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친척들이 많이 있는 편이지만, 사실 그들과 교류가 잦지는 않다. 한국에 있을 때야 명절이니 뭐니 해서 일 년에 두세 번은 보는 사이였지만, 영국에 나와 살면서는 그럴 기회도, 이유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국에 자주 가는 것도 아니고, 가도 그냥 어머니 말씀에 따라 인사치레차 몇 분에게 전화나 돌리는 게 다다.
그런데 이번에 한국 집에 안부 전화를 했는데 어쩌다 보니 조부의 제삿날이었다. 내 아버지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던 친할아버지의 제사로, 그걸 챙기던 할머니도 돌아가셨고, 이젠 그 집의 장남인 내 아버지도 돌아가셨고, 그 할아버지의 남은 자식들은 이젠 제삿날이라고 해도 오지도 않거나 잠깐 얼굴만 비추고 가는 게 다인데, 어쩌다 보니 장남한테 시집온 내 어머니만 아직 챙기고 있는 그 제사 말이다.
친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기에 사실 나는 조부의 이름도 모르고, 사진도 본 적이 없다. 친할머니도 내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는데, 두 분의 기일이 비슷해 일주일 간격으로 두 번 어머니가 제사상을 차린다고 고생하셨던 것만 기억한다.
물론 나 역시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부터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어머니를 도왔으니, 제삿날은 그냥 하루 종일 기름 냄새로 범벅이 된 주방에서 바닥에 신문지를 펴고 앉아 전을 부치던 날이었다.
허리가 뻐근하도록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나면, 쉴 틈도 없이 제기들을 닦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는 그런 날.
그렇게 어머니와 내가 온종일 일을 하고, 정리에 청소까지 마치고, 부랴부랴 씻고 나오면 저녁이 다 되어서야 친척들이 한두 명씩 도착하곤 했다.
그러면 또 과일을 깎아서 차나 커피와 함께 대접하고... 그러는 동안 내 나이 또래의 사촌들은 방에 옹기종기 모여 게임을 하거나 자기들끼리 놀러 갔다 온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내가 여전히 주방을 들락날락 거리며 어머니를 도와 제사를 준비하고 손님 접대를 하는 동안 말이다.
가끔씩 그런 나를 보고 친척 어르신들은 칭찬이랍시고 그런 말씀을 하셨다.
"넌 어릴 때부터 제사 준비에 익숙해서 나중에 장남한테 시집가도 잘 살겠다."
하하하...
그렇게 시집살이 간접체험을 해왔던, '장남에게 시집가도 잘 살 것 같은' 나는 영국으로 유학 왔고, 영국에서 한국인이 아닌 스페인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영국에 나와 살면서 몇 년 동안은 아버지를 봐서라도 어느 정도 친척들과 교류를 이어가긴 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부터는 그마저도 거의 없어졌다. 아마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쳐도 우린 서로를 못 알아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랬는데 이번에 전화한 타이밍이 어쩌다 보니 제삿날이었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친척 어르신들도 몇 분 오셨다는 말에 오랜만에 안부를 묻게 되었다.
친척 어르신 한분은 미국에서 유학 중이라는 자신의 자녀에 대해 한참 동안 말씀하셨다.
그 사촌 동생이 유학을 간지 꽤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졸업을 한다는 말과 함께 큰 도시로 이사 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그 학교가 그 분야에서는 유명하다는 말을 덧붙이며, 취업준비를 하는데 이런 저런데 무슨 자리가 있다더라, 등등.
하시는 말씀 곳곳에 그 사촌에 대한 기특함과 자랑스러움이 가득 묻어 있어, 나 역시 다른 학부모의 말을 경청하는 기분으로 예의 바르게 맞장구치고 있었다.
"아, 네. 잘됐네요. 네, 네. 그렇죠. 00은 잘할 거예요."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 이제야 자랑거리가 떨어지신 건지 내 안부도 물어보셨다.
