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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남 Jan 20. 2020

구마산 추어탕

내 아내

구마산 추어탕

 

“오늘 저녁 구마산에서 갈비구이와 추어탕 한 그릇 어떠세요?” 


아내에게 함께 저녁을 먹자고 문자를 보냈다. 아내가 추어탕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아침에 의식 없이 누워계신 어머니를 보고 나니 문득 추어탕 한 그릇이 간절했는데, 그래도 편한 아내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한동안 핸드폰의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답이 바로 오지는 않았다. 바빠서 못 보았을 거란 생각을 했다. 


새벽에 어머니를 뵈러 용인에 갔다. 설날에 봤을 때만 해도 괜찮으셨는데 열흘 남짓 사이에 많이 안 좋아졌다. 간호사를 집으로 불러 링거를 놓아드리고 기력이 회복되기를 기다렸다. 누워 계신 어머니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애잔해졌다. 동생과 상의해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장기요양신청서’를 제출했다. 심경이 복잡하고 미묘했다. 


얼마 전 어머니를 모시고 교대역 근처에 있는 류머티즘 병원에 갔다. 치료를 마치고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어머니 집으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얘야, 너 추어탕 좋아하니?” 

“추어탕이 드시고 싶으세요?” 

“…….”

어머니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새벽부터 나와 운전하는 아들을 귀찮게 하는 게 아닐까 싶어 말씀을 못 하신 듯싶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추어탕 식당을 찾아갔더니, 방바닥에 앉아 먹는 구조였다. 

“엄마, 이 식당에서 먹기에는 내가 허리가 안 좋으니 다른 곳으로 가요.”  

결국 우리는 돼지갈비로 점심을 해결했다. 어머니를 댁에 모셔다 드리고 나오는데, 

“선영 아빠야, 오늘 점심 잘 먹었다.” 

“예. 엄마, 다음에는 좋은 곳에 가서 꼭 추어탕 같이 먹어요.” 

금요일 오후여서인지 돌아오는 경부고속도로는 정체가 몹시 심했다.  


처음 직장생활을 여의도에서 했다. 회사 구내식당이 워낙 좋아서 점심은 주로 그곳에서 해결했다. 그런데 가끔은 상사나 선배들과 외식을 했다. 그중 한 곳이 구마산이었다. 그곳에 가면 커다란 석쇠 위에서 구운 소갈비와 추어탕을 먹었다. 갈비의 양념은 간간하고 달짝지근해서 내 입맛에 잘 맞았고 직화로 구워서인지 풍미 또한 훌륭했다. 추어탕의 맛은 다소 심심했는데 여러 번 먹다 보니 그곳의 추어탕이 그리 좋을 수가 없었다. 대학교를 갓 졸업하고 입사한 나에게 그곳은 신세계였다. 


당시 여자 친구였던 아내의 직장도 여의도였다. 우리는 내가 검증한 식당을 전전하며 자주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구마산을 갔다. 아내는 산초 향이 생소했는지 추어탕을 거의 남기다시피 했다. 미꾸라지를 갈아 넣었다는 것도 추어탕에 대한 아내의 흥미를 잃게 했을 것이다. 그러한 연유로 아내와는 이후 구마산에 가질 못했다. 


“좋아요∼^^” 

오후 늦게 아내에게서 짧고 분명한 답장이 왔다. 아내의 퇴근 시간에 맞춰 구마산에 예약했다. 먼저 가서 자리를 잡고 아내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후에 아내로부터 주차하고 올라오겠다는 전화가 왔다. 우선 갈비구이 2인분을 주문했다. 아내가 도착하기도 전에 갈비가 나왔다. 잘 구워진 갈비가 철판에서 지글거리며 맛있는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아내가 빨리 왔으면 했는데 때마침 아내가 들어왔다. 우리는 평소와 달리 많은 대화를 하지는 않았지만, 갈비구이만큼은 맛있게 먹었다.

 

이어 주문한 추어탕 두 그릇이 각자의 앞에 놓였다. 나는 뚝배기에 담긴 뜨거운 추어탕을 말없이 먹었다. 아내도 오늘 어머니의 일을 의식했는지 별말 없이 추어탕을 먹었다.


“몹시 뜨거운데 잘 먹네.” 

아내가 침묵을 깨고 말을 걸어왔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내가 처복이 많잖아.” 

어렸을 때 어른들한테 수없이 들었다. 뜨거운 것 잘 먹으면 배우자 복이 많다고…….

“나는 뜨거운 것 잘 못 먹어도 남편 복은 많은 것 같아.”                                                  

나는 아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내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내는 부드러운 손으로 내 볼을 만졌다. 

“왜 치근덕대시는지요?” 나는 쑥스러워 다소 퉁명스럽게 말했다.

“당신이 좀 외로워 보여서…….” 

“그럼, 당신이 외로워 보일 때 내가 막 만져도 돼?”

“그러시든지.”

이런 실없는 농을 해도 다 받아주고 좋아하지 않는 음식도 함께 먹어주는 아내가 있어 참 다행이다. 

“여보, 우리 구마산에서 추어탕 먹은 지 30년도 넘은 것 같다. 그렇지?” 아내가 미소를 지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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