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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mu Nov 11. 2020

호텔보다 한옥이 좋아질 때

느림의 미학

 나이가 들긴 했나 보다.

 5성급 호텔보다 한옥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번 달 중순이면 친구가 퇴사를 한다. 긴 휴식을 위해 그만두는 것이 아닌 이직을 위해 하는 퇴사라 머지않아 또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한 여정을 가져야 하는 친구이기에 짧게 여행을 함께 다녀오기로 했다. 여행지는 경주로 정했다. 경주는 수학여행으로나 가는 곳 아닌가 할 수도 있지만 우리에게는 올 한 해 고궁과 한옥, 그 정취가 너무 고팠다.

 

 내가 직장에서 제일 많이 듣는 말이 있다.

 

 ‘언제까지 되나요? 지금 저희 급한데..'


 IT 담당자로써 제일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가 언제까지 해줄 수 있냐는 물음이다. 보통은 지금 당장 요구한 바가 눈 앞에 적용되기를 바라신다. 여러 번 그 과정을 겪다 보니 일하는 버릇이 하나 생겼다. 요청 전화가 오면 바로 받지 않고 심호흡부터 하는 것이다. 전화 벨이 울리면 항상 속으로 ‘하나, 둘, 셋’ 쉬고 전화를 받는다.

 경험상 보통 메신저가 아닌 전화가 오는 경우는 상대가 급하다는 것이고, 때로는 어떠한 문제가 생겨 화가 나 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그렇게 당장 반영해달라는 폭력 없는 외침에 잘 대응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 중 하나가 ‘하나, 둘, 셋’ 심호흡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는 것이다. 상대방의 속도와 거친 요구에 그대로 휘말리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하기 위한 나만의 방식 중에 하나였다.


 ‘급하다. 빨리 해달라.’라고 말하시지만 개발과 안정적인 지원을 위해서는 나에게도 일정 시간이 소요되는 법이다. 그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양해와 함께 개발 시간이 필요함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행위가 반복됐다.


 그렇다면 일이 끝나면 평화롭고 천천히 누리는 시간이 올까? 일이 끝나고도 느림의 정취를 느끼기는 쉽지 않았다. 건강해지기 위해 시작한 운동이지만 얼른 업무를 마치고 예약한 시간에 혹여나 늦을까 ‘안녕히 계세요’를 외치고 운동하는 곳으로 뛰어가서 운동을 하다 보면 가끔 이게 뭐하는 것인가? 싶을 때도 있었다. 연예인도 아닌데 왜 이렇게 스케줄 소화하는 게 힘들지? 하면서 정신없이 하루를 마무리하고 나면  또 그 삶이 적응된 것인지 집에 오는 길에 바쁘게 하루를 보낸 나를 돌아보며 뿌듯해해하기도 한다. 천천히 살고 싶으면서도 꽉 채워서 산 하루를 돌이켜보면서 또 스스로 대견해야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다.


천천히, 느림의 미학


 이처럼 천천히, 느림의 미학을 온전히 느끼고 싶은 간절함은  계속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경주 여행에서의 숙박은 한옥 펜션으로 예약했다. 내 의지가 다분히 담긴 숙소 선택이지만 친구도 아예 먹을 것을 쟁여두고 한옥펜션 안에서 있자며 내 선택을 지지해주었다. 친구도 한옥이 주는 여유로움과 평화로움, 고즈넉함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이전에는 루프탑 수영장과 삐적찌근한 호텔 내부의 부대시설에 설레 했다면 지금은 한옥의 고즈넉함과 주변 경치를 만끽할 생각에 설레 하고 있다. 호텔에 비하면 침대도 없고 가벼운 침구로 이루어진 자칫 심심해 보일 수 있는 방구조이지만, 한옥에서 머문다는 게 너무 좋아서 여행이 3주나 남았는데도 설레서 잔뜩 기대하고 있다.


경주 한옥펜션   by @namu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한적한 곳에서 쉼을 만끽하고 싶었다. 숨 가쁘게 살아온 삶을 뒤로하고 한옥의 정취에서 여유로움을 느끼면서 친구랑 도란도란 맥주 한잔 하는 게 이번 여행의 목적이었다.


 고궁과 한옥이 주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분위기가 좋다


 고즈넉한 정취와 자연과 어우러진 건물의 아름다움은 한옥의 대표적인 매력이다. 그리고 그 곳에 있으면 괜히 마음이 차분해지고 느릿하게 시간이 흐르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현실적인 문제로 ‘제주도 한 달 살기’ 와 같은 체험은 못하지만 일박이일이라도 일상에서 벗어나 천천히 흐르는 환경 안에 나를 가둬두고 느림의 미학과 여유로움을 온전히 느끼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천천히 가고 싶다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저마다 여러 가지 일들로 참 바쁘게 살아간다. 모두들 인사말처럼 바쁘다고 하고 나 또한 그러했다. 그 결과로 정신없이 하루가, 한 달이, 일 년이 흘러간지도 벌써 한참 이 됐다.


너무 서두르며 살다 보면 놓치고 가는 것도 많다.


인생 속도를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직장생활과 바쁜 일상이 주는 속도에 몸을 맡겨 정신없이 시간을 흘러 보내지 않으려면 의식을 갖고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직장생활에서 천천히의 미학을 달성하기란 쉽지 않다. 한 주가 지나면 주간보고를 작성해야 하고 그 일은 완료되었는지 진행 중이라면 언제까지 완료할 것인지 알게 모르게 일정에 대한 압박 속에서 살고 있기에 혼자 느림을 외치긴 쉽지 않다.


생각으로 어렵다면 주기적으로
장소를 바꿔주어야 한다


 의식적으로라도 천천히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장소에 가야 한다. 천천히, 느림의 미학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자연스럽게 스며든 공간 말이다. 그 곳에서 그 분위기에 취해 천천히 지나간 시간들을 하나씩 정리하면 된다. 그렇지 않으면 정리도 못하고 순식간에 내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벌린 일도 많고 벌려진 일도 참 많은 한 해였다. 


 내년도 얼마남지 않은 지금. 천천히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경주 한옥펜션    by @na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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