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께 물려받은 것
할아버지께 물려받아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공구는 작은 뿔망치 하나와, 일본산 대패, 장부끌이다. 할아버지는 전문적인 박제 제작자셨다. 엽사들이 가져오는 사냥감들을 나뭇가지며 돌과 함께 배치하여 일종의 디오라마를 만드는 일을 하셨다. 청설모, 꿩, 오리 등 작은 동물은 흔했고, 가끔은 이게 합법일까 싶을 만큼 큰 동물들의 박제도 만드셨다. 서울에 있는 우리 집에도 홍보 겸 꽤 큰 맹금류 박제들을 두시곤 했다. 야생동물 사체에서 뼈와 살을 발라내고 약품으로 방부처리를 한 뒤에 철사, 솜뭉치 등으로 뼈대를 만들고, 모조 눈알, 이빨 등을 박아 마치 살아있는 듯한 모습으로 만드는 것은 재미난 구경거리였다. 어려서부터 봤기에 특별한 줄은 몰랐지만, 뼈와 가죽, 모조 눈알들이 굴러다니던 시골집의 모습은 나중에 보니 스릴러 영화 배경으로도 별 손색없는 것이었다.
뿔 망치는 박제를 만들 때 쓰던 것이다. 자루가 헐거워진 곳에 못을 박아 넣었는데, 자루가 좁은 탓에 옆으로 빠져나온 곳이 있다. 황마끈은 튀어나온 못이 손에 걸려 내가 감은 것이다. 일본식으로 1/4 망치보다 가벼운 느낌이고, 자루는 색이 붉고 상당히 단단하다. 무슨 나무일지 궁금하지만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내가 받은 뒤로도 30년 이상 된 물건이고 특별히 관리한 적이 없는데도 망치 머리에 녹이 나지 않는 것도 이유를 모르겠다. 동물로부터 나온 피나 기름을 피하기 위해 다른 재질의 머리를 쓰는 걸까. 장부끌은 약간의 테이퍼가 있고, 슴베(tang)를 참나무 자루에 박고 테를 씌웠다. 자루 갱기는 내가 새로 구해서 넣은 것이다. 뒷날 상태 등으로 미루어 특별나게 좋은 제품은 아니지만 할아버지가 직접 적으셨을 숫자가 있다.
대패는 날입이 꽤 넓은 초벌 또는 중벌 대패로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 오랫동안 손을 타지 않아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이가 빠진 날을 새로 세우고 뒷날 내기며 평잡기를 배워가며 했다. 대패집 역시도 날골이 헐거워져 대패밥을 발라 두께를 맞추었다. 날에 각인된 상표로 미루어 널리 쓰는 국산 대패들 보다는 가격대가 높은 제품이었다. 많이 알려진 상표는 아니었지만 오래된 대패를 전문으로 하는 일본 사이트에 이름이 있기는 했다. 좋은 일본식 대패는 날이 두껍고 떨림이 적다. 한 손으로 잡기 편한 무게의 대패도 날이 충분히 두꺼워 공작물을 한 손으로 집거나 턱에 걸쳐만 두고 대패질을 할 때에도 깨끗한 표면을 얻을 수 있다. 바닥이나 톱말에 기대어 마구리 등을 다듬을 때같이 당기는 대패가 자세가 더 잘 나올 때도 많다.
할아버지께서는 꽤나 진지한 목공인이기도 했는데, 시골집 별채 겸 창고에 별도의 작업실을 가지고 계셨다. 할아버지의 작업실은 각목으로 짠 트러스 위에 슬레이트 지붕을 한 소박한 농가 창고였다. 벽에 큼지막한 나무판을 걸고, 못을 박아 공구를 걸었다. 유성펜으로 공구의 테두리를 그려 자리를 표시했다. 트러스 사이에 꽤 많은 목재를 쌓아두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트랜스에 물려 쓰는 일본산 기계 대패가 있었는데, 폭이 넓어 지금도 꽤 고가인 모델로, 할아버지가 애지중지하셨을 것이 분명한 그 대패는 어디로 갔을지 궁금하다.
제재목을 직접 대패로 다듬어 쓰실 정도였던 것을 보면 목재와 목공에도 나름의 식견이 있으셨을 것이다. 목공을 시작하고 보니 할아버지께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계획적으로 공구를 모으셨다는 걸 알겠다. 차가 없으니 멀리서 목재를 운반하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근처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을 위주로 썼을 것이다. 창고에 쌓여있던 나무들은 대부분 그런 상태였다. 근처에서 베어낸 나무의 가지나, 집을 철거할 때 나오는 판자 등이다. 이런 목재들로 농가에서 필요한 것을 우선 만들기 위해 날입이 넓은 대패를 쓰다가, 어느해 큰맘 먹고 전동대패를 마련하셨을 것을 생각하면 내가 다 신이 난다.
막내삼촌이 중학교에 입학할 때에는 만들어 주셨다는 꽤나 솜씨를 부린 책상 서랍장은 막내 삼촌의 애장품이었다. 손바닥만 한 작은 됫박 모양의 서랍이 양쪽에 대칭으로 있고, 가운데는 책꽂이로 쓰게 되어있는 구조였다. 서랍을 됫박 모양으로 기억하는 것으로 보아 사개맞춤일 듯하다. 전통 가구에 많이 쓰이는 사각못으로 박는 동그란 고리가 손잡이로 달렸고, 꼭 그때쯤 많이 하던 대로 토분과 바니시로 마감했다. 폭과 높이가 800x400 정도의 크기였고, 테이블 톱이며 띠톱은 없던 시절이므로 손으로 잘라 대패로 마감했을 것을 생각하면, 나름 큰 작품이었다.
대패집이며 나무 자루를 다듬을 때, 색이 바랜 부분이 깎여나가는 것을 보면 복잡한 마음이 된다. 깨끗한 속이 나오는 것이 기분 좋지만, 쌓인 세월을 흘려버리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몇 해전에 전문적인 가구 목수 한분이 돌아가셨을 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장례를 마치고 평소 친하던 후배며 동료들이 몰려들어 공구와 나무를 서로 가져가겠다고 실랑이를 했다는 이야기였다.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라도 물건을 알아봐 주는 이가 있어 공구를 물려줄 수 있다면 의미 있다고 해야 할지.
뿔망치는 어릴 때 할아버지께 받은 것이다. 끌과 대패는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시골집을 정리할 때 여러 물건 중에서 내가 집어 들었다. 어린 손주가 망치를 가지고 싶어 하니 작은 것으로 골라 주시고, 날이 있는 끌과 대패는 다른 이들이 손대지 못하게 하신 것이 아닐까. 할아버지께서 골라주셨던 것은 아이가 쓰기 적당한 망치 한 자루이기도 했고, 손주를 귀여워하는 마음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