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한 마음과 고요한 봄밤

by 틈새

일이 너무 많았다. 아니 일이 이상해서 많게 느껴졌다. 일은 그대로인데 일을 미로에 넣어서 주는 기가 막힌 방법으로 일하는 상사. 측은지심을 갖되, 시시비비를 가리지말자다짐해도 상사의 비논리에 내 논리와 감정 그리고 자존감 모두가 도미노마냥 무너지곤 했다. 상담교사의 4월은 안그래도정서·행동 특성 검사로 바쁜데, 일까지 엉망으로 들어오니 미칠 노릇이었다. 초임교사는 힘들다고 듣기는 들었어도 이렇게까지일줄은 몰랐다.


금요일 저녁, 엄마가 벚꽃 보러 가자고 했다. 그나마의

위안이 될 줄 알았다. 근데 거기도 시끄러웠다.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회사에서 보면 똑같이 밥먹고 똥싸며 사는데 어찌 이리 다른가 싶었건만, 벚꽃 예쁘다고 한가득 모인 사람들을 보면 사람 사는게 거기서 거기인가 싶고 참 알다가도 모를 사람, 알다가도 모를 삶이다.


요즘 일을 마치면 늘 심리적 허기가 찾아온다. 이에 달디단밤양갱 대신 브라보콘을 먹었다. 아 칸쵸도. 벚꽃보다 강아지가 더 많아 보였고, 아기도 많았다. 지금 꽃을 안 보면 나중에 아쉬울 것 같아서 간 건데, 막상 보면 또 별거 없다.학교 일도 그런걸까. 거대해 보이지만, 사실 별거 없는. 짧은 꽃놀이를 마치고 샌드위치를 또 우걱우걱 먹었다. 아 미니 슈도. 소금빵까지 먹으려다 엄마가 말렸다. 회사 빌런도 이렇게 말릴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잠깐 피었다 지는벚꽃처럼, 금세 사라지는 사람이면 좋을 텐데. 학교라는 회사 속에서 무기력과 분노가 동시에 올라온다. 영혼이 학교라는 회사에서 파괴되는 느낌. 더 큰 문제는 너무 문제가 많아 무엇이 문제인지도 정확히 모르겠다는 거다. 아니면 그냥 내 존재 자체가 문제인건가 싶기도 하고.


그 분노인지 슬픔인지 뭔지 모를 감정을 끌고 스쿼시장에 갔다. 타앙, 타앙. 공이 벽을 칠 때마다 속이 조금 시원해졌다. 벽이 빌런의 머리였으면… 이런 생각을 하다 말고, 아차, 나는 상담교사지. 생각을 접는다. 이런 파괴적인 상상이 나까지도 파괴한다는 걸, 이제는 좀 안다. 화 속에는 사실 사랑이 있나보다 싶기도 하다. 사랑하는 내 자신이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일하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 이에 더해 사랑하는 학생들이 제대로된 상담 환경에서 상담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뭐 또 그런 마음. 그렇다. 난 일을 사랑하고 일에 진심이다. 이런 나를 보고 엄마가 그랬다. 넌 매사 너무 진심이라 문제라고. 그래 나만 또 진심이었지뭐.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벚꽃을 다시 만났다. 이번엔 조용한 골목에서. 사람이 없었다. 고요한 밤의 벚꽃은, 낮과는 전혀 달랐다. 소리 없이 빛나는 그 단단함. 그걸 보며 생각했다. 그래, 나도 저렇게 빛날 수 있을지 몰라. 밤을 견디는 벚꽃. 조용하고, 단단하게. 밤은 회사 빌런이었다. 조용한데, 존재감이 크다. 나를 지배하는 밤. 나는 그 속에서 피어난다. 조금 느리게, 찌그러져도. 소란하지 않은 이 고요한 봄밤을 버텨내면, 여름방학이 오겠지. 이래도 되나 싶지만, 방학에서 교사로서의 그나마의 자존감을 챙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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