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방의 빛_에드워드 호퍼
삶은 경험의 연속이다. 일상이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익숙한 것을 낯설게 봐야 한다. 관찰이 필요하다. 나태주 시인의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는 <풀꽃> 시처럼 자세히 오래 봐야 한다. 그래야 '하나의 경험'이 될 수 있다. 우리가 늘 경험했던 익숙한 경험과 구별된 특별한 것, 생생하게 살아서 영원히 삶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이다.
예술은 예술가가 살면서 하는 경험과 관련이 깊다. 그렇다고 모든 경험이 예술로 표현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예술로 연결되는 주요 경험은 어떤 것이 있을까? 에드워드 호퍼는 자기가 살던 곳, 겪은 것, 본 것, 함께 한 사람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보이지 않는 그들의 내면을 보여준다. 그의 경험이 일상의 그림에 스며들어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우리는 어떨까. 일반인도 일상을 경험한다. 예술가는 아니지만 일상 경험에서 예술로 연결할 방법을 알게 된다면 어떨까. 일상 속 예술을 향유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일상을 좀 더 깊이 오래 낯설게 들여다보는 것에 하나를 더해보자. 예술을 일상 가까이 두기.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할 이유가 없다"고 에드워드 호퍼는 말했다. 예술가가 아닌 우리는 어떨까. 그림으로 표현할 수 없다면 그림을 매개로 표현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호퍼가 그린 일상 그림들 <아침 햇살>, <좌석차>, <찹 수이>, <뉴욕의 방>을 보고 우리의 일상을 표현해 보자. 일상을 사진으로 찍고 그 순간을 감상글로 남겨보자. 아침에 일어나 멍 때리고, 이동하고, 누군가 만나고, 밥을 먹고, 집에 돌아와 가족과 함께 하는 일상. 그 속에서 만나는 시간, 공간, 그리고 사람. 그냥 흘러가던 일상이 포착된, 내가 표현한 무언가 남았다. 이것은 예술일까? 단지 미술관을 가지 않았다고 우리는 예술을 만나지 못한 걸까. 우리의 일상은 예술이 될 수 없을까.
비싼 오리지널 그림은 아니어도 좋다. 마음이 끌리는 포스터 한 장을 액자에 끼워 벽에 걸어두자.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하며, 출근 전 혹은 퇴근 후, 가족과 함께 혹은 홀로 그림을 바라보자. 그렇게 일상에서 예술을 만날 수 있다. 꼭 그림이 아니어도 좋다. 나는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에서 느꼈던 편안함을 내 공간에서 느끼고 싶었다. 지금 내 공간에는 작은 반가사유상 83호가 미소 짓고 있다. 그 손바닥만 한 국보를 늘 보고 만지며 곁에 두고 평화를 누린다. 그렇게 예술은 일상에서 연결되고 경험하며 누릴 수 있다.
예술이란 무얼까? 예술을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거라면 우리는 또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호퍼의 <빈방의 빛>을 보자. 인간의 공간인 방 안에 창문 밖 자연이 빛으로 들어왔다. 인공적 조명이 아닌 자연의 햇빛이 빈방을 밝힌다. 그 빛이 빈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해간다. 점차 줄어들다 사그라지고 또 나타나 점점 늘어갈 것이다. 그 빛이 빈방에 드리우는 공간은 계절의 흐름에 따라 또 달라진다. 빈방의 빛은 인간이 만든 공간에 자연의 시간이 그리는 예술이다. 그림은 정지해 있지만 빛을 따라 변화하며 흘러감을 마음속에 그려볼 수 있다. 일상을 예술로 표현한 작가의 마음과 익숙한 일상을 낯설게 보는 마음이 만나는 지점이다. 무심히 보았던 빈방에 들어온 빛을 낯설게 볼 때 우리의 일상은 예술로 빛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