭 왜 그랬냐고 물어보고 싶다. 설혹 그런 날이 온다 한들 아마 그는 나를, 우리를, 그리고 우리가 피 터지게 싸웠던 시간들을 제대로 기억조차 못할지도 모른다. 오히려 니들끼리 치고받고 싸워놓고 왜 자기한테 따지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자기도 더 윗사람, 혹은 조직에서 시켜서 그랬다고 대답할까? 그저 의욕만 넘쳤지 순진한 바보였던 우리 탓이었을까.


 다시 시간이 흘러 신입 사원 교육이나 멘토링 시간에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조언 한마디 해 줄 수 있냐는 요청을 받으면 내 대답은 늘 한결같다. "동기들이랑 싸우지 마세요. 서로 부족하고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많아도 앞으로 여러분이 가야할 가시밭길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동기들 밖에 없어요. 지금 한 발 앞서가는 것 같아도, 혼자 치고 나가면서 올라가도 곁에 아무도 없을 수 있어요. 어차피 나중에 다 헤어지게 될 테니까 옆에 있을 때 서로 잘해주세요. 나중에 후회하면 너무 늦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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