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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 Oct 30. 2020

얼른 애들 키워놓고 네 일을 해

친정 엄마는 내가 임신을 할 때마다 걱정스럽기 그지없는 얼굴로 말씀하시곤 했다.
                    
“애만 키우다가 종칠 셈이니?”
 
엄마는 내가 아이를 키우다가도 언제고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고 언제나 그러길 바랬다. 엄마가 그랬듯, 딸인 나도 어느 정도 아이들을 키우다가 다시 일을 시작하는 수많은 커리어우먼 중에 하나가 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남편이 회사에 다니고 있을 때도, 사업을 시작해서 수입이 불안정할 때도 엄마는 틈만 나면 내가 다시 일을 시작할 것을 권했다. 찌든 얼굴로 아기와 씨름을 하다가도 엄마에게 전화가 오면 왠지 엄마 말 안 들어서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는 것만 같아 마냥 힘든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엄마는 살림과 육아에 지쳐가는 나를 볼 때마다 언제고 일을 다시 할 준비를 해 놓기를 충고하셨다. 그러나 나는 엄마의 바람과 다르게 틈만 나면 임신을 하고 출산을 했다. 엄마 눈에는 10년 가까이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는 딸이 딱해 보이기도, 답답해 보이기도, 열불이 터지기도 했을 것이다.
 
애를 키우는 전업주부로 살기 전 나의 직업은 영어강사였다. 유치원생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아이들을 주로 가르쳤고 나는 그게 내 천직인 줄 알았다. 하루에 많으면 10시간이 넘게도 강의할 정도로 엄청난 집중력과 활력을 요구하는 일이었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꽤나 나에게 잘 맞았고 나는 그 일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첫 아이를 임신하고 심한 입덧과 조산기에 일을 그만두고 나서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다시 하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솔직히 학원가 근처에는 다시 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정말로 다시는 학원가 근처에 갈 수 없었다.
 
어느 날 친정 엄마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한번 본 듯 눈에 익는 영어 문장의 빈칸을 채우는 넌센스 비슷한 문제였는데 엄마는 어디선가 그 문제를 받고서 내내 궁금해하다가 나에게 보낸 모양이다. 그래도 환갑이 지난 엄마보다야 나름 젊은이 축에 끼는 내가 SNS속 정보의 바다에서 헤엄치다가 한 번쯤은 봤을 만한 문제의 답을 알아내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나는 바로 엄마에게 답을 알려주었고 곧이어 엄마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얼른 애들 키워놓고 네 일을 해라, 실력 발휘해야지.”




엄마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왠지 영 민망해졌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대관절 내가 할 일은 무엇일 것이며, 내 실력이라는 것은 어떤 것인지. 10년 가까이 애만 낳고 키웠는데 그런 내가 이제 와서 뭘 할 수 있을지.
 
그런 넌센스 문제쯤이야 인터넷에 검색만 한 번 해보면 답을 알 수 있는 것인데 엄마는 애만 키우며 나이 먹어가는 딸이 못내 아까우셨나 보다. 엄마 덕분에, 졸지에 대단한 재능을 썩히고 있거나 재야에 숨은 인재가 된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미, 커리어가 단절되어버린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출산과 육아가 아닌 다른 일을 해낼 자신감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다시 일을 하더라도, 이미 굳어가는  머리를 써야하는 직업을 갖고 싶지는 않았고 멍하니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이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어느 식당의 샐러드바에 쓸 방울토마토 꼭지를 따는 아르바이트가 있다는 말에 진심으로 귀가 솔깃해지기도 했다.
 
어떤 일이든 해서 가계에 보탬이 되어야겠다는 의무감이 들어 아이들을 모두 어린이집에 보냈을 무렵 인터넷의 구인광고를 들여다보기도 했지만 내 입맛에 딱 맞는 환경을 가진 일이라는 것이 애초에 있을 리 없었다.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생겼지만 그럴때마다 나는 머뭇거렸고 그러다 곧 임신과 출산을 하는 것의 반복이었다. 아이를 생산할 줄만 알았지 정작 스스로에게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나는 점점 더 위축됐다.
 
언젠가 지인과 대화를 하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
“아이를 많이 낳고 키워봤으니 산후도우미 같은 일도 한번 생각해보는 게 어때요?”
당시에 농담도, 진담도 아닌 저 말을 들었을 때는 별생각 없이 같이 맞장구를 치며 응수했었다. 한 번은 엄마에게 저 이야기를 꺼냈더니 엄마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불같이 화를 내셨다.
 
“애 낳고 키우느라 그렇게 고생을 해놓고 네가 그런 일을 왜 해!”
 
그때 알았다. 엄마는 내가 하고 싶은 일,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를 바라셨던 것이었다. 가계에 도움이 되려고 마구 골라잡은 고생스러운 일이 아닌, “나의 일”을 하기를 바라셨던 것이었다.
 
주위에, 아이를 낳고서도 커리어를 계속 쌓아가는 워킹맘들을 보면서 나는 일터에 나가 있는 나를 상상하곤 한다. 매일 집안일과 육아에 묶여 맨 얼굴에 파자마 바람으로 하루를 보내는 나와 다르게 곱게 화장을 하고 옷을 단정히 입고 갈 일터가 있는 그녀들을 비교해본다. 20대에 첫 직장에 들어가서 혼나고 깨지며 일을 익혔던 내가 내일모레 마흔이 되어서 과연 또 혼나고 깨지며 일을 익히는 것을 견딜 수 있을까 생각한다. 예상보다 너무 많이 낳은 아이들에게 나의 빈자리를 되도록 티 내지 않으며 내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이런 저런 겁을 한 주먹 집어먹은 내게 일터로 나가 다시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함부로 덤비기에 결국 언감생심인 것이 되어버린다.
 
직업이라는 단어를 배우고 관심을 갖게 된 아이들은 어느 날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엄마의 직업은 뭐예요?”
 
무릇 직업이라 함은, 돈을 벌며 하는 일이라고 가르쳤던 나는 엄마의 직업이 주부라고 말하기 왠지 굴욕적이면서도 더 보태 말할 것이 없다는 것이 왠지 분했다. 그래도 별 수는 없었다. 생산적인 것이랄 것이 없는 일을 하는 주부, 그것이 바로 내가 하는 일이었다.
 
며칠 전에는 노트북을 열고 이런 글을 끄적거릴 때 아이들이 곁에 다가와 내가 쓴 것을 소리 내어 읽었다.
아이들은 엄마가 쓰고 있는 것이 궁금해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갑자기 어디에선가, 본 적 없는 용기가 불쑥 나왔다.
 
“엄마는 글 쓰는 사람이야.”
 
비록 돈은 못 벌어서 직업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엄마는 그런 사람이야, 라고는 누구도 들을 수 없게 마음속으로 나지막이 말했다. 아이들은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알아 들었는지 아닌지 모를 얼굴로 끄덕이고는 내가 쓰는 것들을 계속 읽었다. 나는 왠지 모를 쑥스러움에 노트북을 금방 닫아버렸다.
 
아마도 엄마는 딸이 다시 일을 시작하는 것을 어느덧 포기하셨을지도 모른다. 그런 엄마에게도 언젠가 비죽 새어 나오는 용기를 방패 삼아 불쑥 말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때 과연 엄마는 어떤 얼굴을 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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