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주는 조화로움에는 셀렘이 있다
어머니,라는 이름에는 포근함이 들어있다. 때로는 강하고 때로는 부드러운 향이 나는 그 이름 안에서 우리는 위로받고 감사를 새김질한다.
생전에 어머니는 손맛으로 이름값 좀 하셨다. 언론에도 조명이 될 기회가 있었지만 부담스럽다며 마다하셨다. 당신께서는 음식은 좋은 재료와 정성과 손맛이라고 얘기하셨다. 그래서인지 나는 웬만한 맛집은 별 성에 안 찰 때가 있다. 그렇다고 입이 까다로운 것은 아니다. 뭐든 잘 먹는다. 어머니의 손맛을 그리워하며.
어머니의 음식에 대한 정성은 홍어회를 만들기 위한 제조 과정에서 드러난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흑산도 홍어를 사 오시면 예쁘고 적당한 크기의 직사각형 모양으로 몇 등분한 후에 소독한 하얀 면수건으로 하나씩 곱게 감싸서 냉장고에 넣고, 며칠이 지나면 다시 새 수건으로 고이 싸는 것을 반복하셨다. 그리고 홍어 살이 연한 빨강과 하얀 빛깔을 띤 맛깔스러운 모습으로 탈바꿈하면 식탁에 올리셨다.
홍어회에 직접 만드신 동동주를 곁들이면 그 맛은 세상 그 어느 맛의 경험과도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다. 동동주는 찹쌀과 누룩의 절묘한 조화가 맞아떨어져야 제맛이었다. 항아리 안의 숙성되는 과정을 지켜볼 때는 기다림의 원칙을 적용해야 했다. 빨라도 늦어도 안 되는 그 과정에서의 정성스럽고 꼼꼼한 관찰이 화룡점정이었다.
누룩과 찹쌀이 서로 얽히고 얽혀 일체가 되는 과정은 신비스러웠다. 숙성이 막바지에 다다르면 검정 항아리통 안에는 청아함에 연한 브라운계의 색을 띠는 동동주가 보글거리면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하얀 찹쌀 조각들도 군데군데에 보이고, 항아리 맨 위에서는 걸쭉한 하얀 거품이 부글거리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얼마 후 그 녀석들을 걷어내고 뜬 술 한 사발을 꿀꺽하며 목구멍으로 통과시키면 달짝지근하면서 톡! 쏘는 오묘한 맛의 향연에 취했다.
그 추억들을 소환하는 동안 주문한 따뜻한 라테가 나왔다. 컵을 들고 흔드니 안에 있던 커피와 우유가 한 몸이 되면서 하얗고 미세한 거품이 보이기 시작할 때였다. 그곳에 예전 어머니와 같이 했던 추억의 시간이 출렁였다. 어머니가 만드신 동동주 생각에 설레며 커피 원두 맛에 우유가 녹아드는 라테의 세계에 취했다.
찹쌀과 누룩, 커피와 우유의 조화처럼 우리가 주고받는 언어에도 과묵하면서도 약간의 수다스러움이, 유머스러우면서도 조금의 진지함이 하모니를 이루면 우리 마음도 그 맛에 취할 수 있지 않을까.
사진: 김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