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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느껴봐

난 괜찮아_윤희경

by 바다기린
난 괜찮아_윤희경

"사는 이유가 뭘까요?"

중2 친구들과 세계사 수업을 하던 중 질문을 받았다. 예상치 못한 질문이 훅 들어오자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답하느냐에 따라 질문한 친구에게 영향을 미칠 것 같아 잠시 숨을 고르고 답했다. "스스로 그 답을 찾기 위해 사는 게 아닐까" 일단 시간을 벌고 책에나 나올법한 말들을 이어갔다. 살면서 '아, 이래서 사는 거구나!' 싶은 순간들을 겪게 될 거고. 그런 순간들이 쌓여 살아갈 이유가 될 수도 있을 거라고. 그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에 가닿았을지는 의문이다.


나 역시 그런 질문들에 빠져있던 10대 시절이 있었다. 자두 크리슈나무르티의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처음 읽은 것도 그맘때다. 자유가 고팠던 것일까. 10대면 아는 것도 그렇게 많지 않았을 텐데. 왜 그런 책을 읽었던 것인지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로선 가늠이 안된다. 책장 한편에 아직도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누렇게 바랜 책을 다시 꺼내본다. 10대의 나를 다시 만나는 기분이다. 밑줄 친 글을 소리 내어 읽어본다. "당신은 당신 자신과 함께 살아보려고 한 적이 있는가?" 그렇구나. 10대의 나는 이런 자유를 꿈꿨구나 싶어 애틋해진다. 그때의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 어쩌면 질문한 친구도 답을 꼭 듣고 싶기보단 토닥토닥 따뜻한 눈빛과 다정함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순간 윤희경의 <난 괜찮아>란 그림이 떠올랐다. 그림 속 아이는 저 푸른 초원 위를 냅다 달린다. 길도 이정표도 없다. 그냥 무한대다. 어디를 가도 상관없다. 아이가 지나간 곳은 길이 된다. 어릴 때부터 정해진 길만 따라가던 아이들은 길이 아닌 곳은 감히 넘보지 못한다.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가고 싶은 길보다는 가야 할 길을 선택하게 된다. 가야 할 길을 걷다 문득 난 누구, 여긴 어디란 의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길을 멈추고 되돌아보기도 한다. 가고 싶지만 가보지 않은 불확실한 길로 들어서기엔 너무 늦은 건 아닐까. 망설임의 시간은 길어지고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한다. 그런 친구에게 이 그림이 자유롭게 달려보는 상상을 하며 그래도 괜찮음을 누리게 해줄 수 있을까.


우리 집에 유일한 10대 둘째 아이가 오버랩된다. 집-학교-학원-집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하는 고등학생이 된 아이는 하루도 집에서 온전히 쉬는 날이 없다. 어쩌다 틈이 생기면 스마트폰에 온통 마음을 빼앗긴다. 가족이 모두 모여 식사하는 건 아주 특별한 이벤트가 돼버렸다. 10년째 역사 마인드맵 수업으로 만나온 초중등 아이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주요 과목에 밀려 역사는 방학 때 주로 특강으로 진행하는데 방학이라고 특별하게 다를 건 없단 아이들의 무표정이 슬퍼 보인다. 자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아이들에게 이 그림이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선도 없고 길도 없는 저 푸른 초원을 달리는 아이들을 상상해 본다. 뒤따르는 햇살과 얼굴을 스치는 바람을 맞으며 앞으로 냅다 달리는 아이들의 표정은 밝게 빛난다. 생각은 자유니까 뭐든 가능하다. 상상이 익숙해지면 어느덧 현실이 되는 날도 오지 않을까. 그림 속 아이와 함께 저 드넓은 초원 위를 함께 달리는 모습을 그려본다. 그렇게 윤희경 작가의 <난 괜찮아>를 10대 아이들에게 선물하고 싶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정하게 말해주고 싶다. “잠시라도 자유를 느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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