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샤이니는 예능적인 재능을 드러내고는 했다. 악기를 보면 너무 좋아해서 그냥 지나가지 못했다.
특히 음악소리 리듬에 맞춰 춤추는 것도 정말 좋아하고 곧잘 했다. 인도에서도 그러했다.
나도 음악을 좋아했다. 노래 부르는 것도 악기 연주를 하는 것도 좋았다. 다행히 엄마는 나에게 초등학교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게 해 주셨다. 덕분에 나는 교회에서 피아노와 키보드를 연주했다. 기타와 하모니카, 장구도 좀 배워서 나름대로 악기를 연주할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인도에서 학생들에게 한국 노래를 가르쳐주거나, 피아노 연주를 하기도 했다. 미술도 좋아해서 화가가 되고 싶은 꿈도 있었다.
나는 이렇듯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와 음악, 고전무용까지 예능에 소질이 있었지만 아버지께서는 내가 예능 쪽으로 나가는 것을 반대하셨다. 그 이유는, ‘첫째로, 재주가 많으면 가난하게 산다. 둘째로,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이었다. 사실 두 번째 이유는 내게 말씀해 주시지 않으셨지만, 이유는 두 가지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유독 아이의 예능교육에 신경을 많이 썼던 거 같다.
인도에 처음 갔을 때부터 무엇보다 샤이니의 예능교육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아이의 특기를 찾아서 키워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마 내 안에 어린 시절 예능의 꿈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자리 잡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피아노를 치면서도 늘 전공자가 아니라는 콤플렉스가 있었다.
아이가 그린 엄마
인도에는 음악대학이 없다. 반면 미술대학은 꽤 유명해서 아름다운 인도 건축물들과 텍스타일 디자이너(textile designer)들이 많다. 델리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National Gallery of Morden Art)은 꼭 가봐야 하는 명소일 정도이다. 그 외에도 예술 축제(Art Festival)나 미술 전시회(Art Exhibition), 아트 엑스포(Art Expo)도 종종 열리곤 했다. 그런 곳을 구경하다 보니 절로 샤이니에게 미술을 공부시키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인도에는 딱히 미술학원도 없어서 샤이니 혼자 그림을 그리는 정도였다.
인도의 건축물
일단 나는 샤이니에게 음악을 시켜보기로 했다.
누군가 악보를 보기 힘들 때는 피아노보다는 바이올린을 먼저 시작하면 쉽게 악기를 배울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딸, 우리 바이올린 배울까?"
"응, 배워."
아이는 무조건 예스다.
다행히 친한 지인과 함께 예능교육 품앗이를 하기로 했다. 가장 작은 1/4 쿼터 사이즈 바이올린을 사서 샤이니는 깨강깨갱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지금은 미국으로 간 성민이와 성현이에게는 내가 피아노를 가르쳐주고, 성민이 엄마는 샤이니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쳐준 것이다. 그때 참 행복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성민이네가 미국으로 가야 해서 예능교육 품앗이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다른 방안을 찾아야만 했다.
"딸, 피아노 배워볼까?"
"응, 배워."
다행히 샤이니는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 했다. 한국에서 오신 피아노 선생님께 어렵게 부탁드려서 샤이니는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샤이니는 선생님이 오시는 날을 기다렸고, 나름대로 피아노 배우는 것을 재미있어했다. 예쁜 선생님이 친절하게 잘 가르쳐주시는 게 좋았나 보다.
하지만 생각처럼 아이의 피아노 실력이 늘지 않았다. 일단 한글도 깨치지 못한 상태였고 계속 기초만 반복을 하다가 피아노 선생님도 한국으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더 이상 배울 수 없었다.
남편은 내가 직접 샤이니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건 어떤지 물었다. 나도 처음에는 흔쾌히 대답하고 샤이니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샤이니는 엄마에게 자신이 얼마나 피아노를 잘 치는지 보여주고 싶고, 칭찬도 받고 싶어 했다.
"엄마, 이거 봐~ 나 잘해?"
"어...."
내 마음에 차지 않았다. '아니, 아직도 저 정도밖에 못한단 말이야?' 난 속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해 봐. 연습을 많이 해야 해. 자, 이렇게."
"이렇게?"
"아니, 이렇게 해야지."
내 목소리가 올라갔고, 아이에게 못한다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나 안 할 거야, 엄마한테 안 배워."
