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편지 #2
십년 전쯤에, 눈앞에 갑자기 나타나 이름이 뭐냐고 물어본 남자가 있었어. 나는 그 사람에게 한눈에 반해버렸지. 이름도 직업도 나이도,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말야. 그냥 한눈에 반하는 거. 진짜 그런 게 있더라구.
첫 약속 장소도 기억나. 추운 겨울이어서 코엑스 건물 안에서 데이트를 했어. 같이 걷다보니 사람들 시선이 느껴지더라. 눈에 뛸 만큼 멋진 남자였거든. 그 옆에 선 나도 예뻐보이고 싶어서 나갈 준비를 세시간을 넘게 했었는데, 나는 그에 비해 평범한 것 같아 약간 주눅이 들었어. 근데 그가 거울에 비친 우리를 보고 이렇게 말하더라,
‘우리 되게 잘 어울린다, 너 예뻐.’
그러고 손을 딱 잡는거야. 나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손에 이끌리듯 바닥을 보고 걸었어. 그 때 내 손을 잡으면서 가까이 왔는데, 향기가 났어. 어떤 낯선 향, 그게 너무 설렜어. 한눈에 반한 것과는 달리 정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어. 그가 말하기를, 나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옷보다는 향수를 제일 고민했대. 내가 좋아할 것 같은 향기를 찾으려고 어제 세시간을 돌아다녔다고.
근데 사실, 그와는 딱 두번의 데이트만 하고, 세번은 만나지 못했어. 그냥 아무 것도 아닌 사이로 끝난 거지 뭐. 사실 이름도 잘 기억이 안나. 근데 말야, 어느 날 길을 걷는데 그 향기가 나는 거야. 강남 길거리 한복판에서 갑자기 스치듯. 그 사람인 줄 알고, 뛰어가서 그 사람을 잡았는데, 전혀 모르는 낯선 남자였어. 나중에 알고보니 그 향수는 남자들이 참 많이도 쓰는 유명한 향수더라. 아마도 백화점 직원이 추천해줬겠지. 이게 여자분들에게 인기가 많아요, 뭐 그런 식으로.
아직도 그 향기가 스치면 그 남자 생각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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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 향수를 하나 샀어. 오래 전부터 갖고 싶었던 브랜드의 향수였는데 딱 이거다,하고 마음에 드는 게 없었거든. 매장 직원에게 이런 분위기의 향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해서 추천받은 향은.. 그저 그랬어. 다섯 종류의 향을 시향지에 뿌려보다가 마지막 향수가 손목에 살짝 묻었어. 이번에도 실패인가 싶어 그냥 매장을 나왔지.
근데 있잖아, 사람들 사이를 지나서 걷다가 머리를 묶었는데, 향기가 나는 거야.
그거,어젯 밤에 맡은 냄새였어. 너랑 잤을 때 나는 냄새와 같았어.
내 몸에서 네 냄새가 났어.
그걸 샀어. 처음 써보는 향수지만 이미 아는 향기를. 너와 있을 때 나던, 부드럽고 진한 살 냄새. 아마 너에게도 나에게도 그 향기는 없었을 거야. 낯선 관계의 사이엔 낯선 냄새만 머물잖아. 하지만 우리가 같이 몸을 맞대고 안은 새벽부터 아침까지는 그 냄새가 방안에 가득했었어. 아마도 너와 함께 일때만 그 냄새가 내게 날거야. 니가 나를 안아야만 내게 피어나는 향이 아니었을까.
그 향수를 뿌리고 길을 걷는데 아직도 너와 있었던 침대위에 있는 것 같아.
다음에 너를 만날 때는 이 향수를 입을거야. 목과 손, 그리고 가슴 안쪽에 한번씩 뿌릴거야. 향이 깊은 곳에서 숨어있다가, 너만 맡을 수 있게 할거야.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을 때 네 코끝에 향이 묻고, 팔 안쪽을 손가락을 어루만지면 네 손 끝에 내 냄새가 남았으면 좋겠어. 가슴 사이에 네가 얼굴을 묻고, 외로웠다고 말하며, 울었으면 좋겠어. 너는 늘 강한 척 하잖아. 내 앞에서는 그럴 필요 없는데. 이기적이고 약하고 바보같아도 괜찮은데.
아직도 내 몸에서 네 향기가 나.
/봉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