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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맨션 Jun 21. 2022

축구의 의미

선인장의 꿈 - 07

선인장의 꿈 연재 -07

* 짧은 단편 소설

축구의 의미


묘한 꿈을 꿨다. 

창문을 열면 매캐한 공기들이 빠져나가고 차가운 공기가 밀려들어 온다. 그녀는 시원함을 상쾌함이라고 착각하며 머리를 두드린다. 방바닥이 차가워져 발을 딛기 어려워 양말을 신고 옷을 덧입는다. 그녀는 창밖을 보며 깊게 생각하지 않고 지나쳤던 단어를 읊조린다. 


겨울 

해외에서 뛰는 축구 선수

불안

달리기 


얼마 전 그녀는 묘한 꿈을 꿨다.

축구를 모르는 사람들도 이름 정도는 알고 있는 축구선수가 꿈에 나왔다. 그를 보면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늘 스포츠는 목적 없는 노동이라고 말했다. 골대에 공을 넣어 점수를 얻는, 공이 바닥에 닫지 않으면 점수를 얻는, 누구보다 빠르게 결승점에 도달하면 이기는 그런 운동들. 축구의 목적은 골대에 공을 많이 넣는 것이고, 축구팀의 목적은 점수를 많이 얻어 승리하는 것이다. 친구는 스포츠만큼 목적이 뚜렷한 분야는 없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그것이 목적 없는 싸움이라고 여겼다. 공을 넣으면? 점수를 얻으면? 이기면? 그다음엔?


축구선수의 폐는 일반인의 폐보다 2배 정도 크다. 그녀는 궁금했다. 태초의 장기의 크기까지 바뀌도록 숨차게 뛰어서 얻는 게 무엇인지. 그녀는 꿈에 나온 축구 선수와 함박스테이크를 먹으며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물어봤다. 당신은 왜 축구를 하나요. 그렇게 달리면 숨이 차지 않나요? 나는 도저히 축구의 의미를 모르겠어요. 그녀는 축구 선수의 답을 듣지 못했다. 어쩌면 들었는데 꿈에서 깬 그녀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그녀는 오늘 최종면접에서 떨어졌다. 면접을 보기 전 눈썹을 다듬었는데, 그것 때문이면 어쩌나 생각했다. 아니면 옷이 말끔하지 못했나. 지나가 버린 일들을 되뇌며 친구들을 만나러 집을 나섰다. 그녀의 친구들은 다가올 그녀의 생일을 위해 케이크를 준비했다. 파란 장미꽃 장식이 올려진 달콤한 생크림 케이크였다. 사진을 찍어 SNS에 친구들을 태그하고 ‘해피 생일’이라는 문구를 덧붙이고 케이크 모양 이모티콘을 달아 업로드했다. 그녀의 프로필에는 60여명의 아는 사람과 또 모르는 사람이 들렀다 갔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 취한 상태로 올라탔고, 이제는 술을 그만 마셔야겠다고 가볍게 생각했다. 그녀는 지하철이 평소보다 많이 흔들린다고 생각하며 한숨을 후후 내쉬었다. 


집에 들어간 그녀는 엄마가 준비한 케이크의 초를 불었다.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크게 웃었던 탓인가 목이 칼칼하다고 느끼며 침을 계속 삼켰다. 그리고 엄마와 얘기하다 조금 웃었다. 침대에 누워 천장에 고인 검은색 점을 응시하다 핸드폰을 켜 파란 장미꽃이 달린 케이크를 보러 온 사람들의 목록을 훑어보고 잠이 들었다. 


그녀는 산책을 좋아한다. 아니 잡다한 생각을 늘어놓으며 산책하는 것을 좋아한다. 머릿속을 열심히 돌아다니는 생각들. 가령 평소에 하지 못했던 말들, 면접장에서 하지 못하고 나온 말들 또는 이미 했던 말들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녀는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달린다. 멀리 보이던 하천 풍경이 빠르게 그녀의 옆으로 흘러간다. 목적지 없이 내달리며 차가운 바람이 목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낀다. 목 안에 들어온 서늘함을 상쾌함이라고 착각하며. 달리는 동안 규칙적으로 숨을 들이쉬고 내쉬어야 한다. 그래야 죽지 않을 수 있다.


꿈속 축구선수가 그녀에게 말했다. 공을 한 번 차면 저 멀리 도망가요. 그럼 다시 그 공을 차기 위해 쫓아가는데, 그런 식으로 계속 달려요. 다시 그 공을 차야 한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요. 그렇게 달리면 그 후에는 저도 모르겠어요. 제가 왜 달리는지, 왜 공을 쫓는지 달리다 보면 아무 생각도 안 들거든요. 숨이 차고, 숨이 막히고. 죽지 않기 위해 숨을 쉬고, 공을 쫓고. 그러다 보면 지기도 하고 이기기도 하는데 이기는 게 기분은 좋죠. 지게 되면 생각이 많아지고 속이 시끄러워지니까요. 그러면 저는 또 달려요. 

아! 그러니까 축구의 의미는… 

근데 당신은 왜 의미를 찾고 싶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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