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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현 Apr 06. 2019

아침도 새벽도 아닌

다섯시 반에 일어나기

“우리가 그날 무엇을 하려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결정한 후에 매일 정확히 똑같은 시간에 어김없이 행하면 열정에 휘둘릴 틈이 없다.” 오든은 아침 6시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끓였고, 곧바로 십자말풀이의 한 줄을 풀고는 글 쓰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의 직관력이 오전 7시부터 11시 30분까지 가장 민감해서 그 시간을 활용하지 않은 적이 거의 없었다. /위스턴 휴 오든 / 시인 - 리추얼 22p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난 지 5일째 날이다. 아직 새카맣게 어둡다. 암막 커튼이 쳐진 침실은 더 어둡고 집은 고요하다. 파자마를 겹쳐 입고 이불을 정리하고 일어나 물을 한 컵 마시고 커피를 내린다. 원두가 슬슬 떨어져 간다. 커피를 내리는 동안 마른 그릇들을 찬장에 정리하고 모카포트가 끓는 것을 서서 가만히 지켜본다. 아직도 해는 뜨지 않았다. 겨울과 봄 그 사이쯤 계절이라 해가 아직은 늦다. 밖이 아직 어두운데도 새소리가 들린다. 밤에 우는 것이 아닌 아침에 노래한다는 게 더 잘 어울리겠지. 이 시간엔 BBC 라디오를 틀어두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알아 듣고 그저 배경 음악처럼 그냥 둘뿐이다. 애써 알아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냥, 음악과 다름없다. 낯선 사람의 목소리가 덜 깬 잠을 깨워주니까. 커피가 끓으면 잔을 들고 책상에 앉아 글을 쓴다. 여섯시부터 쓸 수 있는 만큼만. 지금은 제대로 원고를 쓰는 중이 아니라서 가볍게 쓴다. 책을 읽거나 청소를 하고 티비를 본 날도 있었다. 다음 주부터 다섯번째 책의 원고를 쓰기 시작할테니, 잠깐뿐인 이 평화로운 글쓰기를 즐기자. 준비운동 같은 거라고 생각하며.


 그동안 아침은커녕 새벽에 자고 오후나 저녁에 일어났다. 건강이 걱정되어 운동을 시작했는데도 오히려 더 피곤했고 하루 가는 무척 짧고 무기력했다. 하는 일이 거의 없이 시간만 보냈다. 시간이 가는 데로 끌려가는 상태였다. 대체 뭐하고 사는 것인가 싶어 다시 새벽 생활을 시작했다. 다시 글을 써야만 했다. 한번 해본 적이 있었기에 큰 결심이나 계획은 필요 없었다. 일찍 일어나기 위해 일찍 자려고 하지도 않았다. 몇 시에 자든 다시 낮잠을 자든 여섯시 전에 일어나는 것만 했다.


4/2 화요일 5시 22분 기상. 12시에 잤고 5시간 무척 깊게 잤다.

4/3 수요일 새벽 1시 반에 자고 5시 반에 일어났다.

4/4 목요일 3시 넘어 잤던 탓에 6시 십분 기상.

4/5 금요일 12시 전에 잤고 5시 사십분에 일어났다.

4/6 토요일 2시 반에 잤지만 5시 삼십오분에 일어났다.


몇 시에 자든 몇 시간을 잤든 해 뜨기 전에 일어나기. 친구가 군대도 직장인도 그렇게 안 일어난다며 여섯 일곱시쯤이 적당하지 않냐고 했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시간에 깨는 게 더 힘들다. 다섯시 십분쯤 되면 잠깐 눈이 떠지는데, 어둠 속에서 눈을 천천히 깨워서 시계를 보고 알람 전에 일어난다. 알람은 5시 사십분에 맞춰두었다. 해뜨기 전의 그 삼십분-한 시간 정도가 가장 좋다. 내 세상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도 없으며 어떤 고민도 없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 머리도 행동도 아주 느리게 흘러가는 새벽과 아침의 경계를 위한 기상.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다가, 담배를 하나 피고 멍하니 앉아 창밖을 본다. 눈이 부시게 날이 밝았다. 겨우내 시든 나무를 창가로 옮겨둔 지 5일째. 미안하고 기운을 냈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다시 봄이 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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