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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 Feb 18. 2020

아델라인, 멈춰진 시간

블레이크 라이블리

최근 우연히 2015년에 개봉했던 ‘아델라인:멈춰진 시간’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블레이크 라이블 리가 주인공입니다. 100년째 29살, 아델라인의 시간이 젊음에서 멈췄습니다. 우연한 사고 이후 영원히 늙지 않게 된 아델라인은 107세가 됐지만, 여전히 29세의 미모를 간직하고 있지요. 변하지 않는 아델라인의 정체를 수상히 여긴 사람들은 아델라인을 쫒기 시작하고, 아델라인은 이들을 피해 10년마다 신분과 거주지를 바꾸며 외롭게 살아갑니다. 아델라인의 딸은 나이를 먹어 친구가 되고,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어 젊은 아델라인을 지켜주지만 결국 아델라인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늙어가지 못하는 자신의 삶을 저주라 생각하고 괴로워하며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지 않으려 합니다.  

    

인간은 세월의 변화에 따라 변화해야 하고 늙어가야 합니다. 인간이 젊음을 원하고 추구하지만 혼자만 젊음의 시간에 멈추어선 그 젊음은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 젊음이 그 사람의 삶을 고립시킬 뿐입니다. 고립과 외로움에 지친 아델라인은 자신에게만 멈춰진 시간을 저주하여 “같이 늙어갈 미래가 없으면 사랑은 아픔일 뿐이야.” 라고 말하며 괴로워합니다. 인간의 미래는 같이 가는 미래입니다. 혼자만의 미래는 있을 수도 없지만 있다면 축복이 아닌 저주일 것입니다.      


세월은 흐르고 시대는 바뀌었습니다. 권력독점의 시대에서 민주 상생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변하지 않는 아델라인의 젊음은 저주입니다. 대검찰청 홈페이지에서 검찰CI(Corporate Identity)에 대한 설명을 보면 ‘대나무의 올곧음에서 모티브를 차용하고 직선을 병렬 배치하여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 이미지를 담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상단의 곡선으로 천칭저울의 받침부분을, 중앙의 직선으로 칼을 형상화하여 균형 있고 공평한 사고와 냉철한 판단을 표현하였다고 합니다. 주색조인 청색은 합리성과 이성을 상징하고, 좌측으로부터 각 직선은 공정, 진실, 정의, 인권, 청렴을 상징합니다. 중앙에 칼의 형상인 정의가 그 좌우에 각 진실과 인권이, 다시 그 좌우에 공정성과 청렴이 있는 형태라는 설명입니다.      


검찰의정체성에 왜 칼의 형상이 들어가 있을까? 칼은 날카롭고, 위험합니다. 내려치고 자를 수 있되, 회복하지 못합니다. 공정, 진실, 정의, 인권, 청렴이라는 검찰의 정체성에 사람을 상하게 하는 위험한 칼의 이미지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검찰이 휘둘렀던 칼은 죄에 대해서였겠지만 그 죄는 사람에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두운 시대에 필요했던 칼은 이제 검찰의 손에서 내려지고, 대장장이의 손으로 돌아가 필요한 쓰임새에 다시 제련 되어 적절하게 나뉘어 쓰여야 합니다. 멈추어졌던 검찰의 시간은 같이 늙어갈 미래와 함께 차분히 모든 이와 그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아델라인의 멈춰진 시간은 저주였습니다. 딸을 잃고, 친구를 잃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갔습니다. 같이 늙어갈 미래를 모두 잃었습니다. 멈춰졌던 아델라인의 시간이 사랑과 함께 흘러가자 100년에 걸친 젊음이라는 저주가 풀리며 늙어가는 아델라인의 얼굴엔 편안한 미소가 어렸습니다. 참고로, 아델라인을 연기한 블레이크 라이블리의 아련한 미소는 중년의 남자도 빠져들게 하더군요. 영화를 보지 못한 분들은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함께 늙어갈 누군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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