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하는 기간이 줄다
처음 보는 아저씨지만, 모두 삼촌이라고 부르는 그의 쾌활한 목소리에 이끌려 색동 저고리를 입은 나는 사촌들과 함께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경운기에 올라탔다. 산소까지 도보로 너무 멀다는 말에 경운기의 승차감을 알지 못했던 도시 아이들은 모두 올랐다. 하지만 덜덜 거리다 못해 엉덩이를 통해 온 몸에 퍼지는, 경운기가 주는 통증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중간에 내릴 수 없는 낯선 곳이기 때문에 참고 가야했다.
힐아버지의 고향은 경남 예천이다. 그곳은 자주 갈 수 없는 먼 지역이라 어쩌다 간 그날 그 명절에 색동저고리의 고름이 뜯어지는 줄도 모르고 이집 저집 사촌들과 몰려다니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의 집에서 경건하게 제사를 지내고, 산소에 가서 또 절을 했다. 산소에 조상님이 누워 계시다지만, 먹을 수는 없을 것 같은데 그 위에 술을 따르고 음식을 던져 놓는 것도 신기했다. 명절에 겪은 일 가운데 아주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추모의 날이다.
장손인 아버지, 유교의 가풍을 이어가고 있던 우리 집은 일년에 열두번의 제사를 지냈다. 맞벌이인 어머니는 일년 내내 제사 준비를 하시는 것 같았다. 시장에 갈 때마다 제사 음식으로 쓸모 있는 것들을 사두시곤 했는데,. “내일은 제사도 아닌데, 왜 미리 사?”하고 물으면 “생각 날 때 사둬야 해”하고 답하셨다. 집을 지을 때 제사 지낼 것을 대비하여 거실과 주방을 넓게 지었던 아버지의 설계는 그 누구의 의견도 물을 새 없이 진행되었다. 원래 그래야 하나보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다. 다른 집들도 다 우리처럼 제사를 지내며 사는 줄 알았다.
명절의 차례와 누구누구의 돌아가신 날 올리는 제사에는 차이가 있다. 올리는 음식과 밥그릇, 숟가락의 개수도 다르다. 계절에 따라 올리는 음식에도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인 제사 음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제기를 닦고 지방을 쓰고 밤을 깎는 일은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 등 남자들이 하지만, 전을 부치고, 네 가지 이상의 나물을 볶고 묻히는 일, 생선을 굽고, 과일을 준비하는 등 각종 음식을 마련하는 일은 여자들의 몫이다. 많다. 바쁜 주방에서는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판이라 제삿날은 언니와 나도 동원이 되었다.
제사상이 차려질 때는 집안 전체에 침묵이 흐른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뭔가 엄숙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아이들은 상에 올리는 음식의 위치를 조용히 쳐다보고 있다. 다 차려지면, 향을 켜고 술도 따른다. 여자들은 주방에서 구경을 하고 남자들은 절을 한다. 좀 이상했다. 음식 하느라 고생한 여자들은 제사에서 제외되고 탱자탱자 앉아 제기나 닦으며 수다를 떨던 남자들은 아주 멋진 폼으로 절을 한다. 마치 대단한 행사를 치루는 것 같은 표정들이다. 그렇게 우리 집은 추모하는 날이 자주 있었다.
제사가 없고 추모의 시간이 없는 시댁. 그 많은 제사 음식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 많은 설거지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낯설다. 그러나 너무 편하다.
한줄 : 추모의 기간이면 가장 힘드셨을 분,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