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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남 Feb 27. 2020

못다 한 프러포즈 II

내 아내 

# 못다 한 프러포즈


Scene #2

군대 가기 일주일 전, 그녀에게는 꼭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만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그녀가 있을 만한 강의실로 무작정 찾아갔다. 다행히 그녀는 기말시험 한 과목을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다가가서 곧 군대에 간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러냐며 하면서 그런데 그 사실을 왜 자기에게 알리러 왔는지 모르겠다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주변에 학생들도 많이 있었고 분위기도 좀 어색해서 잘 지내라는 말을 남기고 서둘러 돌아 나오는데 몹시 묘하고 허전했다. 그때 그녀를 보는 마지막 순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절망적인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가 연인 관계도 아니니 군대 가 있는 동안 헤어지는 불행한 일도 없을 것이고 제대 후에는 다시 지금처럼 편한 친구로 만남을 이어갈 수 있을 거라는 위안도 해 보았다. 실제로 내가 휴가 나와 그녀의 집으로 전화를 해서 만나자고 하면 늘 별 거부감 없이 약속 장소로 나오고는 했다. 그리곤 몇 시간 동안 큰 반응 없이 내 수다를 들어주다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주로 명동에서 만났다. 그곳에 그녀가 좋아하는 고전음악이 나오는 카페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밋밋한 그녀와의 만남은 늘 나를 설레게 했고 고된 내 군 생활을 버티게 해 준 원동력이 되었다. 그런 가벼운 만남은 나의 군 생활 내내 지속하였고, 나는 수없이 많은 편지와 엽서를 그녀에게 보냈지만 단 한 번의 답장도 받지 못했다. 결국 학창 시절 우리들의 관계는 친구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수십 년이 흘러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 시절 그녀는 은근히 나의 편지를 기다리고 있었고 내가 보낸 편지는 그녀에게 단비와 같은 기쁨을 주었다고 했다. 내가 그저 립서비스 아니냐고 하자 그녀는 40여 년 보관해온 편지 상자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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