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달쏭 북한말]
일요일 아침이었다.
“여보, 식사하세요! 혜영아, 밥 먹자!”
주방에서 아내가 부르는 소리 에 거실에 혼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던 성길 씨도, 방에 혼자 있던 딸 혜영이도 조르르 식탁 앞으로 모여들었다.
혜영이는 워낙에 입이 짧고 식성이 까다로운 편이었다.
그래서 혜영이는 오늘도 어김없이 식탁에 차려진 반찬들을 한동안 두리번거리며 살펴보더니 이내 못마땅한 표정으로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왜 만날 이 모양이야?”
“왜 또 그러니? 엄마는 그나마 널 위해서 정성껏 차리느라고 애를 썼는데 넌 번번이 그놈의 반찬 타령이더라.”
아내의 말에 이번에는 성길 씨도 덩달아 맞장구를 치며 끼어 들었다.
“건건이들이 이렇게 그득한데 또 무슨 건건이를 찾고 있니? 이거 보렴. 여기 네가 좋아하는 색쌈, 그리고 칼파스도 있지 않니?”
그러자 이번에는 혜영이가 여전히 못마땅해진 얼굴로 성길 씨를 향해 짜증을 부렸다.
“아빤 남한으로 온 지 벌써 10 년이 훨씬 지났다고 그랬지?”
“아암, 그랬지. 그런데 그건 왜?”
“그런데 왜 툭하면 남들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그런 북한말을 아직까지 쓰고 있느냔 말이야.”
성길 씨는 그제야 혜영이의 말 뜻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조금은 겸연쩍고 쑥스러운 표정이 되 어 미안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허허, 아빠가 깜빡 잊고 또 실수를 했구나. 아빠가 습관이 돼서 북한에서 쓰던 말이 불쑥불쑥 나오는 걸 어쩌겠니. 네가 이해를 좀 해주렴.”
그러자 이번에는 엄마가 아빠 대신 웃으면서 끼어들었다.
“그래. 아빠가 아직도 남한 말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러는 것이니까 네가 좀 이해하렴. 북한에서는 반찬을 ‘건건이’라고 그런다 더라. 그리고 ‘색쌈’은 계란말이, 소시지를 ‘칼파스’라고 한단다.”
설명을 끝낸 아내가 이번에는 성길 씨를 향해 나무라듯 한 마디 하였다.
“그러니까 당신도 혜영이 앞에서는 항상 말조심을 하라니까요.”
“아, 알았어요. 혜영아, 아빠가 앞으로는 북한 말을 안 쓰도록 특별히 조심할게. 그럼 이제 된거지?”
아빠의 말에 혜영이는 그제야 기분이 조금 풀렸는지 아무 말 없이 천천히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자 성길 씨와 아내도 그제야 안심이 된 듯 즐거운 표정으로 식사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성길 씨가 문득 또 다시 그 옛날 북한에서 힘겹게 살아 왔던 과거가 머리에 떠오른 듯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아, 난 정말 행복한 사람이란 말이야.”
성길 씨의 말에 아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행복하다니 새삼스럽게 그건 또 무슨 소리에요?”
그러자 성길 씨가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북한에서 살던 일이 갑자기 생각나서 그래. 지금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내가 북한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온 어린 시절은 그야말로 애옥살이요, 강심살이였다 이 말이야. 아암, 그렇고말고.”
그러자 아내가 곧 성길 씨를 향해 가볍게 눈살을 찌푸리며 성길 씨를 향해 나무라듯 입을 열었다.
“아니, 방금 전에 조심하겠다고 약속까지 해놓고 또 북한말이 나와요? 그리고 애옥살이는 뭐고, 강심살이는 또 무슨 소리에요?”
“아참, 그랬었지. 내 정신 좀 봐라. 하하하…….
애옥살이란 가난에 찌들대로 찌든 견디기 어려운 삶을 말하는 것이고,
강심살이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삶을 매일 겪어야 하는 고생살이란 뜻이지.
지금 이 시각에도 북한 동포들은 그런 고통 속에서 그야말로 죽지 못해 지옥 같은 나날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단 말이야. 헛허허 …….”
성길 씨는 그런 북한 동포들의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몹시 안타깝고 측은하다는 듯 연신 허탈한 웃음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혜영이도 덩달아 몹시 안 됐다는 듯 찡그린 표정으로 아빠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아빠, 그럼 북한 동포들은 지금도 그렇게 모진 고생을 하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단 말이지?”
“아암, 그렇고말고. 지금 이 시각에도 북한에서는 굶주림과 중노동에 시달리다 못해 죽어가는 사람들이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늘어가고 있단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매일 실컷 먹고 있는 밥과 건건이야말로 북한에 비하면 복에 겨운 진수성찬이 아니겠니? 그런 걸 생각해 보면 우린 정말 행복한 사람들이란 말이야. 헛허허 …….”
성길 씨는 북한 주민들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매우 안타깝고도 가슴이 아프다는 듯 연신 허탈한 웃음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