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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남 Mar 02. 2020

못다 한 프러포즈 IV

내 아내

못다  프러포즈 


Scene #4

졸업 후에 그녀는 중앙부처 공무원이 되었다. 가끔 그녀의 퇴근 시간에 맞추어 회사 앞으로 찾아가 만나곤 했다. 정문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보면 멀리서 나를 보고 손을 흔들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달려오곤 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상황이 편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쏟아져 나오는 길목에 서 있는 것도 초라하게 느껴졌고 가끔은 그녀를 알아보며 인사하는 사람들의 시선도 좀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그곳에서 그녀를 만날 때마다 급히 그녀를 데리고 여의도 광장 쪽으로 향하곤 했다.


그녀는 학창 시절 자기 주변을 맴도는 한 녀석 때문에 남자 친구도 없이 외롭게 보냈다고 했다. 그 외로웠던 시절의 보상심리인지 내가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가끔 자기를 보기 위해 나를 회사 앞으로 오라고 하곤 했다. 

 

 이년 후 나도 졸업을 하고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는데 우리의 간절한 바람 때문인지 나의 회사도 여의도에 있었다. 그녀는 우리 회사가 자기 회사 근처에 있다는 것에 크게 기뻐했다. 우리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이 났고 점심시간을 이용해 자주 얼굴을 보았다. 그리곤 여의도의 여러 식당을 전전하며 함께 식사하고 점심시간이 너무 짧은 것을 한탄하며 헤어지곤 했다. 그러나 저녁 시간에는 신입사원이라는 나의 신분 때문에 퇴근이 자유롭지 못해 거의 만나질 못하였다. 


그녀와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서도 엄마가 “너 여자 친구는 있니?” 물어보면 자신 있게 여자 친구가 있다고 대답하지를 못했다. 그냥 편한 친구로 만나는 것인지 연인관계인지 자신도 확신이 없었다.

 

어느 가을 여유로운 주말 오후에 우리는 광화문에 있는 기자의 집이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이 꽤 심각해 보였다.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어보았으나 그녀는 침묵하면서 내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다소 답답해지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한참의 침묵을 깨고 그녀는 진지하게 우리가 어떠한 관계인지 물었다. 나는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다소 당황했지만 이내 침착하게 “좋은 친구?”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평소에 그렇게 차분하던 그녀가 다소 흥분된 표정으로 따져 묻기 시작했다. 그리 오래 만났으면서 왜 아직 손도 안 잡았는지, 우리가 사귀는 관계는 맞는지, 너는 나랑 결혼할 생각은 있는 것인지 등등 막혔던 봇물이 터진 듯이 나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나는 큰 잘못을 하고 선생님께 불려 가 혼나는 학생처럼 순진한 표정을 지으며 반성하는 눈빛으로 그녀의 질책을 듣다가 조그마한 목소리로  “너만 좋다면 결혼하고 싶어”라고 했다. 그랬더니 “너만 좋다면?” 하며 나를 다시 노려보는데 너무 무서웠다. 사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 순간에는 몰랐다. 


잠시 후 그녀는 “네가 나를 너무 좋아해서 네가 나에게 결혼하자고 하는 거야. 이게 정답이야. 알겠니?” 나는 마음을 다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사실 나는 간절하게 그녀와 결혼하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왜 그녀가 원하는 그런 프러포즈를 못 했을까? 나는 그 시절 그녀를 만날 때마다 아름다운 로맨스를 상상하곤 했다. 그녀와 가벼이 손을 잡고 한적한 길을 걷다가 포옹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그 시절 나에게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처음부터 그리 시작하질 않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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