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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리 Oct 30. 2020

널 열 받게 하니?

그럴 때는 이렇게

아래 사례들을 읽고 적합한 답을 고르시오. 


사례 1.

어학연수를 왔다. 오기 전에 홈스테이와 학비를 다 지불하고 왔는데, 영국에 온 뒤 정해졌던 홈스테이가 마음에 들지 않아 옮겼다. 그런데 거기 숙박비가 미리 낸 것보다 더 싸다. 그래서 어학원 사무실에 찾아가 더 싼 곳으로 홈스테이를 바꾸었으니 이미 낸 돈에서 발생된 차액을 돌려달라고 말했지만, 사무실 사람들은 어깨만 으쓱하고는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말한다. 물가도 비싼데 한두 푼도 아니고 생돈을 날리는 것 같아 속이 탄다. 이럴 땐 어떻게 할까? 


1. 사무실에 다시 찾아가서 돈을 돌려달라고, 제발 부탁한다고 운다. 

2. 당신들 그러는 거 아니라고 소릴 지르며 욕을 해준다. 

3. 연수원장을 찾아가 내 돈을 돌려주지 않으면 이 사실을 인터넷에 올리고 사람들이 이 곳으로 오지 않도록 안 좋은 소문을 퍼트리겠다고 위협한다. 

4. (유학원을 통한 경우) 유학원에 연락해 대신 해결해달라고 말한다. 


사례 2. 

집에 물이 샌다. 집주인/부동산 (property agency)에 말해서 고쳐달라고 부탁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고쳐지지 않고, 전화할 때마다 곧 해준다는 말 뿐이다. 이제는 기다리는 것도 또 전화하는 것도 짜증이 나는데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1. 다시 전화해서 당신 집에 물 새면 좋겠냐고 짜증을 내며 욕을 해준다. 

2. 당장 안 고쳐주면 집을 나가겠다고 협박한다. 

3. 그냥 포기하고 산다. 


사례 3. 

은행에 통장잔고를 증명하려는 서류를 떼러 갔다. 그런데 은행업무 안내원이 그런 건 해주지 않는다고 아예 약속조차 잡아주지 않고 있다. 분명히 저번 주에는 해줬다고 아무리 말을 해도 이제는 아예 무시하면서 상대조차 해주지 않는다. 비자 문제로 서류를 뽑아서 보내야 하는데 안 해준다니 속만 타들어 간다. 이럴 땐 어떻게 할까?


1. 당신 왜 나 무시하냐고 그 사람을 붙잡고 화를 낸다. 

2. 다른 안내원이 있는 날 오기로 하고 일단 돌아간다. 

3. 계속 죽치고 기다린다. 




외국에 살면서 제일 곤란할 때는 바로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도 바쁘고 아직 언어나 문화에 익숙하지도 않은데 갈등이 생기는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하는 것도 골치이긴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정 소모가 더 크니까.   


어학연수는 보통 기간이 짧은 까닭에 미리 돈을 다 지불하고 오는 경우가 많은데, 막상 와서 별문제 없이 기간을 채우고 돌아갈 수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으면 그것만큼 스트레스받는 것도 없다. 해결책이 간단하거나 빨리 해결될 일이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기간 자체가 악몽으로 변할 수도 있으니까. 


어딜 가나 그렇겠지만 돈 문제가 얽히면 상황이 다 좋게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특히 사례 1의 경우처럼 환불을 받아야 할 때, 이미 돈은 냈고 학생이 머물 수 있는 기간은 정해져 있으니 가끔은 버티기에 들어가는 어학원도 있다. 그것 때문에 가서 따지고 화를 내도 영국인 특유의 무표정한 모습으로 담당자가 없다, 나중에 와라, 처리 중이다, 그런 말만 하면 나중에는 어학원에 오는 것 자체가 싫어질 수 있다. 내 돈 내고 왔는데 왜 내가 이런 기분을 느껴야 하나 싶고, 오지 않자니 그건 그것 나름대로 돈 낭비고, 아예 옮길 수도 없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시한 보기의 방법들은 별로 효과가 없다. 그나마 4번이 좀 나은 것 같지만, 유학원의 입장에서는 웬만큼 큰돈이나 영향력이 큰 학생이 아니라면, 한 학생의 일 때문에 계속 관계를 맺어야 하는 어학원과 문제를 일으키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유학원마저 어학원과 비슷한 태도를 보이며 묵묵부답이거나 핑계를 대며 미루기도 하고. 


