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람들

알게 모르게 쌓아온 인맥

by 지오바니

휴직한 지 어언 6개월. 이젠 정말 매일같이 걸려오는 각종 인터넷이며 카드, 대출 업체들의 자동응답기 영업 멘트가 지겨워질 지경이다. 며칠 전에도 전화가 울리길래 별 기대 없이 화면을 곁눈질로 는데 어랏! 지난 5년간 함께 일했던 클라이언트의 이름이 뜬다.


잊고 있던 비즈니스 모드의 목소리가 자동으로 튀어나온다.

"Hello!"

한국인 엄마와 이탈리안 아빠를 둔 그녀는 한국말을 조금 알아듣긴 하지만 대화는 불가능하다.

'무슨 일이지?'

그녀는 중요한 일이 있는데 우리 회사 임원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그의 개인 연락처를 묻는다. 나랑 나이도 비슷하고 쾌활한 성격의 그녀는 나와 오랜만의 통화가 반가웠는지 업무랑 상관없이 사적으로 저녁을 한번 먹자고 한다. 말로는 "That would be great!"라고 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휴직자인 내 처지가 스쳐 지나간다.

'뭐 가볍게 식사하는 거니까 상관없지 않을까... 내가 휴직 상태인 걸 알고 있으니 오히려 그녀도 부담 없이 제안할 수 있었겠지'

날짜와 시간까지 일사천리로 약속을 정하니 약간의 부담감이 밀려온다. 친구 하나 사귄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마음먹자며 긴장된 마음을 진정시킨다.


며칠 후 그녀에게서 온 장문의 톡.

자신이 일하는 기관에서 채용이 진행된다며 내게 관련 링크를 보내왔다. 오랜 시간 함께 일해온 클라이언트한테 채용 링크를 받으니 약간 복잡 미묘한 기분이 든다. 기분 좋은 점은 그녀에게 내가 소개를 해주고 싶을 정도로 괜찮은 사람이었구나 라는 것. 약간 우려가 되는 건 그녀와 계속 일하고 싶어 하는 우리 회사에의 입장에서는 그리 단순한 문제는 아닐 수도 있겠다는 일말의 찝찝함. 그래도 일단은 나 자신만 생각하자 마음먹고 고맙다며 생각해보겠다는 회신을 보냈다.


요즘 들어 이런 일이 종종 생긴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에게 서 좋은 기회들이 찾아온다. 이럴 때마다 '내가 잘못 살진 않았구나' 어디서 어떻게 만난 사람들이든 그들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나의 믿음과 행동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음을 증명받는 것 같아 흐뭇하다. 과에 상관없이 나란 사람을 기억해주고 떠올려준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반쯤은 성공한 기분이다.


작년, 대학원에 지원하면서 함께 일하는 동료와 이 전 회사 상사에게 추천서를 요청했었다. 엄청나게 부끄러워 한참을 용기가 안나 오랜 기간 망설였던 기억이 있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의 첫 반응은 망설임 없는 '물론이지!'였다. A4지 한 장을 가득 채운 추천서와 그 안에 담긴 나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었다. 추천서에 나쁜 말을 쓸리는 없지만 평소 나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며 써 내려갔을 내용이 너무나도 구체적이고 긍정적이어서 정말 기뻤다. 추천서를 통해 나를 한번 되돌아본 느낌이랄까. 내가 꽤 열심히 일해온 걸 인정받는 기분까지 들어 스스로 마구마구 칭찬해주고 싶었다.


평소에 인위적으로 인맥을 구축한다거나 네트워크를 신경 쓰며 사는 스타일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사람을 대할 때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편이라 상대방에 대한 나의 감정이 '호'일 때와 '불호'일 때와 차이가 엄청 크다. 물론 비즈니스에서는 그런 사치는 내려놓은 지 오래지만... 러나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고 생일도 챙기고 내 나름의 애정을 꾸준히 표현한다. 감정을 꾸며내거나 싫은데 좋은 척을 못하는 대신 호감이 있는 사람들에겐 솔직하고 가감 없는 모습을 내보이다 보니 그런 사람들과는 인연이 꽤 오래가는 편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이마저도 쉽지 않아 정말 친한 친구와 동료들에게만 관심을 두자 마음먹었었는데 요즘처럼 뜻밖의 곳에서 전해오는 관심과 연락이 싫지 않다. 살면서 좋은 사람들을 가까이에 많이 둘 수 있다는 건 어떤 것과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큰 복이니 말이다. 리고 고마운 사람들에겐 나도 고마운 사람이 되고 싶어 지니 이런 선순환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이번 기회로 나와 함께 시간을 나눴던 많은 사람들을 떠올려 보게 된다. 함께 일하며 보람찼던 순간, 즐거웠던 순간, 속이 상했던 순간, 고마웠던 순간 심지어 갈등을 겪었던 일까지 모든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이 모든 순간들을 함께 나눠준 그들이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음을 이렇게 깨닫게 된다. 그리고 모든 일의 중심엔 사람이 있음을 다시 한번 음에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