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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용기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hero_최피터

by 바다기린

눈을 뜬다. 또 하루가 시작된다. 아니 오늘은 특별한 하루다. 세상에 한 번밖에 없는 하루다. 30일 동안 매일 아침 전해지는 단어로 글을 쓰기로 한 첫날이다. 루틴을 만들려고 애쓰지만 막상 루틴이 생기면 추구하는 자유와 충돌하는 모순에 작은 용기가 필요한 도전이다. 오늘의 나에게 용기를 준 건 어제의 나다.


끝없이 바닥으로 가라앉는 마음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를 때가 있다. 물기란 한 방울도 남지 않은 늦가을 낙엽처럼 마음이 바삭거린다. 일상에 특별함이 필요한 때다. 어제가 딱 그랬다. 그럴 때면 찾는 곳이 있다. 특별한 예술을 만나는 공간이다. 어제의 목적지는 최피터 작가의 청년미술상점이었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1층 한편에서 딱 일주일만 열리는 전시다. 아트페어와 인스타에서 작품으로만 만났던 작가님이 계셨다. 궁금한 점은 눌러두고 그림에 집중했다. 그 순간 내 마음에 위로가 될 그림이 날 응시하고 있었다.

최피터_hero, 2025

'hero'. 작은 소녀가 수줍지만 힘차게 한 손을 우주를 향해 뻗고 있다. 표정은 알 수 없다. 늘 그렇듯 작가님 그림에는 표정이 빠져있다. 그 없음이 나에겐 자유를 준다. 상상할 수 있고 내 마음 내키는 대로 그때그때 표정을 바꿀 수 있다. hero의 표정을 상상해 본다. 처음 용기 낼 때의 부끄러움에 빨개진 볼이 시선을 끈다. 100m 달리기 출발선에서의 심장이 튀어나올 듯 두근대는 소리마저 들린다. 하지만 그 순간은 영원하지 않다. 점점 그 느낌과 표정은 사라지고 담담해진다. 이 그림은 그렇게 내게 소중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며 줌인하듯 다가왔다.


살면서 용기가 필요했던 순간들이 많았다. 삶에는 정답이 없고 선택만이 있음을 믿는다. 좋은 선택들을 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했다. 익숙한 길보다는 도전이 될 수 있는 길을 선택해온 내 삶은 유독 그런 순간들이 많았다. 안정된 최고의 직장을 탈출해 벤처에서 바닥부터 시작하기도 했다. 직장을 잠시 쉬어갈 때면 바로 구직하기보다는 한 달 동안 훌쩍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낯선 곳에서 나를 돌아보고 토닥이는 시간을 가지며 다시 용기를 내어본다. 자신의 선택을 응원하는 시간이다. 그렇게 단련되어 가는 내 모습에 작은 용기를 내던 'hero'의 첫 표정은 사라지고 다부진 표정으로 나아간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은 선택의 순간에 지표가 되어주는 시다. 풀이 우거지고 인적이 없는 길을 선택하는 내게 그 시는 늘 선택의 기로에서 49%와 51%를 가른다. 나이가 들면서 그 당연했던 선택에 용기가 필요해진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보다는 새로운 길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나를 흔든다. 그럴 때면 나에게 힘이 되어줄 걱정인형 같은 존재가 있었으면 싶다. 어제 그 존재를 만났다. 최피터 작가의 'hero'다. 오늘은 특별한 하루다. 나의 표정은 새로운 도전에 발그레하게 상기된 볼과 반짝이는 눈, 웃을랑말랑 입꼬리가 조금 올라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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