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조각집 -06
그리움의 감각
삶 곳곳에 짙은 그리움의 대상이 있습니다. 그들과 헤어질 때는 제 인생에 그들이 오래도록 잔향을 남길 줄 몰랐습니다. 저에게 703호 할머니가 그러합니다. 703호 할머니는 제가 5살부터 13살까지 거주했던 주공아파트의 앞 집에 사셨습니다. 703호에는 노부부와 그들이 키우는 노견, 재롱이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이웃 간의 정이 사라졌다고 소위 ‘라떼는’을 외치는 어른들이 있었지만, 제 기억 속 어른들은 이웃들과 과일, 반찬 등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우리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위층도, 아래층도 그랬습니다. 703호 할머니가 강변을 따라 재롱이를 산책시키는 날이면 친구들이랑 놀다 말고 할머니를 따라 걸었습니다. 할머니는 저의 입학식, 교우관계,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았던 일들을 궁금해하셨습니다. 할머니는 훌륭한 ‘청자’답게 어린 저의 쫑알거림을 다정하게 들어주셨습니다. 할머니의 질문으로 제가 대답한 건지, 아니면 저 혼자 얘기한 건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확실한 건 할머니와 저는 친구였습니다. 할머니는 어린 저의 작은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셨으며 그 시간이 저에게 소중했습니다.
언젠가부터 할머니와 함께 산책하지 못했습니다. 편찮으셨던 할아버지가 근처 병원에 입원하면서 오랫동안 집을 비워야 했습니다. 할머니는 앞집인 우리에게 몇 가지 부탁을 하시며 집 열쇠를 주셨습니다. 종종 재롱이와 놀아주며 밥을 챙겨주길 바라셨습니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했던 저와 동생은 학교를 마치면 부리나케 703호로 달려가 재롱이와 놀았습니다. 할머니가 돌아오실 때까지 오랜 기간 그 집에 왔다 갔다 했습니다. 703호 문을 열면 느껴지는 포근한 비릿함이 생각납니다. 빛바랜 가구들 위로 내려앉은 먼지들과 강아지 사료에서 풍기는 비린내가 뒤섞여 묘한 포근함을 저에게 건넸습니다. 숙제를 피해 703호 마루에 누워 재롱이를 안고 있으면 누구도 나를 속상하게 하지 못할 거라는 안정감이 밀려왔습니다. 그리고 거실 바닥으로 들어오는 주황빛을 볼 때면 괜스레 울적한 기분에 사로잡혔습니다. 어린 날의 저는 그 울적함은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제가 집으로 돌아가면 혼자 있을 재롱이에 대한 동정 때문이라고 짐작했습니다. 사실 여전히 저는 그 당시 제가 왜 울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가족은 제가 중학교에 들어갈 즈음 근처 재건축된 아파트로 이사를 갔습니다. 분명 703호 할머니와 마지막 인사를 했을 텐데도 이별의 순간이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참 서글픕니다. 그 이후 할머니를 뵌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뵙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할머니의 존함도 알지 못하니까요. 그로부터 15년이 흘렀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이웃의 피아노 소리가 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피아노 연주자의 얼굴을 알면 이보다 짜증이 덜 날까요. 그런데도 저는 누군지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웃간의 폭행 사건이 하루가 멀다고 뉴스에서 흘러나오고, 믿었던 사람에게 죽임을 당하는 잔혹한 소식들이 미디어에 떠돕니다. 이제는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을 만나도 소극적으로 인사를 주고 받을 뿐입니다. 저는 703호 할머니와 같은 분을 앞으로 만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저는 703호를 그리워하며 그 시절의 분위기를 원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703호 마루에 누워 울적한 기분에 사로잡혔던 저를 바라봅니다. 그 당시 저를 감싼 포근함이 영원하지 않을 거라 느꼈던 어린 저의 표정을 상상해봅니다. 재롱이는 그 당시에도 노견이었으니 무지개다리를 건넜을 것입니다. 703호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어디선가 잘 계실 거라 믿습니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우연히라도 만나 뵙게 된다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지니고 있는 다정함의 많은 부분은 할머니께서 만들어주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