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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리 Nov 12. 2023

영국, 그들에게 전쟁의 의미

11월 11일. 토요일 오전.

음악소리와 쿵쿵 울리는 발소리, 바쁘게 몸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열기와 땀 내음으로 후끈 달아오른 피트니스 클럽의 운동실.

10시 59분 음악 소리가 꺼지고 11시가 됨과 동시에 클럽 전체에 조용한 정적이 흐른다.  


11월 11일 Remembrance Day. 오전 11시 2 minute silence.


매년 11월 11일에 영국 전역에서 펼쳐지는 추모식.


11월이 가까워지면 많은 영국인들이 Poppy (양귀비) 모양의 배지를 옷에 달거나 심지어 차에 붙이고 다니는 걸 많이 목격하게 된다 (참고로 웨일스에서는 양귀비 대신 웨일스 국화인 수선화를 달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양귀비, 하면 중국의 미인 혹은 마약을 떠올릴지 몰라도, 영국에서 양귀비는 전쟁 추모의 상징이다. 1차 세계대전 전투가 가장 많이 벌어졌던 Western Front (프랑스 북동부와 벨기에 전역을 아우르는 서부 전선)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던 꽃이기에. 그 붉음이 그때 흘린 병사들의 피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그 상징으로 굳어졌다. (참고로 양귀비 - poppy - 는 John McCrae이라는 캐나다인이 1차 세계대전 당시 벨기에에서 벌어진 전투에 참전했다가 그 참상을 기록해 1915년에 발표한 In Flanders Fields라는 시에 처음으로 등장했고, 그 후 영국에서 1921년 전쟁 참전용사와 그 가족들을 위한 기금을 모금하면서 양귀비를 상징으로 사용한 게 유래라고 한다)


그리고 11월 11일 11시를 기념하는 이유는 1차 세계 대전 휴전 (Armistice) 협정이 바로 1918년 11월 11일 11시에 시작되었기에. 영국과 프랑스가 대표로 참석해 맺은 휴전 협정. 미국에서는 Veterans Day라고 부르는 그날.


영국에 살면서 이 날 만큼 전쟁에 대한 온도차를 느끼게 되는 날이 있을까.


예전에 'War game'이라는 30분가량되는 짧은 애니메이션을 본 적이 있다.


밖에서 축구를 하면서 놀고 있던 소년 3명이 영국이 독일에 선전포고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랑스레 전쟁에 지원한 후, 프랑스 전방에 가서 싸우다가 크리스마스 날 아침 독일군과 같이 축구를 하고, 다시 상부의 지시로 각자의 전쟁터로 돌아가 싸우던 중 다 전사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짧은 애니메이션이 내게는 엄청난 문화충격으로 다가왔었는데, 그 이유는 그 애니메이션 전반에 깔린 분위기 때문이었다.


그 어린 십 대의 소년들이 전쟁 소식에 지원하는 걸 자랑스럽게 받아들이는 가족들. 어머니들은 간간히 눈물을 훔치지만, 그래도 그 어린 소년들은 허리를 곧게 펴고 경례를 한 뒤 고향을 떠나 타국의 전쟁터로 향한다.

밖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전쟁터지만 그 안에서 그들은 차를 나눠마시며 미소를 짓고, 눈이 소복이 쌓인 그 전쟁터에서는 크리스마스라는 이유로 밖에 나와 적군과 함께 공을 차기도 한다.


진짜 전쟁이 게임이냐, 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잔잔하고 평온한 분위기의 애니메이션.


실제로 11월 11일 11시 2분의 묵념 시간이 다가오면 거리를 걷던 사람들도 그 자리에 멈춘 체 침묵한다. 온라인으로 회의를 하다가도 우리는 11시에 모두 대화를 멈추고 침묵하거나, 심지어 11시를 피해 회의를 잡기도 했다.


영국인이라면 누구 하나 빼먹지 않고 지키는 2분간의 묵념시간. 그동안 움직이거나 거리낌 없이 소리를 내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외국인이겠지만, 아마도 영국인들이 대놓고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아마 눈치를 꽤 줬을 거다.


