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시간

by 김곤

어느 날 길을 가다가 한 젊은 엄마와 유치원에 다니는 남자아이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건널목 신호등의 색이 바뀌길 기다리고 있는 사이 모자가 하는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내일 엄마가 싸준 김밥 꼭 다 먹어야 해."

".............."


"오늘은 일찍 자야 해"

".............."


엄마는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으나 아이는 묵묵부답이었다. 사실 김밥이 맛이 없으면 다 안 먹을 수도 있고 잠이 안 오면 일찍 안 잘 수도 있다. 그런데 아이는 "왜?"라는 의문에 대해 엄마에게 묻지 못했다. 아마 묻더라도 엄마의 대답은 "안돼" 일 거라고 아이는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본원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다. 나이가 많든 어린 아이든 어릴 적부터 그 욕구를 억압받으면 자신의 본질을 찾는데 힘이 든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며 자라기도 하고 설령 원하는 것이 있더라도 부모의 반대에 부딪히면 그 욕구에 욕구를 덧칠하며 살아간다. 그러다 결국 자기가 원하는 삶을 찾지 못하고 다른 사람 의견에 따라 길이 정해지는 경우도 있다.


최근 만난 지인이 하소연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더니 반항아가 되기 시작했어요. 제 힘으로 이제 통제가 안 돼요. 자기 인생이 부모 때문에 엉망진창이 되었다고 불만이에요. 제가 애를 너무 억압하며 키웠나 봐요. 자기 하고 싶은 거 하도록 할 걸 후회가 많아요."


우리 주위에는 부모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자신이 속한 집단의 도덕적 명제에만 맹목적으로 좇다가 만성적 욕구를 주리 참듯 마음을 옥죄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도 그렇다.


절제는 자기가 비합리적이라고 판단하여 감정을 조절하며 제한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생각은 하지만 해서는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자신을 법과 관습의 울타리 안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통제한다. 그러나 억제는 생각조차도 하지 않는다. 본인의 욕구를 애초부터 누르고 억압한다. 이러한 억제는 후유증이 나타난다. 반등도 심하다. 어느 순간 폭발기도 한다. 그래서 억제에 강약과 순도의 조절이 필요하다.


더불어 부모와 자식 간이든 형제자매간이든 친구 간이든 동료 간이든 누구와의 관계에서든 자신 그리고 타자에 대한 사고의 유연성과 관용적 태도도 때론 긴요하다. 시간 안에서 완벽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예전에 일할 때 완벽하게 하려고 안 했다. 현장에서 부딪치며 일하자는 생각이었으나 직장 동료들 중에는 완벽주의자들이 있었다. 홍보팀에서 근무할 때였는데 한 동료는 기자들을 만날 때마다 완벽한 자료를 만들려고 애쓰는 반면 나는 우선 기자를 만나서 얘기하며 그 시간 안에서 해답을 구하려고 했다. 준비했던 시간들이 짝사랑으로 끝날 때가 있었고 자료를 준비하는 시간에 한 명이라도 더 만나자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기자를 만나면 그가 이렇게 말할 때가 있었다.

"제가 기획 기사를 쓸 예정인데 자료 좀 부탁할 수 있어요?"

"어떤 것인가요?"

"이 업계의 일본 시장 동향을 부탁해요."

사무실로 돌아가 자료를 준비해서 보내면 기사 내용에 회사명이나 내 이름이 게재되는 뜻밖의 일도 있었다.


내가 의도한 바대로 흐르지 않고 그 흐름 안에서 생각지도 못한 행운도 일어나는 것이 시간이며, 그래서 나는 새로운 시간 앞에서는 늘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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