마침내 아이는 내게 선포를 했다. 내가 계속 샤이니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다가는 엄마와 딸의 좋은 관계가 나빠질 거 같았다. 결국 나는 샤이니의 피아노 교육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부턴가 샤이니가 요가를 배워 와서는 집에서 보여주기 시작했다. 나는 다행이다 싶었다. 요가의 본고장답게 인도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요가를 가르친다.
물론 모든 인도 사람들이 요가를 잘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인도의 많은 사람들이 요가를 정말 잘하는 것을 보아 왔던 터라 샤이니가 요가의 본고장 인도에서 제대로 전문적인 요가를 배워보는 것도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샤이니는 제법 요가 동작을 잘 해냈다. 그래서 나는 어쩌면 요가가 아이의 특기가 될 수도 있겠다고 기대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요가를 좋아하던 샤이니는 어쩐 일인지 요가를 하기 싫다고 했다. 이제 몸이 당겨서 많이 아프다는 게 이유였다.
세상에 참 쉬운 게 없다는 걸 깨닫던 차에 샤이니 학교 행사에 갔다가 왜 샤이니가 아프다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샤이니의 같은 반 친구들의 요가 실력을 보고는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내가 봐도 아직 샤이니가 감당해 내기에는 심히 고도의 기술들이었다.
아이들의 요가
그 후, 나는 샤이니에게 인도에서 열린 사물놀이 워크숍에서 장구도 배워보게 했다.
극성맞은 나는 한국에 와서 중앙기독초등학교에 다닐 때도 학교에서 운영하는 수요 음악학교 하프반에 샤이니를 넣었다.
"우리 하프 배워보자."
"하프가 뭐야?"
하프가 뭔지도 모르는 샤이니에게 무조건 재미있을 거니까 배워보라고 구슬렸다. 나름대로 손가락이 아프다고 하면서도 샤이니는 하프를 잘 배웠고, 집에서 연습도 열심히 하곤 했다. 아쉽게도 학교를 전학하면서 하프는 한 학기 동안만 배우고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또한, 샤이니는 학교에서 국악에 특기를 보였다. 학교에서 돌아온 샤이니가 신이 나서 말했다.
“엄마, 이거 봐. 내가 해볼게.”
“그래, 해 봐.”
“갑순아~~ 아이고아이고 무슨 일이야?”
혼자서 흥겹게 국악노래를 큰소리로 부르는 게 아닌가? 한국에서 자라지도 않았는데 온 몸으로 흥에 맞춰 노래를 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후에, 선생님께서 샤이니에게 꼭 판소리나 국악을 시켜보면 어떻겠냐는 말씀을 해주셨다.
국악에 맞춰 소고춤을 배웠는데, 샤이니의 목청이 엄청 크고 노래도 아주 잘했다는 것이다. 2학기가 되어 샤이니가 전학을 갈 때도 담임 선생님께서 내게 꼭 당부 말씀을 하셨다.
“아이에게 꼭 판소리나 국악을 시켜보세요. 타고난 재능이 있는 거 같아요.”
나도 선생님의 말씀을 그냥 흘려버릴 수가 없어서 국립국악원의 아는 선생님께 연락을 드려보았다.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한번 알아보시겠다고 하시는데, 우리가 국립국악원까지 가든지 우리 집에 오실 수 있는 선생님을 찾아야 한다고 하셨다.
참 힘들다.
나도 아이에게 특기 교육을 시키려니, 아버지가 어린 시절 내게 예능을 못하게 하셨던 두 가지 이유가 머릿속에 맴돈다. 많이 어렵다. 어떻게 해야 하나? 나도 우리 아버지처럼 예능을 못하게 해야 할지, 아니면 아이의 특기를 찾아서 키워줘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인도에 있던 피아노를 한인교회에 맡겨 놓고,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피아노를 장만했다. 여전히 내게 예능교육에 대한 부담과 기대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학교 수업 따라가기도 벅차서 피아노는커녕 그 어떤 예능교육도 못하고 있다.
엄마의 못다 한 어린 시절 꿈에 대한 미련으로 아이의 예능교육에 너무 집착하는 건 아닌지... 혹시 샤이니로부터 대리만족을 얻으려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샤이니에게 드로잉 스케치북과 72색 색연필, 유화 연습용 그림을 주며 그냥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라고 했다.
지금은 예능교육보다는 자연교육을 시키는 거 같다.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맘껏 누리며 잠시나마 숨을 쉬다가 어느 때가 되면 다시 예능교육을 시킬 수 있는 그날이 오리라 기대한다.