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인생의 시작
즐거운 운전, 즐거운 인생
달려가다
때론 멈춰 서기도 하고
누군가와 함께 하며
시시콜콜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혼자되어
라디오 속 노래에 흥얼거리기도 하는...
그렇게 계속되는 도로를 나아가는 것
운전이라는 건
이처럼
때론 우리의 인생 같다
가끔 떠올려 본다
언젠가는 맞이하게 될
더 이상 운전을 할 수 없는 순간의 나를
"내 삶이 미리 끝나는 기분이겠지?"
어쩔 도리가 없는 인간의 유한함은
혼자만의 상상만으로도 내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그래서...
지금 여기서 즐겁게 운전하려 한다
지금 여기서 즐겁게 인생을 살아가려 한다
뒤돌아보면
지금 이 순간이
분명 그리워질 것이기에
국도로 접어들며
국내 대형 회계법인 중 한 곳에서
약 10년 정도 근무했었다
운전에 비유해 보면
그땐 먼 목적지에 닿기 위해
'쭉 뻗은 고속도로'에 있었던 시절이었겠지
추월차선인 1차선에서
쌩쌩 지나가는 자동차는 아니었지만
2차선 혹은 3차선에서
다른 자동차와 함께 속도를 맞춰 달려왔던 삶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으로
마치 '두 번째 인생'을 선물 받은 것처럼
내 삶을 새로운 시각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이제는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내 인생의 핸들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봐도 되지 않을까?"
그런 마음에 용기를 내어
개업을 했고, 책을 썼고
지금 이 글도 쓰고 있다
내 인생은 이제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벗어나
굽이진 국도에 접어들고 있다
경로를 벗어난 내비게이션에게
다시 입력해 줄 목적지는 아직 없지만
이제야 조금씩 나만의 길이 보인다
목적지를 찾는 과정에서
나는 우리 인생에 일어나는 많은 일이
결국 우리를 위해서 일어난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지난 고속도로 위의 삶에도 감사한다
고속도로에서 규정을 잘 지켰고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달렸던 시간 덕분에
나는 지금 햇살이 비추어오는 국도를 달리고 있다
꿈을 탄다
"생계 목적도 아닌데
30대 후반에 왜 수동 운전을 배우세요?
저도 오랜만에 가르쳐보네요."
수동 운전 도로연수를 신청하고
내게 배정된 운전 선생님과의 첫 만남에서
그가 내게 건넨 말이다
그때는 대답하지 못했다
"수동변속기 자동차로 유럽 일주가 꿈입니다"를
막상 입으로 말하려니 좀 부끄럽기도 했고
그런데 출장지의 숙소에서
재방송으로 다시 만난 <SNL 코리아> 프로그램에서
그 대답을 찾았다
내가 봤던 시즌 6에서는
당시 인기 프로그램 <삼시세끼>를 패러디한
<도시세끼>라는 코너가 있다
그 코너에서 개그맨 김준현 님은
'달관청년'이라는 콘셉트로
저렴한 재료로 기가 막힌 요리를 만드는
(일부는 좀 드러운^^)
자취생을 연기한다
그중 내가 본 에피소드는
날씨 좋은 어느 봄날 커피를 타는 장면이다
달관청년은 카페에서 탈취 등을 목적으로 나눠주는
검은색 가루로 커피를 탄다
(다른 음식들도 이런 식이다~)
여기서 나레이션으로 달관청년에게 질문한다
나레이션 : 김준현 씨 커피 타시는 거예요?
달관청년(김준현) : 봄 탑니다~
7년 전에 적어놓은 작은 꿈
'수동변속 자동차로 유럽 일주하기'에서
유럽을 제외하면
나는 대한민국에서 이미 그 꿈을 타고 있다
그래서 이젠
"수동 자동차를 왜 타세요?"는
질문을 받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꿈 탑니다~"
- 끝 -
Epilogue.
시답잖은 것들로 가득했던 에버노트 속 메모
메모 속에서 발견한 작은 꿈
작은 꿈을 실현시켜 준 도로 연수 선생님
그리고 현대자동차 벨로스터 N
마지막으로
나를 꿈의 길로 인도해준
그리운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의 죽음이 내게 준 두번째 인생
그 모든 것에 감사하며
에피소드 10이자
마지막 에피소드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