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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잼 Apr 14. 2021

결혼을 주저하지만 여전히 궁금해하는 당신에게


아니, 왜 이리 결혼을 빨리했대?

결혼을 한 이후로(혹은 결혼할 당시) 한국 분들께 거진 밥 먹듯 이 질문을 들었다. 내게 질문을 던지신 분들과 나의 심리적, 그리고 물리적 거리의 범위는 꽤나 광범위했다. 10년을 훌쩍 넘도록 한 동네에서 지내며 대부분의 역사를 함께 한 친구들부터, 생판 초면의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도 계셨으니까. 그런데 연령대와 거주 지역이 서로 판이하게 다른 그들이 나를 보며 쏟아내는 리액션은 사전에 약속이라도 된 양 동일하다. 대부분은 '흐에엑,' 하는 반응을 보이며 눈을 크게 뜨는 듯한 표정으로 재빠르게 다음 질문들을 쏟아내기 마련이다. 나도 더 이상 이런 반응들이 난처하지 않은 것을 보니 점점 한국 분들의 결혼에 대한 인사이트에 적응을 해 가고 있는 듯하다.




흰 자가 넓게 보이고 잔뜩 치켜 올라간 눈썹으로 '도대체 왜?'라고 물으셔도 기대하신 대답을 드리기는 어렵다. 내 남편이 백마 탄 하와이의 'Prince Charming'으로 보여서는 당연히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젊은 나이에 경제적 자유를 이루어 소울 메이트만 찾으면 됐냐 하면 그건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남편과 본질적으로 케미(Chemistry)가 잘 맞아서 결혼했다. 감정에 지배당하는 나와 이성적 사고에 투철한 남편이 싸워가며 서로의 영역을 배우는 과정에 재미를 느꼈다. 우리의 연애는 짧은 기간이었으나 로맨스와 백분 토론, 브로맨스, 호러 혹은 스릴러의 장르가 모두 담겨있었고, 힘든 순간이 있었을지언정 새로운 장르는 신선했다.




그러니 나의 대답은 질문자들이 예상한 이상적 답안의 범위에서 많이 빗겨가지만, 이렇게 어영부영 덜컥 해치워버린 결혼의 결과물은 생각보다 만족스럽다. 나의 만족감은 결혼을 한 후에 아주 많은 것을 이뤄내리라 거창하게 계획을 세우지 않은 것에서 비롯되었을 지도 모른다. 결혼은 너무 많은 환상과 기대를 안은 채 입문하면 자칫 예기치 못한 포인트에서 실망할 수 있지만, 기대치를 살짝 내려놓고 하면 생각보다 많은 모먼트에서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분명 '기혼'임에 행복하지만,



 혼자 돈 많이 벌어 대차게 놀다 죽을 거라던 내가 돌연 결혼 선언을 하자 친구들은 적잖이 놀랐다.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더 흐른 후엔 내심 부러웠는지 툭하면 '제이미야, 나도 남자친구랑 결혼할까?'를 물어왔다. 나는 속으로 흔쾌히 '그래, 결혼하니까 훨씬 안정적이야'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쉽게 그러지 못했다. 특히 얼마 전 결혼한 지인이 결혼식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은행의 노예로 전락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이후엔 더더욱.




'결혼과 죽음은 가급적 뒤로 미뤄야 한다'고 외치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 나는 당당하게 결혼을 추천하고 싶다. 그런데 현실을 감안하면 그렇게 자신만만히 추천하기가 어렵다. 가족과 가족 간의 결합에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문제, 눈덩이처럼 불어날 경제적 고민들, 젊을 때 결혼하면 족쇄를 차는 것과 다름없다는 한국 사회적 정서를 고려한 인사이트들은 모조리 친구들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얼버무려 말한다. '안 한 것보단 하는 게 더 좋은 것 같다'고. 가끔 무협지에 버금가는 혈투 씬을 (밥주걱과 국자로) 찍을지언정 집 밖 어디에 내 놔도 '내 편'의 명찰이 붙어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 건 생각보다 행복한 일이라 덧붙인다. 부디 내가 이렇게 흘려가듯 전달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친구들의 복잡한 두려움을 약간이나마 잠재울 수 있기를 바라면서. 또 하나 내가 전해줄 수 있는 확실한 장점은, 결혼을 한 후의 나는 결혼을 하기 전보다는 아주 조금 더 성장했다는 점이다.



결혼이 갈수록 미뤄지는 추세 속에서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굉장히 조심스럽다. 아이러니하게 요즘의 2030 세대는 결혼을 늦춰야 한다는 생각이 있으면서도 은근히 결혼에 대한 지속적인 호기심을 갖는 듯하다. 오늘도 여러 토픽의 이야기 끝 결국 '제이미야, 나 이번엔 진짜 결혼할까?'로 마무리하는 친구에게 나는 답한다.



"너랑 네 남자친구가 결혼 후 걷는 길이 모두 꽃길이라고 장담할 수 없을 지도 모르고, 생각보다 더 피곤한 문제들이 너를 괴롭힐 수 있을지언정

그래도 결혼은 해볼 만한 가치는 있어. 어차피 싱글일 때도 인간관계는 여전히 괴롭고, 경제적 문제로 고민은 하게 되잖아? 나는 쩜 오(0.5)만큼만 현명해서, 나 혼자 머리 아플 문제를 쩜 오(0.5) 더해 같이 해결해 줄 남편이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해. 아마 너도 내 친구라 높은 확률로 구원자가 필요할 것 같으니. 할까 말까 고민스러울 땐 그냥 질러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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