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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것이 보는 것의 전부일까

노란 비명 그리기_김범

by 바다기린

충격, 당황, 놀람, 난감, 유쾌함. 김범 작가의 "노란 비명" 그리기를 보고 들으며 느낀 감정이다. 진지한 표정의 출연자가 차분한 설명 후 내지르는 '으악. 아악' 비명소리에 처음에는 깜짝 놀라고, 곧 웃음이 터진다. 나도 따라 비명 지르고 싶은 욕망마저 솟구친다. 이 작품은 다양한 감정을 담아 비명을 지르며 "노란 비명"이라는 추상화 그리는 방법을 소개하는 영상이다. 2023년 리움 미술관에서 한국 동시대 미술작가 김범의 개인전 <바위가 되는 법>에서 만난 가장 난해하고 인상적인 현대미술이다. "당신이 보는 것이 보는 것의 전부가 아니다"는 주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한국에 이토록 독특하고 창의적인 작가가 있었다니 놀랍고 자랑스럽다.


작품 속 출연자는 작가가 아니라 미술학원 강사다. 그는 어떻게 물감을 사용하고 어떤 비명과 함께 붓질을 하는지 자세하게 소개하며 행동한다. 무척이나 진지하게 두려움, 괴로움, 억울함, 후회, 분노, 짜증, 혼란, 기쁨, 희망 등 온갖 감정들에 맞춰 비명을 지르며 하나의 캔버스에 담는다. 비명의 높낮이, 길이가 감정에 따라 섬세하게 차이 난다. 그의 설명을 들으면 그렇게 믿게 된다. 이 영상을 보기 전에 그림만 보았다면 알지 못했을 과정을 알게 된다. 작품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작가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현대미술을 그런 과정 없이 맞닥뜨리게 되고 난감함에 빠져들곤 한다.


"노란 비명" 그리기를 만난 이후 나는 현대미술을 볼 때마다 보는 것이 과연 전부일까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보는 것만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림에 담긴 작가의 마음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표현하고 알아주기 바라는 작가의 마음을 상상해 본다. 이해하기보다 느끼는 것, 알기보다 보고 경험하는 것에 집중한다. 그렇게 물음표에서 느낌표로, 그저 보고 느끼고 표현해 보려고 한다.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글과 말로, 나의 예술언어로 감정과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다.


물론 작가가 의도한 길과 다른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작품은 세상에 나온 이상 다양한 감상자를 통해 그들의 색과 느낌이 덧입혀질 수밖에 없다. 정답이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인생도 정답이 아니라 선택만 있듯이 동시대 미술도 다양한 나만의 감상이 있을 뿐이다. 작가의 메시지는 가이드일 뿐 나의 감상의 길은 선택이다. 난감함이라는 감정이 분화하며 누군가에게는 즐거움으로, 두려움으로 남을 수도 있다. 감상자의 마음에 따라 다음번에는 또 바뀔 수도 있다. 그렇게 동시대 예술은 열린 마음으로 마주해야 한다.


가끔 마음속에 캔버스를 세워둔다. 특히 감정이 소화되지 않고 더부룩하게 쌓여갈 때 그렇다. 커다란 붓을 들고 힘차게 그어나가며 비명을 지른다. 캔버스는 곧 나의 감정들로 득실거린다. 해리포터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그림 속 붓질이 각각의 감정들로 살아 움직인다. 상상만으로도 즐겁고 속이 시원해진다. 동시대 예술은 자유롭게 열린 마음으로 만나야 한다. 그리고 나답게 나만의 감상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을 버리고 상상해 보자. 그렇게 보고 느끼며 자유롭게 동시대 예술을 즐겨보자. 그런다고 아무도 돌을 던지지 않는다.


https://youtu.be/1SwA46-lSWk?si=NF427UFsKaASjKC6

김범 '노란 비명' 그리기 축약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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