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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 May 02. 2020

'대박이'가 준 희망

('대박이'는 소설 속의 진돗개의 이름입니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책으로 쓰면 한 질도 쓸 거다.”

매번 하시는 어머니의 삶의 소회 겸 영웅담의 서두입니다. 아내도 심심찮게 이야기합니다. “나도 학교 다닐 적에 글 잘 쓴다고 선생님들께 칭찬도 많이 받았고, 내 편지를 받은 친구들이 글이 감동이라고 했었어. 내가 책을 쓰면 대박이 날 텐데 시간이 없네?.”

‘그렇겠지? 시간이 없겠지?’ 믿거나 말거나, 검증되지 않은 허세지만 은연중에 아내의 말에서도 책 쓰기에 대한 꿈이 드러납니다.


대한민국 누구나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어릴 적 문학소녀, 문학소년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달랑 소나기 하나 읽고 문학소년이라고 자칭하는 사람, 캔디 만화를 보고 문학소녀라 칭하는 사람, 만화영화를 보고 책을 읽었던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 각양각색의 사람이 있겠지만 사람들은 가슴속 어딘가에 책을 동경하고, 책을 한 권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잠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글을 쓰겠다는 욕망보다 책을 엮어보고 싶은 마음이 강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어릴 적 어느 때인가는 여행기 몇 개 쓰고 그걸 책처럼 엮어 주변에 자랑한 적도 있었고, 어느 때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독서의 기술’을 그대로 타이핑하여 가지고 다닌 적도 있었습니다. 맘에 드는 문구들이 많아 제가 쓴 것인 양 혼자의 만족감이었던 것이지요.


사람들은 왜 책을 쓰고 싶어 할까요? 어떤 이는 ‘왜 쓰는가?’라는 질문에 ‘타인과의 소통’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꿈의 실현’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저에게 질문한다면 ‘쓰고 싶어서’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성실하지 못한 답이지요? 하여, 조금 더 성실하고 구체적인 답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남이 나를 인정해줄 것 같고, 좀 폼이 날 것 같아서’라고 말입니다. 그래도 조금 가볍나요? 여하튼, 저의 답은 그렇습니다. 남이 날 인정해주면 아무래도 뿌듯합니다. 남에게 인정받음으로써 내가 얻는 포만감. 그리고 하나 더,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을 추가해도  될 것 같습니다. 글쓰기가 아닌 책쓰기, 즉 자신이 쓴 책을 세상에 내놓는 것을 말하고 있으니 글쓰기에 남다른 신념이 있으신 분들은 오해 없으시길.


저에게 책 쓰기는 언젠가는 이루고 싶은 하나의 꿈이었습니다.

저는 회사에서 나온 조그만 수첩을 항상 들고 다닙니다.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기 딱 좋은 크기이기 때문이지요. 마음에 들어온 책 안의 문구는 수첩에 필사되고 그 옆엔 제 생각도 첨부됩니다. 책 제목이나 소재로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면 잊기 전에 수첩에 적기도 하지요. 그렇게 모아둔 수첩이 벌써 수십 권이 모였습니다. 그냥저냥 메모도 있고, 그날그날의 푸념 한 줄도 있습니다. 아주 잡다한 것이지만 그래도 이제 제법 제 꿈들이 모여, 서재 한켠에 소중히 모아 두고 틈틈이 펼쳐 봅니다. 가끔 술 한 잔의 기운에 갈겨쓴 글들이 제법 마음에 들기도 합니다.  