"아이들은 잘 크고?"
"네, 잘 크고 있죠."
"그래, 남편은?"
"남편도 잘 있죠."
"남편은 어디서 일한다고 했지?"
"xxx에서 일하죠."
"아..." (아마도 의미를 파악하시는 중)
"...." (다음 질문을 기다리는 중)
"그래서, 넌 가정주부니?"
"... 아니요, 저도 일하죠."
"어, 그래."
"...." (또 이어질 질문을 기다리는 중, 예를 들면 넌 어디서 일하냐, 등.)
"알았다."
내 직장은 궁금하지 않은지 그렇게 전화를 다음 사람에게 넘기며 대화 종료.
다른 어르신들도 비슷했는데, 어떤 분은 이런 질문도 하셨다.
"그래, 남편은 돈 좀 버니? 연봉이 얼만데?"
"... 잘 벌죠."
"어, 그래. 요즘 영국도 경제가 안 좋다던데, 남편 뒷바라지 잘하고."
다음 분.
"그래도 넌 남편이 잘 번다니 다행이다. 요새 경제도 안 좋은데 한 명이라도 잘 벌어야지."
"..."
하하하.
전화를 끊고 나서 살짝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이런 취급이 오랜만이라 꽤 신선하기도 했다.
저기요?
혹시 제가 무슨 일 하는 줄은 아세요? 왜 자연스럽게 제가 집에서 남편 뒷바라지만 하고, 남편보다 못 버는 직업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제 연봉이 얼만 줄 아세요? 여섯 자리 숫자예요. 그 정도면 영국에서 상위 몇 프로에 드는 줄 아세요?
설마 제가 영국까지 유학 와서 받은 박사 학위가 고작 괜찮은 남자 만나는 티켓으로 쓰였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혹시 00 (미국에서 유학하는 사촌)도 그러라고 유학 보내셨어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할 필요도, 해봤자 의미도 갖지 못할 말들이니까.
그리고 그런 말을 한다고 딱히 내 속이 편하거나 통쾌할 것 같지도 않고.
다만 몇 년이 지났는데도 다들 여전하시구나 싶었다.
어릴 때부터 자식들을 두고 그렇게 서로 기싸움을 하시더니, 이젠 그 싸움에 동참할 아버지도 없는데 아직도 그 버릇은 못 버리셨나 보다. 아버지보다 더하게 장남만을 챙기시던 어머니는 아직도 아들이 잘되야 집안이 사는 거라는 확고한 신념 아래 오빠 걱정을 하느라 바빠서, 내가 잘 살고 있다고 (사실 어머니도 내가 뭘 하고 사는지 모르신다.) 딱히 친척들과 자존심 싸움을 할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다.
아니면 내가 어떻게 사는지는 관심 없고, 그냥 정형화된 생각으로 말씀하신 건지도.
그래놓고 정작 자기 딸들이 선보러 나가서 남자가 요리를 못한다는 말에 퇴짜를 놓았다고 하자, 딸들 편을 들어주며 요즘 세상에 그런 것도 못하는 남자가 어딨 냐고, 그런 남자 만나봐야 너만 고생한다고, 그런 남자 아니어도 네가 만날 사람 많다고 부추기까지 했으면서.
자기 딸은 그렇게 귀하게 취급받고, 유학 가고, 직장 구해서 자리 잡고 그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왜 애꿎은 나는 하녀 취급을 하세요?
사실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물어보기 싫은 거 아니에요? 혹시라도 진짜 내가 잘 산다고 할까 봐?
내가 이러니 집에 연락을 잘 안 하는 겁니다. 어차피 좁혀질 관계도 아니고, 말이 친척이지 사실 남과 다를 것 없는, 교차점 없는 길을 우린 각자 걷고 있으니까요. 무슨 색안경을 끼고 절 보셔도 상관없으니 그냥 쭈욱 갈길 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