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들이 Jun 26. 2024

|빛으로 무너져 부정으로 피어나는

검은빛

 난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매번 생각하고 마는 것이다. 무엇은 목표를 말하지만 목표를 잃은 나는 의미를 추구하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내가 추구하는 의미라는 것에 대한 방향도 잘 모르겠고, 정답 없는 삶 속에서 오답을 찍는 건 아닐까 마음 졸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누군가 나에게 무엇을 위해 사는지 묻는다면 나는 꿈꾸기 위해 살아간다고 말할 것이다. 단순한 장래희망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내가 지금까지 써왔던 글이 어쩌면 그 꿈에 가장 가까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게 무엇인지 나조차도 완벽히 정의할 수 없는 것. 밤하늘 위의 반짝이는 점이 진짜 별 인지 인공위성인지 알 수 없는 시각 같은 것. 그것이 나의 의미이자 나의 글이다.


  검은빛. 나의 마음을 그렇게 표현하고자 한다. 나는 밝고 희망찬 표현을 부리지 못한다. 찬란 하디 찬란한 태양과 닮아있는 것들 말이다. 그것은 나와 동시에 존재하지만 반대되는 곳에 있는 것이며, 나는 그것으로 하여금 쓴다는 것에 대한 원동력을 얻지만 결코 본질적으로 같은 것을 쓰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늘 걱정과 불안에 침체되어 있었는데, 숱한 고민에 빠져 유독 힘들었던 순간마다 그 감정을 해결하기 위해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들으며 감정으로부터의 탈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 '낙관적으로 살아라.' '포기하지 마라', '한 가지에 집중해라' 등. 나는 매체에서 제시해 준 길을 따라 불안과 부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그것들로 하여금 나의 목표를 이루었을지언정,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내 안에 심어진 부정의 골은 깊어지기만 할 뿐이었다.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나 자신이었으나 결국 내가 될 수 없었던 이유 또한 나였다.


 아무것도 헤아릴 수 없다. 나의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다. 드문드문 별이 반짝이는 어두운 배경이 나의 세상이라는 걸 안다. 나는 나를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별빛만으로도 충분했던 세상에 억지로 태양을 끌어와 배경을 빛으로 물들이는 것처럼. 인간은 반드시 빛나야 하는가. 정말 그렇다면 얼마나 빛나야 하는가. 앞서 말했듯 삶에는 정답이 없다는데.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을 향해 더 가까워지는 길을 선택하고 있는 걸까? 그렇게 나의 본성이 태양 너머로 깊숙이 파묻혀버리더라도, 그게 내가 원하는 진짜 나의 모습인 걸까.


 일상의 가식이 나를 비춘다고 하더라도 나의 글이 적혀지는 나의 세상에서만큼은 어떤 가식도 내보이고 싶지 않다. 오로지 나 자신만을 비추고 싶다. 내가 글을 쓰는 많은 이유들 중 한 가지. 나는 어두운 이면의 따듯한 내가 밉지 않다. 때로는 그 따듯함 때문에 더 고통스러워지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부정은 다시금 나를 살게 만든다. 나의 꿈은 그런 것이다. 나는 낙관으로부터 죽음을 배웠고 부정으로부터 삶을 배웠다. 나는 부정적인 사람이며 그래서 부정적인 생각이 나를 가득 채우고 있다. 다만 그것을 표출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고, 세상 밖의 나는 따듯한 사람이라는 거다.


 구태여 자신의 본성을 바꿀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때 낙관만이 세상의 빛인 줄 알았으며 그것에 신앙을 가진 사람인 양 맞지 않는 의복을 입고 세상을 돌아다녔다. 지금도 여전히 그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지만, 나는 글을 쓰며 부정 속의 빛을 보았다. 나의 슬픔과 외로움은 빛나고 있다는 것을. 나는 그들 사이에서 꿈을 꾼다. 어쩌면 나만이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을, 그렇게 만들어질 어떤 이의 미래를. 부정은 빛이 될 수 없는 세상 속에서, 나는 살기 위해 부정을 사랑해야만 했다.  

작가의 이전글 |무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