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장의 꿈
선인장의 꿈 연재 -01
* 짧은 단편 소설
누구도 은정을 고립시키지 않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혼자가 되어있었다. 그녀는 고립과 고독 그 사이 어딘 가에 머무르고 있다.
작년 여름, 은정은 소설 쓰는 지망생들과 주기적인 합평 세미나를 가졌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몇 차례 진행되는 합평을 보고 쉽게 쓴 글들을 지워버렸다. 그들은 진지했으며, 글에 담긴 가치를 찾으려 애썼다. 은정은 몇 주에 걸쳐 세미나를 위한 소설을 썼다. 공모전에 제출할 것도, 교수님에게 보여줄 것도 아닌데, 미친 듯이 매달렸다. 자신의 글이 사람에게 읽히고 매만져지는 순간이 그리웠다. 거친 손길이라도 만져질 수 있다면 은정,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빈 워드 화면에 검은색 점들이 쌓여가는 것을 보며, 오래도록 글이 쓰고 싶어졌다. 은정은 소설을 제출하기 전, 침대에 누워 천천히 자신의 글을 읽어내려갔다. 사건들의 빈 공간이 남아있었지만, 마음은 꽉 담았다고 자부했다. 세미나가 시작되고 얼마 안 있어 맞은편에 앉아있던 여성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은정씨 글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거예요.”
침묵을 지킨 채 여성을 쳐다보는 은정의 눈동자는 흔들렸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계속되는 침묵을 뚫고 맞은편 여성은 말을 이어갔다.
“주인공, 당사자의 입장이 모호해요. 사건을 머리로만 생각하지 말고 마음을 좀 들여다 봐주세요.“
은정의 침묵은 분노 위에 있었다. 그리고 분노 이면에는 수치가 존재했다. 그녀는 자신이 창조한 주인공 을 누구보다 사랑했다고 믿었다. 그 마음에 흠집을 내지 않기 위해, 그녀가 겪는 일련의 사건들이 소재로 취급되지 않기 위해 찾을 수 있는 참고 자료는 다 뒤졌다. 무엇이 머리고 어디가 마음이란 건가. 은정은 그날 이후 자신의 글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녀는 자기자신이 글 쓰는 사람인가 의심스러웠다. 몇 차례 세미나에 참가했지만, 점차 핑계를 만들어 세미나에 나가지 않게 되었고 모든 메신저를 지운 채 방에서 빈 워드만 들여다 보게 되었다. 누구도 은정을 고립시키지 않았지만, 혼자가 된 지 6개월이 지났다.
[와그작 와그작]
은정은 어제와 같은 자세로 컴퓨터에 앞에 앉아 흰 워드를 한참 바라본다. 책상 맞은편에 위치한 창문 너머로 이삿짐 사다리가 올라간다. 반복하여 위아래로 움직이는 짐들을 보며 그녀는 오늘도 글 쓰는 건 어렵다고 생각한다.
[아그작 아그작]
워드 창을 내리고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궁금하지고 않은 뉴스들을 둘러보다 메일함을 클릭한다. 새로운 소식이 없는 메일함을 스크롤 하다 문득 공허함을 느꼈고 사용하지 않는 아이디를 몇 개월 만에 재로그인한다. 오랜만에 들어간 메일함에는 스팸메일이 가득한데, 그 안에 익숙한 주소로 온 메일이 눈에 들어온다. 2개월 전, 은정의 학교 선배 규익은 그녀에게 메일을 보냈다.
[아그극 아그극]
그의 메일을 클릭하려다 책상 옆에 놓인 사료를 먹는 살구를 본다. 어느 날부터 살구는 사료를 먹을 때면 작은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오른쪽 송곳니가 없는 살구는 왼쪽 송곳니에 의존해 사료를 씹는데, 예전 같지 않다. 은정은 힘없이 의자에서 스르륵 내려와 살구에게 아프냐고 물어본다. “야옹” 살구는 은정에게 다가오며 대답한다. 은정은 이가 아파서 고생하는 고양이를 본 적이 있었다. 조급해진 그녀는 살구를 데리고 당장 병원에 가고 싶어진다. 살구가 눈치채기 전 재빨리 이동장을 들고 와 살구를 넣으려 하는데 아쉽게 실패한다. 살구는 침대 깊숙한 곳에 들어간다. 신뢰를 되찾기까지 짧으면 30분 길면 1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책상에 이동장을 올려두고는 다시 의자에 앉는다. ‘아, 메일.’ 규익의 메일은 새해 인사가 담긴 짤막한 편지다. 한때 친했던 은정과 규익이지만 새해 인사는 처음이라 그녀는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 생각한다. 규익이 졸업하고 보지 못했을 거라 추측한다. 그는 은정이 학교에 다니면서 본 사람 중 이야기를 진지하게 대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요즘도 소설을 쓰는지 궁금해하며 지내던 차다.
