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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 Nov 29. 2020

멍든 손톱

한 달 전쯤이었다. 짧아진 해만큼이나 차가워진 날씨에도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신이 나게 놀았고 나는 잘도 뽈뽈 걸어 다니는 막내를 이리저리 쫓았다녔다. 날은 어두워지고 배도 슬슬 고파지는데 그저 뛰어 놀기가 바쁜 아이들을 겨우 모아 집으로 향했다.


집에 거의 다 와가는데 거래처에 미팅을 갔다가 돌아오는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방금 전까지 우리가 있었던 놀이터를 지나치는 중이었던 모양이다. 아이들을 주렁주렁 데리고 걷는 걸음걸음이 천근만근이었는데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 남편과 함께 집에 돌아올까 잠깐 고민했지만 먼저 들어가겠다고 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집 앞에 도착해서 나는 유모차에서 막내를 꺼내 안은 채로 어린이집 가방과 물병 같은 것들을 아이들에게 챙기게 하고 들어가려고 현관문을 닫았는데 순간 둔탁한 소리와 함께 온몸이 저릿하게 심한 아픔이 느껴졌다. 문을 있는 힘껏 닫는 와중 손가락이 문에 끼었던 것이다. 너무 아파서 소리도 못 지르고 신음소리를 냈다. 눌린 손가락에서는 피가 줄줄 흐르기 시작했고 곧 바닥에 후두둑 떨어졌다.


막내부터 우선 집안에 내려놓고 아이들을 들여보내고 나는 어쩔 줄을 모르겠는 아픔에 발을 동동 굴렀다. 아픈 것도 아픈 것인데 어쩌자고 거기에 손가락을 두고 문을 닫았는지, 어쩌자고 하필 오른손을 다쳤는지 내가 너무 멍청하고 미련해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당장이라도 주저앉아 목을 놓고 울고 싶었다.


아이들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걱정 가득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다가 피를 보니 당황한 눈치였다. 다친 건 손가락인데 온몸이 아픈 것만 같이 통증이 심해서 몸이 덜덜 떨렸다.


흐르는 피를 휴지로 닦으려고 하니, 언젠가 교육방송에서 본 프로그램에서 상처의 피는 휴지로 닦지 말고 흐르는 물에 씻어내야 한다는 것을 본 큰 아이가 나를 극구 말리며 휴지를 뺏으려고 했다. 너무 아파서 뭐라 말할 기운도 없는데 흐르는 피만 닦아내겠다고 사정사정을 하고 앉지도 못한 상태로 서 있는 나를 보더니 둘째는 아빠에게 전화해서 빨리 오라고 하겠다고 심각한 얼굴을 했다.


들어오고도 남을 시간인데 아직인 걸 보면 회사에 들러 일을 마무리하고 들어오려는 것이라 생각한 나는 또 안간힘을 쓰며 둘째를 말렸다. 남편이 와도 별 뾰족한 수는 없을 것이라 판단하고 일단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씻으라고 들여보내고 다친 손가락을 제외한 집게손으로 집을 정리하고 있는데 남편이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아이들을 씻기러 들어간 아빠에게 아이들은 입을 모아서 엄마 손가락에게 벌어진 일을 떠들기 시작했다. 놀란 남편은 왜 진작 얘기 안했냐며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지만 우리는 아직 저녁도 못 먹었고 이미 날은 저물어버렸다. 몇 분 사이에 대수로울 것 없어진 내 손가락의 상처는 억지로 아무렇지 않은 것이 되어야 했다. 빨리 아물어 괜찮아져야 하고 살림을 하고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어야만 한다고, 나는 몇 분 전에 문에 끼어 봉변을 당한 손가락에게 모질게도 끊임없이 세뇌 아닌 세뇌를 시키고 있었다.


남편은 아이들을 씻기고 나와 급히 저녁을 차렸고 설거지까지 모두 마쳤다. 나는 욱신거리는 손가락을 어색하게도 쳐들고 여전히 집게손으로 집안일을 하는 둥 마는 둥 했고 그렇게 하루를 급하게 마무리했다.


