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부터 휴직을 하고 그 간의 이야기를 기록한지도 벌써 9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이제 이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다. 예상치 못하게 새로운 곳에서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역시나 마음 편하게 1년을 쉰다는 건 애초부터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가족과 친구들은 왜 그렇게 일을 못해 안달이냐고 의아해한다. '쉬니 좋지 않냐고,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아이를 돌보고 대낮에 운동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 수다 떠는 삶이 행복하지 않냐'며 일에 목매는 나를 신기하게 바라본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한 번도 보름 이상 쉬어본 적이 없는 내게 9개월의 휴식은 설렘이자 공포였고 기쁨이자 두려움이었다. 이 긴 시간 쉬어보며 한 가지 얻어가는 것이 있다면 내가 꿈꾸며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삶도 막상 살아보니 별. 거. 없. 다는 깨달음이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이 더 커 보일 수밖에 없다는 불변의 진리를 이 시간을 통해 다시 한번 되새긴다.
인터뷰를 보면 어김없이 왜 일을 하냐고, 언제까지 일을 할 거냐며 묻는다. 이 나이에 경력단절 없이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는 반증이자 분명 얼마 안가 일을 그만둘 거라는 편견이 끄집어낸 질문 이리라.
난 내 쓸모를 인정받으며 살고 싶다.
누군가의 인정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반문할 수도 심지어 힐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가진 능력과 경험이 어딘가에서 성과를 창출하는 일에 쓰일 수 있다면 나는 계속해서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싶다. 그렇게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인정받고 자아실현을 하며 나의 존재의 무게를 조금씩 늘려가며 살고 싶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엄마가 다시 일을 할 거라는 소리에 슬픈 표정을 지어 보이는 아이의 얼굴이다. 열 살이 되도록 출근하는 내게 아쉬운 표정 한번 지어본 적 없는 아이가 처음으로 '엄마가 다시 일하는 거 싫다'며 고개를 떨군다. 8개월 동안 엄마와의 시간이 무엇인지 뒤늦게 알아버린 아이에게 나의 부재는 슬픔과 동의어가 되었다. 그런 아이를 안아주며 저녁에는 함께 공부하고 주말에는 꼭 재밌게 놀아주겠노라 힘주어 약속을 한다. 그 말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를 바라보며 또다시 워킹맘의 딜레마에 빠지려는 나를 황급히 끌어올린다.
이전에 유아교육 관련 일을 하던 지인이 해 준 말이 떠오른다. 아이를 낳고 3개월 만에 회사로 복귀해서 일을 통한 자아실현이니 경제활동을 하는 주체로 살고 싶다느니 하는 말을 늘어놓으며 육아를 친정엄마에게 떠맡긴 내게 "아이가 5살이 되기 전까진 엄마가 곁에 있어야 해. 아이의 심리나 정서, 인지 등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거든. 그때 가장 엄마의 품이 필요한 거야." 라며 안타까워했었다.
나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5년을 쉬면 그다음에 이 사회에 내가 원하는 수준의 나의 자리가 있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나. 이러한 선택의 기로에서 나처럼 친정엄마 찬스라도 쓸 수 없던 많은 엄마들이 경력 단절의 길로 내몰렸고 그 엄마들은 10년 만에 다시 돌아간 사회인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량과 경력보다 훨씬 못 미치는 처우를 받으며 일을 한다. 그나마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훨씬 많은 것이 현실이다. 결국 체계적인 구조적 안전망과 사회적 합의를 필요로 하는 일인 셈이다. 제대로 활용 못하는 이 많은 고급 인력들을 사회에 제대로 복귀시키려면.
며칠 전, 아이 둘을 낳고 대기업을 그만둔 후 10년 만에 방과 후 교사로 취업한 친구와 통화를 했다. 일을 하며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가 돈 버는 기쁨까지 누리기엔 그녀의 벌이가 썩 시원치 않음을 슬쩍 내비친다. 그마저도 코로나로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을 것이 뻔해 더 이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쩌면 경력을 살려하는 마지막이 될 이직을 하며 새로운 곳에서 적응해야 할 일이 걱정이 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휴직으로 인해 집에서 하루 삼시 세 끼를 챙겨 먹고 책을 읽고 집안일을 하며 단조로운 삶을 살기엔 난 아직 세상에 나가 이루고 싶은 것이 많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엄마이자 사회인으로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지 이젠 나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