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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May 12. 2023

처녀 실종 미스터리 사건(1)

[한국 전쟁이 낳은 비극]

밀고 밀리며 치열했던 한국 전쟁이 마침내 휴전을 하게 된 것은 정확히 3년하고도 1개월 2일만이었다.   

   

우리 마을에 그 해괴한 사건이 벌어진 것은 휴전 직후인 1954년이나 55년 경으로 기억된다. 어느 집을 막론하고 배고프고 가난했던 시절이었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그날도 해는 어김없이 서산마루로 내려앉는가 했더니 어느새 저녁때가 되면서 마을이 온통 땅거미로 뒤덮이고 금세 어둠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으아아악! 아이고오 사람 살려! 사람 좀 살려 줘요!”     


조용하기만 했던 우리 마을 어디선가 고통에 못 이겨 곧 숨이 넘어갈 듯한 젊은 여자의 절규에 가까운 비명이 들려오고 있는 게 아닌가. 연이어 들려오는 자지러질 것만 같은 비명 소리에 온 동네가 떠나갈 듯 갑자기 소란스러워지고 있었다.  

    

그 소리는 분명히 우리 집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얼른 듣기에도 예삿일이 아니었다. 일이 벌어져도 아주 큰일이 벌어지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난 소스라쳐 놀란 나머지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어느새 비명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한걸음에 급히 달려가게 되었다. 그때 내 나이 겨우 열 세 살이나 열 네 살 쯤이었다.


아아!


그런데 한걸음에 달려간 그곳에서는 차마 두 눈 뜨고 볼 수 없는 뜻밖의 깜짝 놀랄만한 전혀 상상 밖의 광경이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차마 두 눈뜨고 볼 수 없는 그 사건은 생각했던 대로 우리 집에서 한 집 건너인 혜경(가명)이네 집 마당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지금 혜경이네 마당에서는 금순(가명)이 아버지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표정으로 혜경이의 긴 머리채를 바짝 말아 손에 움켜쥔 채 땅바닥으로 질질 끌며 소리소리 지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죽기 전에 어서 대답해 보란 말이야! 내 딸 어디다 팔아먹었어!”     


으아아악! 아이고오 사람 살려! 사람 좀 살려 줘요!”     


혜경이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나머지 땅바닥에 나동그라진 채 두 손으로 머리채를 움켜잡고 울며불며 살려달라고 여전히 애원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워낙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금순이 아버지의 억센 힘을 그 누구도 당할 수는 없었다. 현재로서는 그저 속수무책으로 비명을 지르면서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며 금순이 아버지가 잡아끄는 대로 질질 끌려다니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혜경이 엄마 역시 어떻게 된 영문을 모르고 딸이 질질 끌려가고 있는 대로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통곡을 하며 살려달라고 애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바람에 삽시간에 60여 호나 되는 마을이 온통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혜경이는 시골 처녀답지 않게 뽀얀 피부에 얼굴도 비교적 예쁜 편이었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평소에도 셩걱이 도도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또래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고 늘 혼자 집에 있거나 가끔 어디론가 곧잘 쏘다니기를 좋아했다. 다른 처녀들은 모두 단발 머리였지만, 혜경이는 유난스럽게 머리를 길게 기르고 있었다. 한마디로 비람기가 있는 처녀로 벌써부터 마을에서 이미 소문이 난 처녀이기도 하였다.       


뭐니뭐니해도 예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꼽으라면 싸움 구경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게 도대체 무슨 변이래?”     


“그걸 누가 알겠나. 아마 무슨 죄를 져도 크게 진 모양이야.”     


마을이 온통 떠나갈 듯 시끌벅적해진 소리에 어느 틈에 모여든 마을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하나같이 둥그런 눈이 된 채 혜경이가 끌려다니는 대로 그저 졸졸 따라다니며 구경만 하고 있었다. 집집마다 기르고 있는 개들도 놀라 뛰어나와 무슨 일인가 하고 저마다 시끄럽게 짖어대는 바람에 마을이 온통 떠나갈 것만 같았다.    


혜경이는 이제 갓 스무 살쯤 된 꽃다운 처녀였다.         