물 닿는 일이야 남편이 대신해줄 수 있었지만 씻는 것이 당장 겁이 났고 걱정이 됐다. 방수밴드를 붙이고 씻고 나오니 물이 어떻게 여지없이 들어가 있어 낑낑대며 밴드를 떼어냈고 남편이 소독을 해주고 약을 발라줬다. 그러고 나서 뭘 사부작사부작 만들길래 뭔가 하고 봤더니 면봉과 휴지와 테이프로 만든 손가락 지지대였다. 남편은 밴드를 붙이고 지지대를 손가락에 끼워줬고 나는 잠자리에 들었다. 좀처럼 가시지 않는 통증에 잠을 설쳤고 그때마다 일어나서 진통제를 먹을까 몇 번이나 고민했다. 다친 것은 정말 손가락 하나뿐이었는데 온몸을 다친 것처럼 몸이 무겁고 아픈 것만 같았다.


이튿날 통증은 좀 덜해졌고 남편은 약국에 갔다 오더니 허접해 보이는데 만 이천 원이나 하는 손가락 지지대를 사 가지고 왔다. 불퉁거리려다가 잠자코 지지대를 끼고 하루를 보냈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도 때 되면 올라와서 설거지를 해주는 남편이 고마웠다. 다 나을 때까지 물 안 닿게 해서 빨리 나으라고 말해주는 것도 고깝게 들리지 않았다.


날이 지날수록 피도 멎었고 통증도 잠잠해졌다. 손가락 지지대는 조금씩 성가시기 시작했고 손 씻을 때 벗어놓았다가 점차 다시 끼지 않게 되었다. 그럴 때마다 남편과 아이들이 지지대를 가지고 와서 다시 끼라고 성화를 부리는 것도 그냥저냥 웃으며 넘기게 되었다.


다친 부분은 잘 아물었고 손톱에는 피멍이 들었다. 까맣게 반이 죽은 손톱은 어디 내보이기도 참 추접스러운 것이었다. 내 손을 보고 당시의 고통을 추측하는 것마냥 아픈 표정을 지어 보이는 사람들에게 엄살을 부렸다. 고운 것과는 마냥 거리가 먼 내 손이, 내 삶이 들켜버리는 것만 같아 자꾸 남부끄러워졌다.


그런 느낌이 익숙해질 때쯤 손톱 부분이 살짝 쑤시는 것 같다 싶더니 아래쪽이 들리고 있었다. 아마도 아래쪽 신경은 이미 손톱을 떠나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나 보다. 직접적으로 손톱 부분을 다치지는 않았기에 손톱은 안 빠질 줄만 알았더니 역시나 였는가 보다. 이대로면 손톱이 더 자랄지 멈출지도 모르겠고 언제쯤이나 빠지게 될지 모르겠다. 아침보다 왠지 더 많이 들린 것 같아 그다지 머지않은 앞날에 손톱은 덜러덩 떨어질 것만 같다.


자꾸만 쳐다보게 되는 손톱은 아직도 어딘가에 부딪히거나 닿는 것이 신경이 쓰인다. 손톱이 들리고 흔들려 빠지고 다시 새 손톱이 날 때까지의 아픔과 불편함을 견딜 인내심이 나에게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겁이 나고 껄끄럽다. 하지만 틀림없이 이 손톱은 나를 떠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새 손톱을 얻게 될 것이다.


8살 때 자동차 바퀴에 발가락이 깔려 거짓말같이 빠진 발톱이 있던 자리에 다시 난 발톱은 왠지 더 못생겨진 것만 같다고 생각해왔다. 나는 고작 그런 것이 걱정이 되는 것일까. 아니면 어떤 것이 두려운 것일까. 설레는 것일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던 아픔은 희미해졌지만 나는 아직도 손가락이 문에 끼었던 아찔한 순간을 기억하며 몸서리를 친다.


희미해진 것들과 기억하는 것들 사이에서 나의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멍든 손톱이 내게서 떠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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