[벌써 2022년이네. 세상은 빠르고, 시간도 빨리 지나가고, 나이는 계속 먹고, 주름도 늘어간다. 얼마 전에는 흰 머리도 생겼어. 이제 비타민 같은 거 먹어야 하나 생각도 들고, 담배도 언제 끊어야 하나 생각해. 2015에 만나고 꽤 멀리 왔다. 친했다가 텅 빈 시간이 오래 껴 있지만, 너만 괜찮다면 종종 만나서 맥주잔 기울여보자.]
편지 마지막 구절을 읽으며 규익과 친했던 시절을 떠올린다. 꽤 뜨겁게 소설을 사랑했던 시절일 거라 짐작한다. 텅 빈 시간, 은정은 규익과 자신의 거리감처럼 소설과 멀어졌다고 생각한다. ‘답장해야 하나’ 짤막한 추신을 보고 답장하지 않기로 한다.
[추신: 답장은 하지 않아도 돼. 새해가 되며 전화번호를 바꿨어. 010-2059-****. 답장 대신 전화 한 통 하렴. 아직 이 메일을 쓰고 있기를 바란다. 새해 복 많이 받아.]
“야옹” 살구는 침대에서 머리를 내밀며 기지개를 켠다. 은정은 이때다 싶어 살구를 와락 안고 이동장에 넣는다. 4kg 가까이 되는 이동장을 들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는데, 이사하는 가구 때문인지 한 층에 오래 머물러 있다. 은정은 살구가 흔들릴까 싶어 두 팔로 이동장을 껴안고 한 칸 한 칸 계단으로 내려간다.
*
수의사는 살구의 이를 살피더니 스케일링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고양이 주제에.. 스케일링이라니. 인간인 나도 스케일링을 안 받았는데.’ 살구는 송곳니 한 개가 없어 남은 송곳니에 의존하다 보니 치석이 쌓이고 잇몸이 붓는다고 한다. 의사는 당장 스케일링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염증이 되는 건 한순간이라고 말한다. 은정은 ‘한순간’ 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 있다.
‘뭐든 건 한순간이니까.’
스케일링하기 위해서는 수면 마취를 해야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살구는 은정과 떨어질 때 서럽게 운다. 살구의 울음소리가 은정에게는 ‘ 너 지금 나한테 큰 상처를 주는 거야!!!’ 라고 들린다. 살구가 수술실로 들어가는동안 은정은 주위 공원에 있기로한다. 집으로 갈까 싶었지만, 집에 있어도 빈 워드를 보며 자책할 것이 뻔했다. 공원 벤치에 앉아 식은 밀크티를 마시며 운동화로 흙바닥을 긁는다. 바닥이 한참 파이고 나서야 발을 멈추고, 파인 곳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규익은 연락을 기다렸을까. 아니면 2개월이 지났으니 연락이 끊겼다고 생각할까’ 기억을 거슬러 규익이 은정의 글을 읽었을 때를 기억한다.
5년 전 은정은 늘 자신감에 넘쳤다. 다른 선배들처럼 대학원에 가고 세상에 자신의 글을 발표할 것 같았다. 고독을 선택하고 빈 워드를 보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규익은 은정의 글을 읽고 자신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말했다. 자신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선배의 칭찬은 곧 인정으로 받아들여졌다. 계속 글을 써도 된다는 인정. 그 당시 규익의 나이를 넘긴 은정은 고개를 젓는다. 규익의 칭찬이 아니었다면 작은 출판사에 들어가 가만가만하게 살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서야 본인이 얼마나 삐뚤어졌는지 느낀다. ‘역시 애매한 재능이 인생을 꼬이게 한다. 정말.. 애매한 재능이.’
010-2059-****. 몇 번 신호음 이후, 전화를 받은 규익은 누구냐고 묻는다.
“저 은정이..”
“아, 은정이구나. 오랜만이다. 너나 나나 연락처가 바뀌어서. 세훈이 결혼식에서나 보겠다 싶었는데.”
“세훈 선배 결혼해요?”
“응. 몰랐구나. 세훈이 다음 달에 결혼해. 몰랐다면 정말 우리 못 봤겠구나.”
왜 연락처를 바꿨는지. 어느 순간부터 연락이 닿지 않았는지. 몇 가지 안부를 주고받고서야 은정은 새해 인사를 늦게 봤다고 말한다.
“응, 이제는 쓰지 않는 메일이구나 생각했어. 몇 주 지나니까 안 쓰는 메일인가 싶더라.”
