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lice Apr 16. 2020

기억하고 싶어서 그렸습니다

세월호 키링 디자인

탄핵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그 해 겨울, 세월호 가족들은 여전히 광장에 있었다. 2016년 마지막 밤, 트리샤와 나는 송년 파티 대신 광화문을 향했다. 가끔씩 지나치면서도 죄스러워 좀처럼 쉽게 들어가지 못했던 곳, 세월호 분향소에 갔다. 트리샤는 답답한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어 수시로 그곳에 들렀었다고 한다.



“노란 리본 가져가세요!”

칼바람 속에서 들려온 목소리. 분향소 앞 작은 바구니 안에는 노란 리본이 가득했다. 사람들 가방에 달려있던, 길에서 종종 보았던 그 리본이다. 붙잡을 틈도 없이 트리샤는 부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들어가 보세요.”

쭈뼛거리는 내 등을 떠민 건 리본을 나눠주던 아저씨였다. 고개를 들이민 부스 안에선 예상치 못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방한용 문도 제대로 없는 공간에서 세월호 가족과 자원봉사자들이 노란 리본을 만들고 있었다. “이쪽이 따뜻해요. 안쪽으로 들어와요.” 원래 알던 사이처럼 자리를 내주더니, 고리와 조립할 리본 한 박스를 자연스럽게 건네준다. 얼떨결에 사람들 틈에 끼어 가내수공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가끔 수다를 떨며 박카스를 챙겨주는 사람들, 묵묵히 이어지는 손놀림, 시린 손을 비비며  시간을 그렇게 작업하는 동안 마음이 그렇게 따뜻할  없었다. 그렇게 광화문에서 맞은 새해는 어떤 멋진 일출보다 가슴에 남는 신년맞이였다.


그해 5 대선이 치러지고, 정부 출범 100일을 맞아 청와대로 세월호 가족들이 초청되었다. 3년이나 노숙하고 단식하며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들어오려 했던 곳이다.  재통령은 정부를 대표해 국가의 부실 대응을 유가족에게 공식 사과했다. 그날 영빈관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가족 잃은 아픔은 무엇으로도 위로하기 힘들겠지만,  상징적 하루가 유가족의 맺힌 한을 아주 조금이나마 덜어줄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침몰하는 배를 TV로 버젓이 지켜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무력감, 세월호는 우리 모두에게 트라우마를 남겼다. 바쁜 일상에 가끔은 잊고 살지만, 무뎌지더라도 중요한 가치를 잊지는 말라고 나를 일깨운다.



올해는 노란 리본 대신 노란 종이배를 키링으로 만들어 보려고 했다. 손잡이로 배를 끌어올리는 모양을 만들어 가방에 달아볼 생각이었다. 도안을 그려 가죽공방에 문의했다. 공방장은 나를 말렸다.

“가능은 하지만 가죽 구입비용이나 제작 시간 때문에 단가가 안 맞으실 수 있습니다. 예상금액은 약 8만 원입니다.”

대량 생산이 아니어서 시간도 비용도 많이 든다는 것이다. 언젠가 가죽공예를 배워서 직접 만드는 수밖에.


세월호 키링 도안은 다른 곳에 인쇄했다.

4월 16일, 일부러 맞춘 듯이 주문 제작한 머그컵이 도착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흔에 그림을 시작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