두 번째 사례처럼 집과 관련된 것도 상당히 큰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사는 집인데 문제가 제대로 해결이 안 되면 일상생활 전체가 영향을 받게 되니까. 전화할 때마다 듣게 되는, "We will sort it out for you/ I will call you back"하는 정중한 소릴 들으며 '이번에는'하고 희망을 가졌다가 또 한주가 지나가면, 목소리만 들어도 욕이 치밀어 오르는 경험을 할 수도 있을 거다. 그냥 참자, 하고 넘어가자니 내가 이러려고 비싼 돈 들여서 다른 나라까지 와서 고생하나 싶고, 내 돈 내고 왜 내가 참아야 하나 싶어 억울하기도 하고. 


위의 경우들에 처했을 때 가장 안 좋은 방법은 감정을 드러내서 울거나 화를 내거나 욕을 하는 거다. 한국에서는 때로 목청을 높여 욕을 하거나 화를 내거나, 혹은 울거나 하면 시선이 몰리고 커지는 상황이 싫어서 상대편이 지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은데, 최소 영국에서는 거의 통하지 않는 방법이다. 


영국에서는 불만을 표시하기 위해 화를 내거나 욕을 하며 대놓고 상대방을 비난하면, 그 즉시 문제 해결은 물 건너갔다고 보면 된다. 그런 상황에서 상대방은 대부분 방어태세를 보이면서 아예 대화창 자체를 닫아버리기 때문에. 우는 것도 비슷하다. 정말 어려운 상황에 처해서 우는 게 아니라면, 특히 화를 표출하다가 우는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심히 나를 바라보거나 어깨를 으쓱하면서 '쟤 왜 저래?' 하는 제스처를 자기들끼리 주고받기도 한다.  


협박도 사실 무의미하다. 내 딴에는 인터넷에 올릴 거야, 집을 나가버리겠어, 하는 협박이지만,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사실 가소롭거든. 나 말고도, 아니 한국사람 말고도 영국으로 어학연수 오는 사람들은 널리고 널렸고, 내가 당장 집을 나가겠어, 하더라고 내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걸 자기들은 알고 있으니까. 


그럼 참고 살아야 하나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해탈할까요? 


아니다, 그럼 병 걸린다. 좋은 경험하고 가기도 빠듯한 시간에 병까지 얻어갈 순 없으니까.  


위의 사례 1과 2의 경우 가장 좋은 방법은 complain letter혹은 email을 쓰는 거다. 이런 글을 쓸 때는...  



1. 우선 그 목적을 분명히 말한다. 첫 시작부터 'I am writing to complain... '이라고 명확히 말하거나, 문제를 설명하고, 'However, I am disappointed that..'같은 문구를 넣어 확실히 내가 만족하지 못하고 'unhappy'하다는 걸 알리는 거다. 그렇지 않고, 이런저런 문제가 있다, 'would you please (고쳐달라, 돈을 달라)...'라고 완곡히 돌려 말하면 또 무시당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2. 감정이 드러나는 문구는 최대한 자제하고 명확한 사실을 정확히 나열한다. 즉, 첫 번째 같은 경우, 내가 이런이런 돈을 며칠에 어디를 통해서 입금했는데, 예전 홈스테이 같은 경우 한 달 돈이 얼마고, 지금 옮긴 홈스테이는 한 달 돈이 얼마니 차액이 정확히 얼마다,라고 하나하나 다 집어 말하고 필요하다면 영수증 같은 것도 다 첨부한다. 두 번째 같은 경우는, 가능하면 언제 연락을 했다는 걸 다 기록해서 알려준다. 문제가 처음 발생한 게 몇 월 며칠이고, 두 번째 연락이 몇 월 며칠이었고, 그때 네가 이런 말을 했고, 그다음에는.. 이런 식으로.  


3. 아무리 열 받아도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무시하거나 비꼬기보다, 문체 자체는 정중함을 유지하고 가능하다면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배려하는 듯한 표현을 쓰는 것도 좋다. 첫 사례 같은 경우, 'This is unfair, you are keeping my money and ignoring my request'하고 비난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Considering your reputation, I found it disappointing that my request was not dealt properly... (어학원의 명성을 생각할 때, 제 요구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다는 게 유감스럽군요)' 같이 우회적이고 정중하게 말하는 거다. 두 번째 같은 경우도, 가능하면 이 집/방은 결국 집주인 거고, 물이 새는 걸 방치하면 결국 집주인에게 손해다, 난 세입자지만 이 집/방을 내 집/방처럼 생각하고 care 하기 때문에 걱정돼서 자꾸 이렇게 연락하는 거다,라고 말한다든지.  


