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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미녀 Dec 07. 2020

제 몸은 하나입니다.

체력을 안배하기

다른 사업군으로 가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하게 출판업계도 만만치 않습니다. 무엇이? 바로 노동강도입니다.


출판업계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도 두뇌 노동력을 필요로 합니다. 문장을 만지고 편집하는 것도, 대중을 분석해서 출판 트렌드를 파악하는 것도, 책을 어디에 어떻게 마케팅할 것인지 전략을 짜는 것도, 사람들에게 '먹힐' 본문을 다듬고 만들어나가는 것도. 이 부분은 어떤 재화의 유통 과정과 모두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출판업계에는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바로 '의미'입니다. 묘하게 학문과 장사 그 사이에서 사실상 모든 것의 멀티플레이가 펼쳐지는 곳이 출판업계입니다.




저번에도 구두를 예시로 들었으니 지금도 그렇게 해봅니다. 혹시나 잡화 업계 계시는 분이 읽는다면 죄송스럽습니다.

'구두를 잘 만들고 잘 내놓고 잘 판매한다'는 것에는 딱 그것뿐입니다. 그 이상의 의미는 없습니다. 트렌드를 파악하고 좋은 소재를 찾고 좋은 공장(또는 장인)에서 생산하고 이 과정에서 원가를 절감할 수 있으면 제일 좋고요, 그 후 각지의 유통처에서 판매하고 알맞은 마케팅과 홍보를 합니다. 잘 판매되면 성공입니다. 철저하게 '장사'입니다.

그런데 책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구두를 만들어 판매하는 것의 과정은 거의 유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책에는 '의미'가 담겨야 합니다. 즉 시대에 부합하는 컨텐츠, 세상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목적. 하나의 책에는 그 어떤 것이라도 하나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물론 이래야지만 독자들이 책을 선택하기 때문이기도 하기에 책을 철저하게도 의미를 갖고 탄생됩니다. 되어야만 하구요. 책에게는 이렇게 다른 재화에는 없는 귀중한 것이 담겨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출판업계 사람들은 참 곤욕입니다. '의미'만을 생각해서 질 좋은(컨텐츠에 충실한) 책만 생산하고 팔려고 보니 안 팔립니다. 그렇다고 의미고 뭐고 모르겠고 소비성만 중시한 책을 생산하고 팔자니 '이게 책인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또 그것이 잘 팔린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앞서 말했듯 소비자(독자)들이 기대하는 책에는 의미도 재미도 합리성도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출판업계 사람들은 양쪽을 다 해야 합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에서 균형을 맞춰야 합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면 이러나저러나 비난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출판업계 사람들, 피곤합니다. (ㅎㅎㅎ)


좋은 책을 만드느라 피곤하고, 잘 팔아야 하니 피곤합니다. 한쪽에만 피곤이 쏠리면 참 좋을 텐데 양쪽 다 봐야 해서 정신적인 피로도는 2배가 됩니다. 다른 산업군의 피로도와는 조금 다른 피곤함인 것 같습니다. 업무를 보느라 파김치가 되어버린 내 몸은 결국 하나이기에 집에 돌아가면 축적된 피로를 풀어내느라 바쁩니다.

 

하지만 투자자이면서 출판업계 종사자인 저로서는, 회사에서 모든 체력을 소진해버리고 집에선 쉬기만 하면 안 됩니다. 퇴근하면 투자 공부도 하고 임장도 가고 통장도 봐야 합니다. 저는 물론 회사원이지만 동시에 투자자니까요. 어느 한쪽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회사에서 모든 체력을 소진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만일 필 받아서(?) 제가 업무에 너무나도 빠져있다면 일부러 잠시 떨어져 저를 바라봅니다.

최근 며칠 이렇게나 열정을 다해 일에 쏟은 후에 과연 집에 가서 종목 공부할 수 있겠는지, 주말 임장 갈 수 있겠는지 말입니다. 당연하게도 둘 다 못하니까, 그러니 일의 몰입도를 조금 줄입니다. 동료에게 피해주지 않을 만큼, 하지만 제 투자에도 영향을 주지 않을 만큼.


이렇게나 출판업계 투자자는, 균형을 잡아야 하는 곳이 여러 군데입니다.


늦은 밤에도 임장은 계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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