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이해하는 법
선원으로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왜 사람들이 배를 이해하지 못할까?" 하고 생각하곤 했다.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들인데, 다른 이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이야기처럼 듣곤 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 공간을 접해 보지 못했으니 이해를 할 수 없는 당연한 일이었다. 때론 그곳을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이 꽤 있다.
나 역시 배를 내리기 전에는 많은 공간들을 알지 못했다.
청년들의 주거가 열악하다느니 청년의 삶이 어떻다느니. 배안에서 딱 정해진 공간과 일정한 삶을 살아가는 나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처음 육상 생활을 시작하고 집을 구하러 돌아다녔을 때. 나는 그때야 그 공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본 공간들은 월세가 40에 가까운데도 경사가 꽤 높은 곳에 있거나. 골목이 미로처럼 굽이 굽이 펼쳐져 있었다. 문 앞에 소주병과 담배꽁초로 산 쌓여있고. 도배가 흉물스럽게 벗겨져 꼭 영화 속 범죄 현장과 같은 분위기인 방들이 있었다. 충격적인 건 그런 집에도 세입자는 있다는 것.
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그 방에서 매달 40만 원이라는 큰돈을 내고. 내가 보기엔 보잘것없는 그 방을 좋다고 당연히 소개하는 중계업자들에게서 환멸이 느껴졌다.
'그렇게 좋으면 네가 살아봐...'
그런 집에서 출근을 위해 가방을 들고 나오는 또래의 모습을 보며 마음 한편이 답답했다. 배에서는 최소한 곰팡이나 도배가 벗겨진 흉물스러운 곳에 사람을 집어넣지는 않는다. 사람이 살기 위한 최소한의 평수와 주거가 제공이 된다.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배에도 사람이 사는 곳이 이러할 진데, 육지에서는 최소한의 인간적인 공간이라는 게 없는 것일까?
대한민국의 거주는 대게 아파트다. 좋은 아파트는 좋은 아파트끼리 무리를 지어 점점 장벽을 나누고 그들만의 공간을 만든다. 최근에는 살인적인 집값으로 그 장벽은 점점 높아져만 가는 듯하다
나는 지금 오피스텔에서 자취를 하고 있다. 내가 사는 오피스텔에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사는데.
12평의 똑같은 방으로 정해진 오피스텔의 구조이지만. 같은 공간 안에는 제각각의 세대가 살고 있다.
나처럼 혼자 사는 사람. 부부. 4인 가족. 외국인, 은퇴 노인. 등
나와 같은 공간에 사는 다른 세대를 보며 나는 그들을 이해한다.
'힘들지는 않을까?' '우리 오피스텔 보일러 잘 안되는데 아이들 춥지는 않을까?'
'냉장고 되게 쪼그만 한데. 얘기들 밥은 잘 먹을까?' 공간을 공유하기 알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서로의 공간을 나누는데 이러한 이유를 말하곤 한다.
'잘 사는 사람이 잘 사는 사람끼리 모여 살겠다는데 그게 어때서 노력해서 잘 사는 건데.'
그런데 세상에는 한 부류의 사람들만이 살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도 잘 사는 사람도 분명히 존재한다
사람이 잘살고 못 사는 것은 꼭 노력의 문제만은 아니다. 노력하지 않아도 선천적으로 또는 후천적으로 삶의 차이를 만든다. 그런데 최근에는 노력이라는 이유로 가난을 폄하하고, 가난하며 노력도 하지 않은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내가 살던 고장에 한 초등학교는 운동회를 2번 나누어서 했다.
하루는 메이커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끼리 운동회를, 하루는 임대에서 사는 아파트끼리 운동회를 나누어서 했다. 임대 사는 아이들하고는 같이 운동회를 할 수 없다나 뭐라나...
그 이야기를 듣는 내 심정은 비참하다.
그렇게 학교에서 마저 공간을 나누면 서로를 이해하는 일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어른이 정치인이 된다면 다른 다른 공간의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공간을 나눈다면 평생 서로를 이해하는 일은 없겠지.....
내가 배를 타며 항상 느낀 건 누구나 순간의 선택으로 삶의 모습이 바뀐다는 것이었다. 배에는 고압과 고온의 회전체들이 많기 때문에 순간의 판단 실수로 이전과 같은 몸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사고를 맞이하기도 한다.
지금 순간만 비장애인일 뿐 언제나 누구에게나 똑같이 발생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두를 이해해야 한다.
자신은 가난해지지 않을 것이고 자신은 장애를 겪지 않으리라 밀어내기만 한다면 언제 자신이 밀려날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더욱 갈라지는 건 서로의 공간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왜 정치인이 서민의 삶을 모를까?' 답은 간단하다. '우리의 공간을 모르니까'
최근 뉴스에 나오는 정치인들 고위 공무원들의 '저질스런 일'들을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고 분노하지만
어쩌면 저들의 공간에서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 그래서 나는 글을 적는다. 이런 공간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