“얼마 전에 우연히 선배가 운영하는 브런치 봤어요. 여전히 글이 술술 잘 읽히던데요.”
“술술은 무슨. 마음 잡고 글을 써야 하는데 생계를 해결하다 보니 집중이 잘 안 되더라.”
규익은 꾸준히 글을 쓰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부연설명을 한다. 은정은 규익이 여전히 말을 정성스럽게 한다고 생각한다. 대화하다 상대방이 모르는 이야기가 나오면 차근하고도 천천히 설명해주었다. 은정은 규익의 시간만 괜찮다면 통화하며 살구의 치료시간을 기다리고 싶다.
“그래도 선배는 계속 글을 쓰시네요.”
“너는? 이제 안 쓰니?”
몇 초간의 정적을 깨고 은정은 목에 걸린 절망을 억누르며 말을 잇는다.
“안 쓰는 건 아니고 못 쓰겠어요. 글에 지는 기분이에요. 그런 기분 알아요..? 아무튼 못 쓰고 있어요. “
은정은 말을 멈춘다. 오랜만에 전화해서 자신이 얼마나 힘들고 우울한지 얘기하는 건 유쾌한 상황은 아니다. 말하려 해도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막막하다. 도무지 생각해도 언제부터 왜 글을 못 쓰게 된 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은정, 자신이 먼저 글을 미워하게 된 건지. 글이 은정을 미워하게 된 건지. 무엇이 먼저인지. 규익도 모를 것이다. 규익은 말을 아끼는 은정의 숨소리를 듣고 한 템포 멈춘다. 은정의 말을 기다리는 건지, 다음 말을 고르는지. 꽤 긴 침묵이다.
“바쁘지 않으면 천천히 말해도 돼. 나는 괜찮아.”
“글쎄요. 누군가가 나에게 사과를 해 줬으면 좋겠어요.”
“누가?”
“누군지는 모르겠어요. 그냥 자주. 참 이상한 기분이에요."
천천히 말해보라는 규익의 말에 은정은 무언가 터진 듯 술술 말한다. 은정 자신으로부터도 정리되지 않은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살구의 마취 가 풀릴 때까지. 규익은 은정에게 세미나에서 주고받았던 글을 보내 달라한다. 보내기 싫으면 보내지 않아도 되지만 오랜만에 은정의 글이 읽고 싶다는 말을 덧붙인다. 은정은 보내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꽤 긴 통화를 마치고 동물 병원으로 돌아간다. 고개를 드니 넘어간 해를 지나 새들이 둥지를 찾아 날아가고 있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치석이 많이 쌓인 곳은 피가 조금 났어요. 치석이 쌓여서 염증이 되는 건 한순간이니까 계속 들여다 봐주셔야 해요. 나빠지는 건 한순간인데 좋아지는 건 한참 걸려요. 아시죠?”
살구는 마취가 덜 풀린 듯 이동장에 가만히 누워 은정을 노려보고 있다. 병을 키워온 사람들이 많은 듯 수의사는 몇 번이고 ‘한순간’을 강조한다. 마취가 완전 풀리는 데까지 은정이 무엇을 하면 좋은지 설명을 듣고서야 병원을 나선다. 살구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이동장을 벗어나 숨을 곳을 찾아다닌다. 마취가 덜 풀렸는지 뒷다리로 서지 못하고 휘청거린다. 살구는 안정을 취하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비틀거리며 돌아다니고 은정은 살구가 괜찮아질 때까지 바닥에 앉아 지켜본다. 가만히 누워있으면 좋으련만 마취를 깨려는 듯 더 열심히 돌아다니는 살구가 대견하다. 살구는 방 5-6바퀴를 돌아다니고 나서야 뒷다리를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 은정은 살구의 속도로 괜찮아지는 걸 가만히 지켜봤다. 천천히. 그리고 가만히.
*
살구는 여전히 남은 송곳니에 의지해 끼니를 해결하느라 사료를 흘리며 먹는다. 은정도 어제와 같이 하얀 워드 화면을 멍하니 바라본다.
[아그작. 아그작]
은정은 살구를 내려본다. ‘우리 남은 송곳니는 잘 관리하자.’ 은정은 살구에게 마음을 보낸다. 살구에게 마음이 잘 도착했는지 ‘야옹’하고 대답을 하고 캣 타워에 올라가 그루밍을 한다. 은정은 워드를 끄고 메일함을 연다.
[규익선배에게.]
오랜만에 듣는 타자기 소리다. 은정이 참 좋아하는 소리다. 오래도록 이 소리를 들으며 본인의 글을 듣고 싶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