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날로그 남샘 Mar 05. 2023

삶의 가치는 멈출 수 있는 지점을 알려준다.

가치는 과거에 머무르는 시선을 현재로 향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삶에서 원하는 것이 단지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마음과의 싸움을 잠시 멈추고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볼 수 있습니다.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과의 이기고 지는 싸움에서 벗어나서, 자신이 원하는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성찰할 수 있습니다. 불안하지 않고 우울하지 않아야 행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불안과 우울이 사라자지 않아도 그 감정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불안, 우울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날씨와 같습니다. 우리는 날씨를 결정할 수 없지만,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릴 때 할 수 있는 행동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비와 눈이 그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지금 이 순간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빗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침대에 누워 있는 것도 괜찮고, 눈이 오는 창가에 앉아 따듯한 차를 마시며 음악을 듣는 것도 좋습니다. 

  비와 눈이 오지 않아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어리석은 것처럼, 불안과 우울이 없어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 것도 현명하지 않습니다. 갑작스러운 비와 눈처럼, 부정적인 감정도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우리는 그 감정들이 물러갈 때까지 삶을 견디거나 유보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는 이정표를 찾게 됩니다. 부정적인 감정으로 흔들릴 때, 삶을 의미 있는 순간들로 채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수용-전념 치료에서 이야기하는 ‘가치(Values)’입니다. 

  부정적인 감정들을 수용할 수 있다면, 그 감정들에게서 벗어나거나 통제하기 위해 쓴 시간과 힘을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성찰하는데 쓸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하고 있는지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소중한 사람들이 한 말과 행동에 귀 기울이는 것처럼, 내가 한 말과 행동에 주의를 집중할 수 있습니다. 가치(Values)는 습관적으로 반복해 온 말과 행동들이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온 말인지, 스스로가 쓴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의 각본에서 나온 말인지 분별할 수 있는 기준점이 됩니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행복할 수 있을지 진정으로 궁금해지면, 우리는 자신의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삶의 목표가 부정적인 감정들을 경험하지 않는 것이었다면, 이제부터의 삶의 이정표는 그 감정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사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삶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최선을 다한 것으로는 만족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부정적인 사람들은 과거에 다른 방식으로 최선을 다했다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착각합니다. 이 착각은 과거의 어느 순간에 삶이 이미 끝나버렸다는 절망을 불러일으킵니다. 그 순간에 있던 좋은 기회를 놓쳤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해도 지금 이 순간을 최선의 결과로 만들지 못하리라는 전망은 우리를 주저앉게 합니다.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던 가능성에 사로잡혀 끊임없이 과거에 머무르고 후회하느라 지금 이 순간 눈앞에 있는 작은 가능성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과거에 하지 못한 것은 하지 못한 것입니다. 아무리 후회한다고 해도 우리는 과거를 다시 살 수 없습니다. 변화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 내딛는 작은 발걸음입니다. 가치는 과거에 머무르는 시선을 현재로 향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가치를 향한 발걸음을 시작하면 우리는 그동안 외면해 온 자신의 약한 면을 만납니다. 특히, 삶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지금까지 삶의 방식이 내가 진정으로 원하지만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해 온 것들을 외면하기 위해 선택한 것임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오기도 합니다. 삶의 중요한 목표들을 이루고 나서, 성취감보다는 허전함이 든다면 그 목표는 자기 자신의 가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 확률이 높습니다. 목표가 삶의 가치에 기반을 둔 것이라면, 우리는 그 목표를 이루었을 때 서둘러 다음 목표를 찾지 않고 목표를 달성한 성취감을 음미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가치는 우리에게 멈추는 지점을 알려줍니다(Hayes & Smith, 2005). 목표를 이루는 것만 생각하면, 목표를 이루었을 때 느끼는 허망감에 허우적댈 수 있습니다. 목표를 이룬 성취감도 잠시, 목표를 이룬 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그동안 들인 시간과 노력이 의미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치를 향한 목표면 다릅니다. 어떤 가치를 위한 목표를 이루었을 때, 그 목표를 이루고 드는 느낌은 가벼운 안도감입니다. 인생의 한 단계를 지나갈 때마다 허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채워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가치는 우리의 삶을 익숙하지 않은 불편함과 어색함으로 데려가기도 합니다. 한 번에 삶의 가치를 찾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합니다. 그 시행착오를 겪기 위해서는 가치를 향한 발걸음이 불러오는 불편함과 어색함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행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사람이 짐을 꾸리고 비행기를 타고 낯선 장소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반복하면서 여행에 익숙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살면서 힘든 순간이 오면, 우리는 그 순간이 영원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평소 아무 일 없이 지내던 것보다, 시간은 훨씬 천천히 흐릅니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여겨지는 까닭은 우리의 마음이 힘든 순간을 기억하고 다음에 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가치가 가리키는 새로운 방향으로 걸어가면서 경험하는 불편함과 어색함은 그 가치가 진정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인지 돌아보게끔 해줍니다. 인생에서 가치를 찾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없기 때문에, 그만큼 어색함과 불편함은 더 크게 다가옵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으면 멈출 수 있는 지점도 알 수 있습니다. 가치는 삶의 이정표를 제공하면서도, 힘이 들 때 그 이정표를 따라가지 않고 잠시 쉴 수 있는 여유를 주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행동과 선택이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최선임을 받아들일 수 있기 위해서는 자신의 가치를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삶의 가치는 나의 행동과 선택이 한 번뿐인 최선임을 일깨우며, 실패하더라도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이정표를 제공합니다.


* 수용-전념치료(Acceptance-Commitment Therapy): 원치 않는 생각과 감정을 없애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생각과 감정으로 고통받고 있는 자신을 무능력하거나 의지가 없는 것으로 탓하는 것을 고통의 원인으로 여기는 심리치료적 접근. 고통스러운 순간에 자기 자신을 판단하지 않고 자비롭게 바라보는 '자기-자비'를 치료의 핵심적인 요소로 여김.


* 흰곰: '수용-전념 치료'에서 말하는 불안과 우울과 같은 불편한 생각, 감정, 감각, 그리고 기억과 같은 내적 경험들


* 참고 도서

  - 이선영. (꼭 알고 싶은) 수용-전념 치료의 모든 것. 서울: 소울메이트, 2017.

  - Hayes, Steven C.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라. 서울: 학지사, 2010.

  - Luoma, Jason B. 수용전념치료 배우기. 서울: 학지사, 2012.

  - Wilson, Kelly G. (수용전념치료에서 내담자와 치료자를 위한) 마음챙김. 서울: 학지사, 2013.

작가의 이전글 흰곰과 중심 잡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