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대학 편입하기 (2)
2005년 6월의 끝자락
두 대학에 편입 원서를 접수한 지도 꽤 시간이 지났는데 뭔가 가타부타 소식이 없어 애가 타던 어느 날, 며칠의 시간 차를 두고 두 대학에서 모두 전화 인터뷰 요청이 왔다. 대면 인터뷰가 있을 줄 알았는데 갑작스럽게 걸려온 전화에 적잖이 당황했다. 수화기 너머로는 명확하고 Posh 한(우아한, 상류층의 라는 뜻으로 약간 비꼬는 뉘앙스로도 쓰인다.) 영국식 악센트가 들려온다. 떨리는 마음 부여잡고 인적사항과 내 경력과 관련한 몇 가지 질문들에 대한 답을 하고 나니 어느새 인터뷰는 끝이 나있다. '정말 이게 다 인가?' 약간 의아했지만 이미 서류로써 필요한 모든 것에 대한 내용은 확인이 된 셈이니 지원한 사람의 실제 존재여부와 영어 실력을 간단하게 테스트한 것 같았다. 물론 이렇게 지레짐작만 할 뿐 내가 잘한 건지 못 한 건지 알 수가 없어 마음이 더 불안했다. 한국이라면 서류상 사진과 동일인인지 확인하는 건 필수일 테고 학교에 따라서는 정시 입학보다 더 무지막지한 편입 시험을 통과해야 했을 텐데, 이상하게 마음 불편할 만큼 수월하고 매끄러운 과정은 자꾸 무언가를 놓친 것 같은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이렇게 며칠이 지난 뒤 다시 UKAS에 접속했다. 합격 여부 확인을 위해 순서대로 메뉴들을 클릭하는데 아이엘츠 시험반을 등록하고 시험준비에 여념이 없던 순간부터 반년 넘게 오늘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이번에 떨어지면 다시 도전할 시간도, 에너지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클릭 하나하나에 온 신경이 곤두선다.
아쉽게도 R 대학에선 아무 소식이 없었다. R 대학의 경우 한국에서 공부했던 학과 과목들과는 조금 차이가 있는 전공을 지원했었다. 편입의 경우 지난 대학에서 이수했던 과목들과 사회 경험이 지원하는 대학의 전공과 관련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연관성이 적은 학과로 지원한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 편입시험이 필요하지 않았던 이유가 이제야 이해가 된다. 이수했던 과목들의 유사성과 점수가 편입시험을 대체한 모양이다. 한국과 달리 졸업이 어려운 것에 비해 입학은 꽤 수월하다는 얘기에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건 아닐까... 이제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이제 마지막으로 하나의 기회만 남아있는 상태다. 한국에서 수능점수를 확인할 때도 이보다 떨리지는 않았었다. 같이 화면을 응시하는 친구들도 잔뜩 긴장한 모양새다.
K 대학에서 합격통지서가 도착해 있었다! 내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는다. 내 옆에서 나를 응원하며 함께 긴장했던 친구들도 한껏 소리 높여 축하하고 기뻐해주었다. 여태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환희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 힘으로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고자 애썼던 지난 시간들이 완벽히 보상받는 기분이다. 누군가의 권유나 강요가 아닌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성취해 내는 기쁨이 이렇게나 큰 것임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수능을 치르고 대학에 갔었지만 그걸 왜 해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그냥 남들이 다 하니까, 해야 한다고 하니까 했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성취감이다. 게다가 부모도 집도 없이 단돈 200만 원을 가지고 홀로 영국에 상경한 지 1년 반 만에 이뤄낸 일이 아닌가. 한 동안은 뒷 일은 제쳐두고 이 성취감에 잔뜩 취해있고 싶었다.
따지고 보면 남들은 졸업하고 취업했을 나이에 다시 대학교 2학년이 되는 건 객관적으로 축하받을 일이 아닐 수도 있다. 현실적으로 봐도 18세에 대학에 오는 영국아이들과는 나이도 한참 차이나고, 영어는 말할 것도 없고, 외국인이 별로 없는 학과 특성상 자칫하다간 아웃사이더가 될 것이 자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내가 해낸 이 성취가 마냥 좋았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 기쁨을 미래의 걱정과 바꾸고 싶지 않았다.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이뤄 낸 이 결과가 나를 적어도 한 뼘은 성장하게 만들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늘에 둥둥 뜬 것 같은 이 기분은 등록금을 내고 돌아오는 길까지 이어졌다. 한 학기 등록금 4400파운드(약 1천만 원, 2005년 현재 환율기준)를 내고 나니 통장에는 달랑 25파운드가 남았다. 밤낮으로 일하며 덜 자고 덜 먹고 아끼고 아껴 만든 그 큰돈을 입학금으로 내는 데도 전혀 아까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외려 누구에게 손 내밀지 않고 도움받지 않고 이 큰돈을 스스로 지불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이 생겼다. 다음 학기에도 무사히 등록하려면 이 큰돈이 또 한 번 필요할 테지만 빈 통장은 외려 내가 더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되어줄 것이다.
10월 입학식까지 몸은 좀 고될지라도 설레는 이 마음은 계속될 것 같다.
수고했다. 정말.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