그건 그들이 기리는 어떤 숭고함, 혹은 어떤 자부심이니까. 전쟁에서 승리하고, 그 승리를 이끈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유의 자부심.


그에 반해 한국에서 접하게 되는 전쟁과 관련된 매체에서 보여주는 분위기는 어떠한가.

침략자들에게 난도질당하는 나라와 눈앞에서 가족의 죽음을 봐야만 하는 참담함. 10대의 어린 소녀, 소년들이 강제로 끌려가고, 부모는 울부짖고, 피와 절규로 점철된 아비규환.


내 나라를 지키려고 자원하기도 전에 이미 내 집 안마당까지 적들이 몰려오고, 그 적들이 내 멱살을 끌고서 자신들의 총알받이로 쓰던 시대. 한국 전쟁 때야 제 이념 따라 인민군/국군에 지원한 이들도 있다지만, 그것도 따지고 보면 다 같은 동족인데.. 한때는 내 이웃이었고 가족이었던 이들을 죽이러 간다고 축복할 것도 없지 않은가.


심지어 독립의 순간도 우리에게는 승리의 기쁨을 주지 못한다. 우리 손으로 이뤄낸 것도 아니고, 그 후 우리는 남들의 손에 의해 두 나라로 쪼개졌으니까.


아직도 전쟁의 흉터를 현재진행형으로 안고 살아가는 민족으로서 전쟁은 상처만 가득한 트라우마 같은 기억이다.


반면 영국에서는 아무리 드라마나 소설의 배경이 세계대전 중이라 하더라도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여전히 Tea shop은 열려 있고, 농장의 소들은 자라나고, 귀족들은 자신의 저택을 의료병동으로 쓰라고 내어주기도 하지만, 여전히 그들을 받드는 하인들이 존재하고, 품위를 잃지도 않는다.


그 시기를 지나온 영국인들에게 전쟁은 훈장이 된 자랑스러운 상처다. 그 어려운 시기를 겪었지만 우리는 기어코 전쟁에서 승리를 이끌었고, 세계를 구했다.


자신의 안마당이 군화로 짓밟혀지지 않았던 영국인들은 여전히 담이 없고, 현관이 밖과 바로 연결되는 그런 집에서 살고 있다. 정원으로 이어지는 문에는 잠금장치도 없고, 그들의 창문에는 창살이 없다.


2005년 7월 7일 런던 한복판에서 테러가 일어났을 때도 대중교통이 모두 중단된 상황에서 사람들은 묵묵히 3-4시간을 걸어 집으로 퇴근했다. 그날 저녁 영국수상은 대국민담화를 열어 '우리는 그들에게 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연설을 했고, 그 후에도 영국인들은 애도를 표하며 숙연한 분위기를 가졌지만 패닉 같은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그 당시 테러 상황 이후를 영국에서 지켜보면서 나는 그걸 침략당해보지 않은 이들의 여유 혹은 자신감이라고 해석했다. 아마도 그 사태가 일어난 뒤 며칠 후 한국 지하철 역 안에 놓인 검정 비닐봉지를 폭탄으로 착각해 사람들이 패닉 상태에 빠져 난리가 났었다는 뉴스를 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요즘 뉴스는 매일 Gaza 지역에서 벌어지는 전쟁 소식으로 시끄럽다. 그 지역의 분쟁도 그렇고, 인도와 파키스탄의 갈등도 그렇고, 갈등이 시작된 역사를 파고들어 보면 영국이라는 나라가 끼지 않는 곳이 없다.


그렇게 세계 곳곳에 어린아이 불장난 하듯 여기저기 불씨를 던졌다가 진짜 불이라도 붙으면 나 몰라라 하고 내뺀 나라. 그때 던진 불씨가 낸 화재로 나라가 쑥대밭이 되고, 아직도 불바다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라들도 있는데...


그들은 그들이 달고 있는 Poppy의 붉은색에서 이미 죽어버린 전쟁 영웅뿐 아니라 아직도 불타고 있는 나라에서 흘러나오는 피도 생각할까. 아니면 그건 그저 지나가버린, 현재의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과거의 순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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