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아픈 거다
몇 년 전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김난도 작가님의 책이 엄청난 인기를 휩쓸었다. 막상 책을 읽어보면 도움이 되는 좋은 내용들이 많지만 제목이 주는 자극적인 의미로 인해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문장이다. 얼마 전에는 한 방송인이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아프면 환자이니 병원에 가야 한다며 그 의미를 재해석하기도 했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제목만 놓고 보자면 나도 '아픔=청춘'이라는 개념이 성립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말 그대로 아프니까 아픈 것이다.
아픈 데에는 별다른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
당장 현재 내가 아픈 상태가 중요한 것이지, 아픔의 강도를 따져본다거나 이 아픔은 청춘이어서 아픈 것이 당연한 시기라든지 등의 고찰은 아픔을 치료하고 나서 해도 늦지 않다.
‘젊을 땐 좀 고생해도 괜찮아.’라는 라떼들의 말과 함께 청춘은 아픈 것이 당연하다고 치부되는 현실 속에서 아프고 힘들 때 그 마음 그대로를 표현하지 못하고 자신을 자책하는 사람들이 많다. 더군다나 이전보다 물질적인 풍요와 편리하고 간편해진 세상에서 요즘 젊은이들은 조금만 힘들어도 안 하려고 한다는 비판 어린 목소리를 뒤로하고 너무 아프다고 말하는 것이 눈치가 보일 때도 있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 참아내는 법만 배워나갔다. 그 아픔을 잘 견뎌내고 목표를 이루고 나서야 ‘사실은 아팠었다.’라고 말을 하면 그제야 사람들이 그 아픔에 대해 공감과 인정의 시선을 보내온다.
결과가 보장이 된 아픔만 의미 있는 아픔으로 인정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아픈 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아프니까 아픈 것이다. 아프다고 당당하게 표현하고 천천히 견뎌내면 되는 것이지, 마치 아프다고 느끼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처럼 연약한 존재로 바라보면 안 된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더 헷갈리게 된다. 진짜 내가 할 수 있는데 아프다는 핑계로 안 하고 있는 건지, 내가 더 노력하지 않아서 못해내고 아픈 건지 자책감에 결국 더 채찍질만 하다가 나가떨어지게 되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사람은 저마다 체형도 성향도 다르기 때문에 아픔의 종류와 그로 인한 상처 또한 다 다르기 마련이다.
아픔 자체는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보통 사람들보다 고통에 잘 견디는 편이었다. 일례로 미용실을 가서 파마를 하면 뜨거운 열이 나오는 장비에 내 머리를 집어 두고 ‘뜨거우면 말씀하세요~’라고 말하고 이내 사라지신다. 조금 뜨겁지만 참을 만하니 굳이 말하지 않고 타이머가 울릴 때까지 견딘다. 어련히 잘 맞춘 적정 온도이겠지, 이 정도 온도여야 머리의 컬이 이쁘게 잘 나오는 거겠지 생각하면서 가만히 기다렸다. 그리고 돌아온 미용사는 이렇게 말한다.
'어머, 안 뜨거우셨어요?’
‘되게 잘 참으시는 성격이시구나.'
나는 아프면 일단 참고 보는 성격이었다. 참고, 참고 또 참아보고 정 안 되겠으면 못 하겠다고 말했다. 보통은 참고 참는 단계에서 그 일이 끝난다. 아프다고 말하기 전에 참다가 해내고 끝이 난다. 참으면서 받은 후유증도 고스란히 내 몫이었다.
웬만한 일에는 아프다고 말하면 안 되는 줄 알았다. 어릴 때 우리는 국어 수업 시간에 ‘영웅적 서사구조’의 소설들을 자주 배웠다. 역경을 딛고 일어나 성공한 무사 이야기, 고난을 극복하고 인정받은 위인 이야기 등은 국어책에 무수히 많이 실려있었고 청소년 필독도서에도 대부분의 구조가 이러했다.
반면, 노력 끝에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포기하거나 그 과정에서 좌절하고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없었을까?
현실에는 이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훨씬 많다. 그 이야기들은 왜 오픈되지 않았을까. 책으로 쓰여지지 않아서?
아마 그런 이야기들을 다룬 책들은 많지만 국어책에 실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어릴 적부터 책을 통해, 수업을 통해 자연스럽게 고통은 극복해야 하고 아픔은 참아야 하는 것임을 무의식적으로 배워왔다. 하지만 노력 끝에 포기해야하는 때가 올 수도 있고 인생에는 또 다른 길을 선택할 수도 있음은 배우지 못했다.
인생을 길게 보면 마음을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아픔을 말하고 표현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말하지 못하고 지나치면 결국 그 시간만큼 속에서 곪게 되고 치유의 시간은 배로 든다.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기분 나쁘면 나쁘다고
서운하면 서운하다고
말해야 한다.
그때그때 이야기하지 못하면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에는 켜켜이 쌓이게 되고 묵은지가 되어서 속에서 터져버린다. 그제야 우리는 아프다고 말한다.
아프다는 마음을 오픈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말도 있듯이 밖으로 드러내고 표현해야 사람들이 알게 되고 치유 방법도 나온다. 그렇게 한 명이 말하기 시작하면 주위에서도 사실 나도 아프다고 공감의 시선으로 다가와주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병은 소문내라'는 말처럼 아픔도 혼자서 끙끙대지 말고 소문내어야 좋은 약을 만날 수 있다. 결국 오픈하는 용기가 중요하다. 생각보다 아프다고 말해도 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당장은 뭐 그런 걸 가지고 아프다고 하느냐라고 핀잔을 주거나 모른 척하는 반응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픔을 인지하고 치유하는 것의 시작은 내 입을 통해 말하는 것에서부터 온다. 아프다고 주변 사람에게 말하고 오픈하는 것이 자가 치유의 첫 시작이다. 오늘부터 당당히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자. 아프다고 말해도 나는 결국엔 견뎌낼 것이니, 아프다고 말하는 것은 분명한 내 권리이다. 나약한 것이 아니다.
지금 내가 아프니까 아픈 것이지,
청춘이라서 당연히 아픈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