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주민의 삶을 연구하는 봉사단
어느덧 2017년의 3월이 지나고 미얀마의 봄이 시작되는 4월이 왔다. 한국에서는 봄이지만, 날씨는 한국의 여름과 비슷했다. 이곳에 있으면서 긴 여름에 익숙해져야 했다.
점점 더워져서 어느 순간부터는 야외활동을 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인내심을 테스트하게 된다. 몸이 찝찝하니까 사소한 것들에 예민하게 반응을 하게 된다. 예전에는 출퇴근하며 만나던 교통정체, 자동차 경적 소리, 자기가 먼저라고 들이대는 자동차들을 만나면 대수롭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나도 모르게 속으로 욕을 하거나 짧게나마 신경질적인 고함을 치게 된다.
미얀마에 오고 나서 대학원에서 개발정책을 공부하겠다는 확신을 가졌던 과정들이 다시 생각나고는 했다.
2011년 나의 첫 해외 여행지인 몽골 수도를 여행하며, 대학 선배와 질서 있고 쾌적한 도시를 만들자며 신나게 이야기했던 것이 나의 시작이었다. 2013년에는 태국, 라오스, 미얀마의 시골 지역을 여행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고 아이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2014년 미국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마친 후 페루의 수도 리마에 살아 보면서, 복잡하고 무질서한 대중교통 체계 때문에 매일 출퇴근 시간에 길 위에서 장시간 에너지 소비를 해야 하는 페루 국민들의 고충을 느끼며, 한 나라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일하는 국민들이 편안하고 행복해야 하고, 이를 돕기 위해서 건강한 공공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걸 느꼈었다. 그 짧았던 여행에서 얻은 오감의 체험은 나의 이상과 철학을 변화시켰고, 한국에 돌아와서 나의 삶을 조금씩 변화시켜 나갔다. 2015년 1월 13일, 나는 내 꿈의 청사진을 생생히 그렸다. 그 후 2년 만에 내 꿈을 실현시키는 훈련을 위해 미얀마라는 나라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눈을 감고 무의식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이미 그려진 나의 앞날에 대한 도화지를 펼치기 위해 모든 잡념을 잠재운다. 우리는 무적의 팀! 나를 중심으로 함께하는 팀원들이 테이블에 앉아 있다. 어느 한 열악한 나라에 파견을 나왔다. 내가 만든 지역 탐방 매뉴얼대로 컨설팅을 요청한 국가의 지역 탐방을 실시한 팀원들이 우리가 이용 가능한 자원과 협력 가능 단체에 대한 보고를 하고 함께 모든 가능성을 이용해 만들 수 있는 협력 네트워킹 시나리오를 만든다. 그 안에는 그 지역이 해결해야 할 사회 시스템 문제, 인프라 문제, 노동 문제, 보건, 교육 이슈 등 인간과 환경의 지속 가능한 삶에 관한 모든 주제가 담겨 있다. 팀원들과의 합의를 통해 계획서를 작성하고 컨설팅 요청 국가 및 기관 관료와 공유한다. 논의와 재검토를 통해 최종 청사진을 만들고 각 구성원들은 네트워킹 구축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긴다. 모든 개개인이 참여하여 사회를 일으키는 민주주의를 구현한다. 이것이 곧 현실이 될 나의 솔직한 꿈이다.
그동안 약 3개월 동안 양곤을 구석구석 돌아보면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도시 내 대중교통이 열악함이었다. 시내버스를 타는 건 한 번에 200 짯으로 아주 저렴한 편이지만, 나처럼 금전적 여유가 있는 외국인이나 현지인이라면 붐비는 시간에는 결코 시내버스를 타지 않고 택시를 이용할 것이다. 대중 버스의 90% 이상이 한국과 일본에서 온 오래된 중고 차량이다. 한국에서 사용되던 노선 안내가 그대로 붙어 있다. 공공 서비스에 활용되는 운송수단은 모두 안전 기준을 철저히 검사받고 안전관리에도 철저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시내버스는 정부의 규정을 덜 받기에 안전에 대한 책임감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나는 그동안 버스 사고를 본 적도, 겪은 적도 없지만 출퇴근 시 버스를 타며 안전에 위협을 느낀다. 공공버스인데 탑승자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도로를 질주한다. 운전자가 아무리 운전에 능숙해도 그 실력만 믿고 무법질주를 허락할 수는 없을 거다. (2018년부터 정부 주도로 공공버스 운행 규제가 강해지고, 많은 대중 버스들이 에어컨이 장착된 중국산 새 버스로 교체되면서 대중교통의 질이 좋아졌다).
