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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e Aug 03. 2021

이소영의 <식물과 나>

책을 덮는 순간 나만의 식물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리는 왜 ‘봄’을 희망의 다른 말로 부를까? 그것은 아마도 식물 때문일 것이다.


식물은 한파와 폭설을 헤치고 살아남아, 때가 되면 반드시 새싹을 틔워낸다. 작고 여린 연두색 이파리는 역설적으로 강인한 생명력의 상징이다. 봄날의 식물은 우리에게 '어려움이 지나가면 좋은 시절이 온다'는 희망을 준다. 식물의 생애에서 우리는 '추운 겨울도 견딜 만한 가치가 있다'는 증거를 발견한다. 식물은 소리 없이 새 잎을 내고 꽃을 피운다. 작지만 미세한 변화에서 우리는 희열을 느낀다.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팬더믹 속에서 식물집사로 거듭난 사람이 유독 많은 것은 이런 ‘식물의 위로’ 때문이 아닐까?


몸도 마음도 잔뜩 움츠린 겨울날 새싹이 움트는 봄을 기다리듯, 오랫동안 기대했던 책이 나왔다. <식물과 나>. 식물이 주는 조용하고 따뜻한 위로만큼이나 소곤소곤 다정한 식물 에세이를 선보여온 식물세밀화가 이소영 작가의 신작이다.


패브릭 양장의 커버는 빈티지 식물도감을 쏙 빼닮았다. 사진이 없던 시절 식물 정보를 기록하기 위해 시작된 식물세밀화. 식물세밀화가라는 작가의 직업을 이 식물도감만큼 잘 표현해주는 것이 또 있을까?



연둣빛 금박으로 압인 된 멋스러운 표지 그림은 할미꽃이다. 처음 광릉 국립수목원을 찾았던 날 가장 인상 깊게 본 식물이다. 흔히들 할미꽃이란 이름이 꼬부랑한 꽃 모양에서 유래했다 생각하지만, 비밀은 꽃이 진 다음에 있다. 꽃잎이 떨어진 후 하얗고 기다란 암술이 제멋대로 흩날리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이 백발을 풀어 헤친 할머니다. 작가는 대학시절 정원 만들기 공모전을 준비할 때 촌스런(?) 이름 때문에 동료들이 할미꽃을 꺼려했던 일화를 소개하면서, 자주색 벨벳 같은 꽃잎이 반짝반짝 빛나는 어느 봄날 할미꽃의 아름다움을 독자들도 발견해주길 바란다고 적고 있다.


앞서 출간된 <식물의 책>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번 책 <식물과 나>에서도 작가는 식물과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보여준다. 저마다의 모습과 방식으로 살아가는 식물과 대자연으로부터 작가가 포착해낸 인사이트는 소소해서 더욱 소중하다. 꽃잎이 없지만 길고 아름다운 꽃받침이 꽃 역할을 대신하는 클레마티스를 소개하면서 작가는 말한다. “꽃이라는 기관을 구성하는 더 작고 사소한 요소들도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고 도와가며 그렇게 생장한다.” 작가는 기후변화로 사라져 가는 식물을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기록해야겠다고 조바심을 내기도 하고, 제철 과일과 작물을 관찰하고 또 먹으면서 식용식물의 고귀한 희생(^^)에 고마워하기도 한다.



 <식물과 나>에는 식물 정보뿐 아니라 작가가 어떤 식물을 처음 만났던 순간, 특별한 사연을 갖게 된 사연 같은 개인적 경험이 가득 담겨있다. 작가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잊고 있던 나만의 식물 경험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시골 할머니 집 잠실(蠶室)에서 보았던 누에가 잔뜩 붙은 뽕나무 잎, 고등학교 졸업식 날 친구에게 선물하기 위해 새벽부터 꽃시장에 나가 신중하게 골랐던 하얀 튤립, 복숭아의 흰털만 봐도 알레르기가 생긴다며 매년 여름이면 과일가게가 있는 골목을 피해 다니는 절친의 난감한 표정 같은 것들 말이다.


책을 덮고 나면, 지금껏 몰랐던 식물뿐 아니라 알고 보면 가까이 있었던 식물들이 다시 보인다.  순간부터 독자에게도 자신만의 ‘식물과 이야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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