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온기로 느끼는 세계

/ 조금만 더 무해하게 살아보기 /

by 밀품

22.2.15


열을 내는 존재들은 내가 아는 한에서는 다들 근본적으로는 무해한 존재인 것 같다. 아니, 섭리로 본다면 살아갈 수 있도록 영향을 주고받으니 무해함을 넘어 유익하다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인간도 서로에겐 서로가 필요하다. 동물도 서로 간에 생존을 위해 서로가 꼭 필요한 존재이고, 인간과 동물 간에도 위로라는 감정을 넘어 동반의 관계로 삶이라는 길 위를 나란히 걷고 있으니 말이다.




요즘 나의 퇴비함을 만나러 갈 때마다 열을 내는 다른 존재를 발견하고 느끼고 있다. 음식 잔여물들도 만들어지고 있는 퇴비는 120리터의 파란 플라스틱 통 안에서 내가 보지 못하는 세계를 세우고 있는 것 같다. 구성원은 음식 잔여물, 흙, 낙엽, 커피 찌꺼기인데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존재와 섭리의 수레바퀴가 이 통 안에서 돌아가는 게 분명했다. 그걸 몸소 느낀 건, 고무장갑을 끼고 퇴비를 위아래로 뒤집을 때였다.




퇴비가 쌓일수록 가지고 있던 장난감 삽으로는 도저히 퇴비 통 바닥까지 뒤집을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고무장갑을 끼고 손으로 퇴비 통을 뒤집고 있는데 신기한 건 한 겨울 내내 옥상 영하에 노출된 퇴비 속은 따뜻하다는 것이다. 퇴비 통 벽에서 중심으로 갈수록 고무장갑을 타고 느껴지는 열감이 겨울 찬바람과 대비되어 더 신기했다. 어느 날엔 퇴비 속 온도와 밖의 온도 차이 때문에 폴폴폴 입김 같은 연기가 나기도 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고 온화하게 따뜻한 기운이 손에 닿으면 이 안에 누가 있구나, 나 모르게 펼쳐진 세계를 실감하게 된다. 발효라는 세계, 미생물들의 세계, 미세하다는 표현으로는 너무 크고, 수많은 이라고는 표현으로도 너무 적은 무엇들이 먹고 숨 쉬고 배출하고 분해하며 새롭고 이로운 퇴비라는 것을 생산해내는 과정인 것이다. 볼 수는 없었지만 그것을 나는 손의 온도로 느꼈다.




굉장한 느낌이다. 이미 과학적으로 발견된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느끼며 살 수는 없으니, 새로운 것이 아니라 한들 나로서는 이 이로운 세계를 영접하는 기회를 맞은 것이 큰 영광이 아닐 수 없다. 큰 삽을 사지 않고 고무장갑 낄 생각을 한 스스로를 칭찬한다. 더 퇴비가 깊어지면 고무장갑도 소용이 없을 때가 올 테지만 최대한 오래오래 내 손으로 퇴비 속의 세계를 느끼고 싶다. 퇴비함 뚜껑을 열고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안을 들여다보는 거대 인간을 미세한 이 존재들은 어떻게 올려다볼지 상상해본다. 나도 이로운 존재가 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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