그러던 제게, 이제 꿈을 넘어 실천을 하라는 책 신의 계시가 있었습니다. 몇 년 전 3월 우연히 클릭한 회사 게시판 글에서  문예대전 개최 공지를 본 것입니다. 그날따라 그 공지 글은 저를 설레게 했고, 꼭 응모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강박처럼 주입되었습니다. 이유는 지금도 모릅니다. 다만, 그날의 느낌은 그렇게 강렬했습니다. 공모전 응모 경험이 없던 저는 주저와 망설임을 책 신의 도움으로 이겨내고, 결국 그간 조금씩 써왔던 단편소설 한 편을 출품하는 무모한 용기를 냈습니다. 응모작의 제목은 ‘개장수가 온 날’, 공모전 응모가 처음이었으니 자신은 없었지만 혹시나 하는 요행을 바랐을 것입니다. 요행은 ‘뜻밖에 얻는 행운’을 말하지요. 당연히 그리고 다행히 저에게 요행은 없었습니다. 소리 소문 없이 혼자서 낙선하고 혼자서 낙담하였습니다. 신의 계시는 도전까지만 이었던 것이지요.


낙선작이지만 응모한 소설의 요약과 도입부는 이렇습니다.  주인공은 대박이라는 이름을 가진 윤기 나는 하얀 털의 진돗개입니다. 항상 묶여 있지만 자유를 꿈꾸고, 옆집 사는 암컷 리아의 남자 친구가 되는 희망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살아갑니다. 대박이에게 밥을 차려주는 인간인 주인은 대박이를 사랑하지만 개가 아닌 인간이라는 한계가 있습니다. 대박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대박이의 생각은 어떤지, 결정적으로 대박이의 언어를 알지 못합니다. 대박이의 입장에서는 인간의 지능이 자신보다 떨어지지요. 자신은 인간의 말을 알아듣는데 인간은 대박이의 언어를 모르니 말입니다. 답답한 일이지만 그나마 다행히 대박이가 사는 공간은 널찍합니다. 기다란 와이어로 나름, 대박이의 체력운동공간이 확보되어 있지요. 진돗개 대박이의 자전적 모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난 목에 알 수 없는 재질로 만들어진 목걸이를 걸고 있고, 목걸이에 세로로 채워진 둥근 고리가 십팔 미터 와이어 줄과 연결되어 있다. 그 목걸이는 내 취향이 아닌지라 내가 원한 것은 아니다. 너비는 오 센티 가량으로, 실망스럽게도 나라면 구입하지 않았을 빨간색이다. 다행인지 내 목걸이는 밥을 먹는 데는 지장이 없지만 앞쪽으로 삼 미터만 벗어나면 목이 당겨 더 이상 내가 진격하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물론 나에게 밥을 가져다주는 인간은 이를 안타깝게 여기나 인간세상의 법이라는 것 때문에 나를 자유롭게 풀어줄 수는 없다고 하므로 난 이를 이해한다. 그래도 난 꿈이 있다."     


단편소설 속의 긍정 남 대박이는 여자 친구 리아와 함께 리아의 동생을 찾아 모험을 떠납니다. 리아의 동생이 실종되었기 때문입니다. 대박이의 꿈은  리아와 정식으로 사귀는 것, 그리고 함께 모험 여행을 떠나는 것입니다. 도전의 시작인 것이지요.


소설 속의 대박이가 힘을 주었을까요? 이후 그해, 저는 조그만 소규모 문예지에 다른 단편소설을 응모하여 신인상에 당선되었습니다. 또한 수십 차례에 걸친  출판사 원고 투고를 시도하여 단행 본 책 한 권도 출간했습니다. 업무 관련 책인지라 아직은 작가가 아닌 단행본의 저자입니다만, 처음이 어렵지, 얻어진 결실은 보람과 지속의 재미를 주더군요. 우연히 알게 된 브런치 공간에서 이렇게 글을 올리는 기회도 갖게 되고, 또 다른 책 출간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조그만 수첩 속에 담겼던 이야기들이 이제 조금씩 밖으로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꿈은 수첩에 담는 게 아니라 꺼내어 보이는 용기와 실천하는 행동이었습니다. 머릿속의 생각과 수첩 속의 메모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제 글쓰기에 한해서는 무작정 행동부터 시작하기로 합니다. 시작과 도전은 곧 실천하는 행동임을 알아챈 까닭입니다. 이제는 저자가 아닌 작가에의 도전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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