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토리 Nov 04. 2023

아무리 k-food가 유행이라도 그렇지

영국에서 산 지 20년이 넘어가고 있다.

처음에는 Korea에서 왔다고 하면 물음표를 떠올리거나, "South Korea or North Korea?" 따위의 질문을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는데, 그에 비하면 요즘에는 바로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심지어 호의를 보이는 사람들까지 있을 정도니 그럴 때마다 소위 말하는 국뽕이 가슴 한가득 차오르는 기분이다.  


이 정도로 국제 사회에서 한국이라는 브랜드 밸류가 올라간 게 불과 몇 년 사이란 걸 생각하면 누가 스피드의 민족 아니랄까 봐 참 대단하다 싶다.


한국에서 파생된 문화가 인기를 끌면서 요즘에는 어딜 가도 'Korean style'이 붙은 음식을 꽤 많이 볼 수 있게 되었는데... 볼 때마다 어떤 의무감으로 주문하게 되지만 먹을 때마다 한숨이 나오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저기 서쪽 웨일스에 있던 관광지. Street Food 코너에 'Korean style fried chicken with rice'라는 메뉴가 나타났었다. 당연히 기대와 의무감으로 주문했는데.. 아니 왜 찬밥이 나오는 건데? 그나마 닭은 따뜻했는데, 찬밥 위에 썰어 올려진 양배추. 그 위에 올라간 닭튀김 네 조각. 굳어서 부서지는 밥알을 포크로 어떻게든 뜨려다가 인내심도 같이 쏟아져 내렸다.


리뷰가 꽤 좋은 라멘집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사이드 디쉬로 '김치'가 적혀 있었다. 보자마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가 이 김치가 진짜 내가 알고 있는 김치가 맞나, 하는 의심이 솟구쳤다. 주문을 받으러 온 종원업에게 혹시 요리사가 동양인이냐, 하고 물으니 아니라고, 영국인이지만 이쪽 요리에 관심이 많아 배운 사람이라며 음식맛에 대한 자부심을 내보였다. 그래서 그럼 김치는 어디서 온 거냐고 물으니 그것도 요리사가 직접 만들었단다.


영국인 요리사가 직접 담근 김치라.

눈곱만큼도 믿음이 가지 않았지만, 종업원이 자신은 좋아한다며 추천했다. 그렇게 작은 종지에 담아 나온 4파운드짜리 김치. 딱 보자마자 한숨부터 나왔다. 그러면 그렇지.


때깔부터 보면 딱 답이 나오지 않는가. 저건 김치가 아니라 칠리 파우더를 넣은 pickled cabbage였다. 솔직히 다른 건 몰라도 이게 제일 답답한 부분인데... 이런 식으로 외부에 팔리는 '김치'라고 불리는 음식들 때문에 김치를 사람들이 'pickled' (식초에 절인) 음식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김치는 절인 음식이 아니라 'fermanted' (발효된) 음식이라고 해도 시중에 나와 있는 제품들의 맛이 대충 시고 단맛 나는 것들이니 알리가 있나... (BBC Good Food에 나와 있는 레시피만 봐도 대충 감이 올 거다: https://www.bbcgoodfood.com/recipes/quick-kimchi)


예전 회사에서는 매주 화요일마다 테마에 따라 Special food corner가 열렸는데, 한 번은 웬일인지 Korean food special을 한다길래 일부러 회의까지 다른 시간으로 미루며 식사를 하러 갔었다.


메뉴는 Korean style BBQ와 채식주의자를 위한 Rice pot. 처음 메뉴는 아마도 불고기에서 온 것 같고, 두 번째는 비빔밥에서 영감을 얻은 것 같았는데, 딱 보기만 해도 고개가 저절로 옆으로 돌아가며 저게 뭔가 싶었지만 그래도 모름지기 한국사람이 한국 음식을 피해 갈 순 없지.


동료를 설득해 나눠 먹자며 메뉴를 하나씩 주문했다. 고기 요리는 Tortilla wrap에 넣어서 나왔고, 밥은 샐러드 박스에 실려서 나왔는데... 고기는 간장에 살짝 발만 담그다 나온 수준이고, 샐러드 박스에는 고추장도 없었다! 아니, 이럴 거면 왜 'Korea'를 갖다 붙이냐고!


먹으면서도 나는 투덜이처럼 도대체 어떻게 이런 걸 한국음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냐고, 요리사라도 한번 만나봐야겠다며 계속 중얼중얼거렸고, 같이 먹는 동료들에게도 이건 한국 음식 아니라고 단호하게 못 박았다. 혹시 착각이라도 할까 봐.


그렇게 배신을 몇 번이고 당했는데도 얼마 전에 출장 갔다가 Korean chicken noodles라는 게 보이길래 또 샀다. 그래도 나름 이름 있는 곳이었고, 그곳에서 먹었던 다른 음식들은 꽤 맛이 괜찮았기 때문에.

거기다 면요리는 기본적으로 좋아하니까, 일단 그 위에 올려진 양념 치킨처럼 보이는 녀석들만 괜찮으면 나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따끈하게 데워진 면 요리를 한 입 먹고 진짜 인상이 저절로 구겨졌다. 도대체 이 근본 없는 요리를 뭐란 말인가! 양념 치킨처럼 생긴 녀석들은 나름 먹을 만했지만, 그래도 그걸 한국요리라고 부르다니!


애당초 ingredient (재료)에 KFC source 따위가 적혀 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이쯤 되면 난 호구가 아닐까 싶다. 속으로 매번 의심을 하고 실망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렇게 매번 낚이는 걸 보면 말이다.


아무리 한국 요리가 유명해지는 걸 반긴다고 해도, 진짜 이런 근본 없는 요리들이 'Korean'이란 수식어를 달고 나올 때마다 부들부들 떨면서 소리치고 싶어 진다.


"Stop calling it Korean food!!!"




작가의 이전글 아이와 나의 과도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