어느 날은 운전기사가 몇 km로 달리는지 궁금해서 앞으로 다가가 봤더니 글쎄 운전 계기판이 고장 나 있는 게 아닌가…… 현재 운전하는 속도도 모르고 달리는 버스 기사와, 대중 버스의 상태에 대해 관심이 없는 공공행정 모두가 상호 책임이 있다고 본다. 또한 미얀마 현지에서 안전사고와 환경오염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불량 차량을 파는 수출국들의 사회적 책임이 요구된다. 수출국 정부 차원에서 수출업자들을 규제해 수출 전 차량 점검 및 기본 수리를 마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러한 규제를 만들더라도 규제 대상자들이 규제를 따를 동기 및 유인책을 제공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기도 하다.
다음은 미얀마 주민들의 공공위생 시설 및 주거 환경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다. 주말마다 양킨 타운십(Yangkin Township)에 사는 현지인 친구 집에 자주 놀러 가며 미얀마 현지 가정집을 체험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양곤은 대부분 큰 도로의 골목 뒤로 주거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최신식 콘크리트 빌라에서 버마 민족식(Burmese) 나무집까지 아주 다양하다. 대부분 일반 서민들은 버마식 나무집에 살고 있다. 미얀마 집은 대부분 양 옆보다 앞 뒤로 길게 생겼고, 더운 날씨 때문인지 천장이 높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천장을 제 때 청소해 주지 않으면 거미줄과 먼지가 쌓인다. 집마다 우물 또는 큰 물 통이 있는데 그곳에는 항상 물이 가득 담겨 있다. 그 물로 설거지도 하고, 샤워도 한다. 샤워를 할 때는 대부분 헌 전통치마를 몸에 두르고 물을 끼얹으며 한다.
외국인으로서의 걱정은 그 물들의 상태가 건강에 안전한가 하는 문제다. 물이 오래 고여 있으면 썩기 마련이다. 어떤 집 물든 맑지 않고 뿌옇다. 나무 마루 바닥도 집이 오래되며 각종 오렴 물질이 사이사이 스며들었다. 마루가 높은 집에는 마루 아래 진흙바닥에서 자생한 모기들이 올라오기 십상이다. 각 가정의 배수구를 타고 나오는 폐수는 파이프 곳곳을 타고 도시 안을 떠돈다. 모든 집들이 이렇지 않고, 어떤 집은 아주 쾌적하게 잘 관리되고 있을 거다. 무엇보다 그곳에 살고 있는 당사자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바꾸라고 강요할 수 없다. 다만 현재 상태에서 작은 노력으로 조금만 더 좋게 변화시킬 수 있다면 시도해 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시작의 다리를 놓아줄 수 있는 추진제 역할을 하고 싶어 졌다.
미얀마 양곤 시내의 배수 시설은 현재 1800년대 말에 영국 정부가 당시 기술로 파이프 배수 시스템을 지은 이래로 변화 없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약 4만 양곤 시민들을 위해 지어진 시설이 현재 그 9배 이상이 된 인구의 집에서 나오는 폐수를 소화하기에는 역부족일 거다. 최근 일본 정부가 정화 기계를 지원했지만 이는 턱도 없이 부족하다고 한다. 무엇보다 전체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데, 한 나라 혼자서 그 많은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규모다. 시민들과 도시 당국에 가장 긴급한 해결 과제를 위해 미얀마의 여러 국제 기부 파트너들이 손과 머리를 맞대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현재 일본 무상원조기구 JICA 등이 미얀마 양곤의 배수시설 개선을 위해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과 코이카의 미얀마 사업은 대부분 미얀마의 도로 교통 개선, 농업개발, 직업기술교육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지금 내가 가진 위치를 인정하는 것부터 해결점을 찾는 고민이 풀리기 시작할 거다. 아무리 정부 차원에서 이렇게 해야 한다고 불평해도 내 목소리가 정책 결정자의 귀에 들릴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현지 국민들의 삶과 가장 밀접한 연관이 있는 사업에 한국이 참여할 수 있도록, 나와 같은 봉사자들과 지역 주민이 힘을 합쳐 협력하며 그 가능성과 소망을 보여 줘야 할 필요성을 느낀 나날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