 

구경꾼들은 내 또래의 아이들도 많았지만 어른들도 많았다. 하지만 혜경이의 머리채를 불끈 감아 쥔 금순이 아버지는 여전히 서슬이 시퍼래서 입에 거품을 물고 펄펄 뛰고 있어서 감히 말리려 드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 중에도 혜경이를 다그치는 금순이 아버지의 사나운 목소리는 계속 쩌렁쩌렁 울려퍼지고 있었다.      


“우리 딸 어디다 감추었는지 어서 대지 못하겠어!”     


“전 정말 몰라요. 차라리 저를 죽여 주세요.”     


“그래도 이년이 정말! 어서 대지 않으면 넌 오늘 당장 내 손에 죽을 줄 알란 말이야!”    

 

혜경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처럼 차마 두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일을 당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현재로서는 혜경이가 너무나 불쌍하고 가엾기 그지없었다.    

  

그토록 곱고 예쁘게 자란 처녀를 이처럼 인정사정없이 무자비하게 끌고 다니고 있다니 아닌 밤중에 홍두깨가 따로 없었다. 이렇게 끌고 다니다가는 얼마 뒤에는 틀림없이 곧 숨이 끊어지고 말 것만 같았다.  

    

혜경이네 집에서 금순이네 집까지는 대여섯 집 떨어져 있어서 제법 먼 거리였다. 금순이 아버지는 연신 고통에 못 이겨 비명을 지르고 있는 혜경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향해 질질 끌고 가고 있었다.  금순네 집으로 가는 길에는 길바닥에 돌멩이도  많았지만 가끔 시궁창에서 졸졸 흘러내려오는 썩고 더러운 물도 많았다.     


이윽고 금순네 집 바깥마당에 이르렀다. 혜경이는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며 끌려오는 바람에 온몸이 흙투성이가 되고 얼굴 역시 눈물 범벅이 되고 말았다. 가끔 한움큼씩 빠져나간 얼굴 모습 역시 마치 귀신을 연상케 하기도 하였다.  

   

혜경이는 오랜 시간 고통에 못이겨 정신을 잃었는지 이제는 크게 저항도 하지 못하고 간간이 힘없는 목소리로 가느다란 신음만 내뱉고 있었다.      


자신의 집 마당에 도착한 금순이 아버지는 혜경이의 머리채를 잡은 채 마당을 빙빙 돌며 어서 바른대로 대라고 여전히 소리소리 지르고 있었다. 온 마을 사람들을 다 보라는 듯 이른자 조리돌림을 하고 있었다.  

    

그날 난생처음 그토록 처참한 광경을 구경하고 있던 나는 그만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리고 그 후로 그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자세히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나중에 소문을 듣고 보니 금순이 아버지가 혜경이를 그렇게 끌고 다니게 된 것은 자신의 딸인 금순이 때문이었다. 그처럼 조용한 성격에 얌전하기만 하던 금순이가 갑자기 행방불명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휴전 직후 휴전선에 인접한 우리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미군 부대가 여기저기 우후죽순처럼 자리를 잡고 주둔하고 있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바람기가 있는 혜경이는 그동안 주로 미군 부대 철조망 밖을 돌아다니며 미군을 사귀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던 중 어느 미군과는 아주 가까운 사이로 발전하여 깊은 관계까지에 이르렀다는 소문이 자자하게 떠돌았다.      


그런 소문이 돌게 된 지 얼마 뒤, 성품이 얌전하고 수줍기만 했던 금순이가 돌연 며칠째 행방불명이 된 것이다. 금순네 가족들은 초조한 마음으로 이제나저제나 금순이가 집으로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여기저기 친척 집마다 다 돌아다니며 모두 찾아보았지만 금순이의 행적은 그 어디에도 묘연하였다. 그러자 금순네 식구들은 은근히 혜경이를 의심하기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몇 달 전, 웬만해서는 찾아오지도 않던 혜경이가 뜬금없이 금순네 집에 몇 번 온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그 후로 까마귀 날자 배가 떨어지듯 금순이가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금순네 가족은 틀림없이 혜경이가 금순이를 꼬드겨서 미군들과 어울리게 하였다고 의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던 중에 어느 날 늘 밖으로 나돌던 혜경이가 잠깐 집에 왔다는 소문을 듣기가 무섭게 금순이 아버지가 다급히 경란이네 집으로 달려와서 경란이를 끌어내게 되었던 것이다. ( * )    

 

                 - 다음 회에 계속 이어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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