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를 드라마로 만드는 방법
어떤때에는 의미를 찾아 헤매고 이게 가치가 있을까라는 고민에 빠진적이 있었다.
과거를 되새김질하고 미래를 쫓느라 정작 내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모를때가 있었다. 과거를 돌이켜서 후회하고 그걸 보완해서 준비를 잘해서 더 좋은 미래를 살아보려고 했다. 그렇지만 노력이 부족했는지, 방법이 잘못됐는지 그 보완되는 미래가 썩 현재와 달라지지는 않았다.
자꾸 기준을 더 좋은 미래, 다가올 날들에 대해 초점을 맞추다보니 나는 현재를 살지 못하고 미래를 살고 있었다. 그리고 과거에서 이유를 찾게 되었다.
더 잘살고 싶은데 과거의 내가 일을 이렇게 만들어버렸다는 생각들이 있었고 현재 그걸 바꾸지는 못했다.
이미 지금의 나는 이런 나인데..
아빠가 돌아가시고. 또 친언니가 몸에 이유를 알수 없는게 있다고 했다. 그 알 수 없는게 더 커지면 지금처럼 살기 어렵다고 한다. 지금도 전처럼 살고 있고 병원에 다니고 있지만 한치의 내일을 장담하고 살기가 어려울 것 같다.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데 미래를 계획한다는 게 맞는 걸까. 미래가 주어질지 안주어질지 모르는데 너무 먼 미래를 바라보고 사는게 맞을까.
그렇다고 삶에 대한 무가치나 허무주의가 아니다. 지금 현재가 스쳐지나가는게 아까워졌다. 아쉽고 아쉬워서 너무나도 아깝다.
매일 매일이 나에게 일어나는 사건들과 지나가는 시간이 나의 드라마이고 나의 역사다. 내가 슬프면 드라마도 슬플것이고 내가 기쁘면 드라마도 기쁠거다. 짜여지지 않았다면 내가 짜면 된다.
과거가 쌓여서 지금의 내가 되었기에 지나간 과거에 대해 연연해 할 필요가 없다. 지금의 나를 부정하지도 말고 지금의 나에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본다. 과거의 선택들이 최선이었기에 지금의 나를 만들어줘서 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본다. 설령 낯부끄럽고 기억하고 싶지 않는 시간들도 이유가 있으리라.
차곡차곡 계속 시간은 쌓여가고 또 쉬지 않고 흐르고 있다.
아침에 먹는 토스트, 출근길, 딸아이의 코고는 소리, 남편의 식사준비 소리, 세 명이 도란도란 앉아서 밥 먹는 풍경.. 사소하지만 매일 매일 쌓이고 이 시간과 감정과 공기들이 내 삶에 겹겹이 보이지 않게 얇게 촘촘하게 쌓여간다. 나는 알아차라지 못했지만 이 조용하고 평범한 일상들이 쌓여서 나는 나를 사랑하게 되고 나를 아끼는 사람이 되었고 감사하게 사는 법을 배운 것 같다.
한번 씩 우울감과 허무주의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것 또한 '나'다. 다시 빠져나오면 되고 다시 나는 작은 시간을 쌓아가면 된다. 사는게 어떤건지 고민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냥 살아가는 거라는 작은 결론이 났다.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이유가 있을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렇게 주어진게 의미가 있을거라는 생각도 해본다.
이렇게 남기는게 나의 드라마가 될거라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