4. 절대 애원조나 부탁하는 듯한 말은 쓰지 않는다. 예를 들면, 'I really don't have money, would you please give my money back as soon as possible?' 같이 돈이 없으니 제발 빨리 달라, 혹은, 'I beg you' 같은 표현은 쓰지 말자. 그저 심플하게 사실에 근거해서 돈을 받는 것이 당연한 내 권리라는 태도로 'I would appreciate if you could issue reimbursement as soon as possible'라고 요구하는 게 낫다. 


5. 마지막으로 내가 뭘 원하는지 명확히 명시한다. 언제까지 연락을 해달라, 언제까지 환불을 해달라, 이런 날짜에 내가 가능하니 수리공을 보낼 약속 날짜를 정해달라, 등등 상대방에게 지시를 내리는 것처럼.


6. 다 쓴 이메일이나 편지는 문제 해결에 얽힌 가능한 여러 사람이 받도록 해서 보낸다. 예를 들면 첫 번째 사례 같은 경우는 어학원장, 어학원 사무실, 유학원을 다 cc 해서 보내고, 두 번째는 부동산 전체 이메일과 개인 이메일, 만약 알고 있다면 집주인의 메일까지.  



이런 건 집이나 돈 문제뿐이 아니라 다른 모든 문제/이의제기에 유용하게 사용된다. 문제가 반복되거나, 당장 해결돼야 할 필요가 없는 경우에는 이메일이나 편지 같은 수단이 낫고, 당장 해결돼야 할 문제 같은 경우는 전화가 낫다.


다른 언어로 전화하기 좀 부담스럽다면 미리 할 말이나 필요한 정보를 적어놓고 시작하면 좋다.  예를 들어...  



1. 문제의 내용과 발생한 시기, 그 이후 일어난 일들에 대한 요약을 미리 영어로 적어놓는다. 


2. 상대방의 말을 잘 못 알아듣겠는 경우, 몇 번이 되더라도 기죽지 말고 천천히 말해달라, 다시 설명해달라고 부탁한다. 대충 알아들은 척하고 끊으면 결국 네 손해니까. 무엇보다 상대방은 네 전화를 먼저 끊을 수 없다. 통신상 문제가 생겨 끊긴 게 아니라면, 이런 태도는 Complaint letter에 아주 어울리는 소재니까.  


3. 전화를 끊기 전에는 항상 언제까지 해결해주겠다, 언제까지 연락해주겠다, 이런 다짐을 받는다. 그때까지 연락이 안 오거나 해결이 안 되면 다음 절차는 뭐냐, 하고 묻는 것도 잊지 말자. 


4. 전화통화 후에는 전화통화 한 날짜와 내용들을 잊지 않게 메모해 둔다. 혹시 문제 해결이 안 되면 또 전화나 이메일을 통해 컴플레인해야 하니까 



그럼 마지막 사례 같은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나?


매니저를 불러달라고 강경하게 말한다. 업무 담당원이 아무리 그런 건 없니, 어쩌니 해도 이제는 네가 그 사람을 무시하고 매니저와 직접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하면 된다. 물론 이 때도 욕을 하거나 감정을 드러내서 목청을 높이는 건 자제하고, 아무리 목소리에 날이 서있어도 'Thank you'라고 말하는 건 잊지 말고.




타지에서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문제까지 연달아 생기고 해결도 안 되면, 그것만큼 힘든 게 없다. 그래도 내가 내 권리 주장하지 않으면 여기서는 대신 나서 줄 사람도 없고 먼저 챙겨주는 사람도 없다. 


이 나라 짜증 난다고, 이 나라 사람들 재수 없다고 아무리 욕해도 상황이 달라지진 않으니, 그럴 바에는 그 에너지를 모아서 열심히 당당하게 불만을 표현해보자. 진짜 매번 이래야 하나 싶다면 레벨 업한다고 생각하자. 


문제가 하나씩 해결될수록 더욱 강해진 멘털과 능숙하고 자연스러운 의사소통법을 배울 수 있을 테니. 그리고 영국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건 지구력 싸움이니 인내심이 크게 늘어날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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